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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꾸와 오라이_ 황대권

정정진 2011. 11. 2. 23:55

 

다마

 

네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어릴 때 나는 동네에서 구슬에 관한 한 '왕자'였다. 깔때
기를 하든 쌈치기를 하든 잃는 일이 없었으니까. 당시에 동네의 구슬은 거의 다 내 책
상 서랍 안에 들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동네에 구슬의 씨가 마르
는 것은 아니었다. 동생들이 대신 들고 나가 잃어주고는 했으니까.

 

하루는 윗동네의 구슬치기 '왕자'가 자기의 '전 재산'을 들고 내게 도전장을 보내왔다.
요즘 말로 치면 '인터내셔널 타이틀 매치'가 벌어진 거지. 어른들에게 돈이나 보석 따
위가 소중한 재산이듯이 당시 우리들에겐 구슬이나 딱지가 무엇보다도 소중한 재산이
었다. 때문에 그 싸움은 동네의 일인자라는 명예도 걸려 있지만 서로 간에 완전히 파산
하느냐 마느냐 하는 피 튀기는 한판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장소는 우리 집 건넌방이었고 구경꾼은 아무도 없었다. 초반전에는 서로 주거니 받거
니 하다가 중반전에 이르러 내가 계속 잃는 형세로 전개되었지. 원래 내 자본금은 그의
두 배 가량 되었는데 한참을 잃다보니 어느덧 비슷해지고 만 거야. 이대로 나가다가는
하루종일 걸려도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아서 일대 결단을 내렸다. 구슬이 들어 있는 서
랍을 빼서 통째로 걸기로 한 거야. 수백 개는 족히 들어있는 서랍을 그 앞에 '탁!'하고
놓는데 그도 나도 모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서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하더라고
이것이 어느 쪽에 걸리든 게임은 끝장나는 것이지. 지금 생각해봐도 완전히 도박이나
다름이 없었다..

 

상고머리와 이부가리

 

나 역시 초등학생 시절 내내 상고머리를 유지했다. 이 상고머리는 길어지면 주기적으
로 깎아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발소를 자주 드나들었지. 주로 우리 약국 바로
옆에 붙어 잇는 이발소를 이용했는데, 나는 그 이발소 주인이 꼴 보기 싫어서 이발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어. 왜 그랬느냐 하면, 이것도 일종의 병인지 모르겠는데 이발소 의자
에만 앉았다 하면 몇 분 지나지 않아 바로 잠이 들고 마는 거야. 그러면 이 이발소 주인
은 인정사정없이 따귀를 때려가며 잠을 깨우지.

 

세상에 돈 내고 이발하러 와서 기분 좋은 서비스를 받기는커녕 따귀를 맞아가며 머리
를 깎아야 하니 이보다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니. 어떤 때는 한 대 맞고 깨어났다가 계
속 졸아서 머리를 다 깎을때까지 여러 차례 얻어맞은 적도 부지기수야. 이거야 머리 깎
으러 간 건지 따귀 맞으러 간 건지. 이런 식으로 머리를 깎았기 때문에 이발을 마치고
나면 삭발 후의 '상쾌함'보다도 억울하게 맞았다는 생각에 분한 마음으로 문을 나서기
가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의자에만 앉으면 조는 것은 우리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
다. 나는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많이 닮았거든. 어머니는 버스만 탔다 하면 거의 백
퍼센트 조셨는데, 나 역시 중고등학교 시절 버스 타고 조느라고 중간에 내리질 못하고
종점 사이를 왔다 갔다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권아, 보단 좀 눌러봐

 

이 모두를 우리말로 초인종이라 부르지만, 어렸을 땐 누구나 다 요비링이란 말을 썼
다. 요비링은 '부르다'라는 동사와 '방울 령' 자가 합쳐진 말로 '(사람을) 부르는 종소
리'라는 뜻이 된다.

 

어렸을 때 이 말의 뜻도 모른 채 그야말로 요비링을 마구 눌러 집주인을 불러내는 장
난을 꽤나 쳤지. 학교를 마치고 집까지 걸어오면서 그냥 가기 심심하면 꼭 이 장난을
쳤다. 심술이 발동하면 아무 집이나 눈에 띄는 대로 요비링을 연거푸 눌러 집주인의 신
발끄는 소리가 들리면 그대로 내빼는 것이지. 이때의 스릴은 일상의 놀이로는 도저히
느껴볼 수 없는 짜릿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한번은 요비링을 누르자마자 집주인이 번개같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거의 잡힐
뻔했던 적이 있다. 무려 삼십 분 가량을 골목길로만 내달려서 간신히 주인을 따돌렸는
데 이때는 스릴이고 뭐고 꼭 잡혀 죽는 줄 알았다. 아마도 그 주인은 아이들의 요비링
장난으로 골머리를 썩이다가 한번 되게 혼내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일이 있은 후로는 요비링 장난을 그만두었지만 지금도 그때의 필사적인 추격
전을 생각하면 오금이 다 저려온다..

 

요비링으로 장난치던 얘기를 하다 보니 만공스님이 길을 가다가 남의 아낙네 젖퉁이를
주무르고 그 남편에게 뒤쫓겨 덕분에 십리 길을 단숨에 갔다는 일화가 생각나는구나.
도란 어중간한 사람들에게서는 볼 수 없고 이와 같이 천진난만한 아이들이나 도통한
도사에게서나 볼 수 있는데 전자는 모르고 하는 것이고 후자는 알고 한다는 게 다를 뿐
이지.

 

요비링의 누름단추를 '보단'이라고 부르는 것 알지? 이 보단이라는 말은 포르투갈어
botao(보탕)의 일본 발음이란다. "보단을 눌러라!" 이 말은 주로 발파 작업을 하거나
자동문을 열 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가지고 지저분한 장난을 즐겼지. 종국이 아저씨로부터 배운 장
난인데, 하루는 아저씨가 갑자기 자기의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내밀면서 "대권아
보단 좀 눌러봐." 하는 거야. 나는 멋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아저씨의 두 손가락을 꾹
눌러 붙였더니 밑에서 뿡~ 하고 가스 터지는 소리가 나는 게 아니냐! 어찌나 우습던지
이후로 나도 방귀가 마려울 때면 꼭 옆에 있는 사람에게 보단을 눌러달라고 해서 사람
을 웃겼지. 나중에는 사람들이 다 알고 보단을 눌러주지 않기에 아무 데나 볼록 튀어나
온 데를 누르면서 마구 발사하고는 했지..

 

* 황대권, <빠꾸와 오라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