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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삼아야 할 일상적 태도_ 도법스님

정정진 2011. 12. 2. 17:16

문제삼아야 할 일상적 태도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모임을 마치고 어느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했다. 그 지역에서는 중요한 모임이었기 때문에 어느 분께서 특별하게 대접해주는 자리였다. 진수성찬이라는 말에 어울릴 만큼 풍성하게 차려진 식단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점심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점심 이후 바로 이어서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돌아오느라 택시를 탔다. 소지품을 챙겨 들고 택시에 올라앉자마자 택시 운전사가 불평을 털어놓는다.

 

"그 집은 대낮에도 사람을 발가벗겨 잡아먹는 곳인데 어떻게 그 집에서 나오십니까?"

 

영문을 모르는 터라 함께 탄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아니 사람을 잡아먹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기사가 허허 웃으며 말씀을 하신다.

 

" 그 집은 밥값 술값이 대단히 비쌉니다. 서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아마 낮에는 1인당 3만원, 밤에는 5만원 정도가 보통일 것입니다. 거기에다 술 한잔을 하게 되면 한끼 밥값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니 사람 잡아먹는 집이라는 말들을 하는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각각이었다.

 

"특별히 대접하려고 마련한 자리인데 그걸 갖고 너무 그럴 것은 없다."

 

"요즈음 우리나라도 생활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이 정도는 대단한 식사가 아니다."

 

"실제 고급스럽게 식사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오늘 점심은 검소한 수준이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신중하지 못한 처신으로 알게 모르게 불신과 불만을 조장하는 결과가 된 점에 대하여 돌이켜볼 일이다."

 

"진정 뜻있는 일, 대중을 위하는 일을 한다면 일상적으로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론이나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사안인만큼 한마디씩 하면서 돌아왔다.

 

사실 요즈음 나타나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에 비추어보면 오늘 점심이 결코 과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하는 특별한 식사라고 생각할 때 오늘 식사는 검소한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맞을지도 모른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그 사고와 삶의 태도 속에 우리 삶을 병들게 하는 독소가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고 자신도 별생각 없이 하는 습관적인 행위 속에 우리 삶을 좀먹는 요소가 깃들여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의 처지를 살펴 신중하고 조심해야 하겠지만 특히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현명한 처신이 요구된다. 지도층 인사들의 무책임한 행위들이 사회 전체 분위기를 들뜨게 하고 있다. 대중 앞에서 일하는 이들의 일관성 없는 몸가짐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상류층 사람들의 몰지각한 행동이 과소비 풍조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일상적 사고와 삶의 태도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자.

어느 날 평소 생각하던 대로 작은 차를 처분하고 큰 차를 구입했는데 바로 그것이 가까운 이웃형제들의 마음을 자극하여 "나도" 하고 입을 앙다물게 한다. 좀 고급스럽고 화려하게 차려입고 외출을 했는데 그것을 보는 사람, 만나는 사람들이 나도 저만큼은 입어야지 창피해서 다닐 수가 없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 좀 고상하고 분위기 있는 곳에서 회식을 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또 다른 사람들이 우리도 다음에 저 정도 외식은 해야 체면이 서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처럼 습관이 된 삶의 방식을 무심히 생활에 옮기는 그 자체가 바로 서로의 마음을 자극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길들어버린 사고와 삶의 태도들이 본의와는 상관없이 서로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상대적 경쟁 심리를 부채질하며 나아가 사회 전체의 흐름을 혼탁하게 하는 주범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한 우리의 삶은 더욱 뒤틀릴 것이다.

 

이에 더하여 깊은 관심으로 문제 삼아야 할 곳은 종교계가 아닌가 한다. 언젠가 가까운 분으로부터 '사회 전체가 불황인데 종교계만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불교계가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불교의 사상과 시대적 구실과는 무관하게 숫자를 늘리고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사고와 논리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사찰이 불사라는 이름으로 신앙과는 관계없이 절집을 화려하고 웅장하게 함으로써 허황된 사고를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님들이 수행자다운 정신과 그에 어울리는 삶을 유지하는 것과는 달리 연구, 수행, 전법, 대중공양이라는 이름으로 고급스럽고 풍족하고 편리한 것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과 욕구를 부채질하고 있지는 않은지. 불교계가 이런 물음에 대하여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 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불교계가 하고 있는 불사, 포교, 수행, 활동 자체가 바로 생명들의 삶을 병들게 하고 사회를 혼탁하게 하는 반 불교, 반 수행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살필 일이다.

 

이와 같은 문제 의식과 관심을 갖고 서로의 상황을 배려하는 따뜻함과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려는 예절을 되찾는 일에 불교인들이 앞장설 때다.

 

불타께서 보여주신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 즉 소박하고 검소함이 가장 고귀하고 평화롭고 아름답고 값진 삶임을 인식하는 일에 승려들이 모범을 보일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1997.2. 법보신문)

 

도법스님 / 청안청락하십니까? / 동아일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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