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성찰

[박승옥] 농업과 사회전환운동의 출발 : 녹색 공동체의 형성

정정진 2010. 2. 21. 10:59

널리 널리 알리려고 퍼옵니다.

박승옥 시민발전 前 대표를 강사로 초청하고자 하니, 내용을 꼭 읽어보세요. 딱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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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제12차 정책포럼>



[2009 시민운동 상상력] 세 번째


“농업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다~!”

- 2009년, 농업/농촌 시민운동을 시작하자 -


                             o 일시 : 2009년 4월 16일(목) 오후4시

                             o 장소 : 흥사단 강당(동숭동)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서울시 중구 장충동 2가 186-28 우리함께빌딩 3층

전화 : 02-734-3924 팩스 : 02-6280-3924  www.civil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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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과 사회전환운동의 출발: 녹색 공동체의 형성


박승옥(시민발전 대표)


1. 석유문명은 붕괴된다!


- 값싼 석유의 시대는 갔다. 이제 석유는 배럴당 2백 3백 달러가 문제가 아니라 확보하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지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 이윽고는 석유 자체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말게 될 것이다.

- 지금까지 인류는 석유를 대략 1조 배럴 조금 못되게 소비했다. 인류는 수백만 년에서 수억 년에 걸쳐 만들어진 자연의 보물인 석유를 1세기라는 그야말로 찰나와도 같은 짧은 시간에 소양댐 44개가 가두고 있는 물의 양 만큼이나 마구잡이로 퍼다 썼다. 땅 속에 있는 전체 석유의 대략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양이다.


- 전세계 석유의 궁극매장량은 기관과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르게 추정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조 6천억, 미국지질조사연구소는 3조 1천억 배럴, 국세석유가스정점연구회 창설자 가운데 하나인 콜린 캠벨은 2조 5천억 배럴로 본다. 대략 2조 배럴 조금 넘는다고 예측하는 사람이 많다. 궁극 매장량이 얼마건 석유는 명확히 언젠가는 고갈되는 자원이다.


- 석유를 생산하는 유전은 전세계에 걸쳐 약 2만 여 곳이 있다. 그중 하루 10만 배럴 이상을 생산하는 약 110여 개의 거대 유전에서 전세계 석유생산량의 40% 이상이 나온다. 2007년의 경우 전세계 석유 생산량은 하루 약 8,150만 배럴 정도이다. 물론 이 통계는 어디까지나 추정치이다. 왜냐하면 전세계 원유생산 국가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정확한 석유생산량을 공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산유국은 석유관련 자료를 국가 최고급 비밀로 하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에서는 석유관련 정보를 누설하면 7년 징역에 처해진다.


- 1956년 킹 허버트가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1970년에 정점에 도달한다고 주장하고, 그 뒤 14년이 지난 1970년에 실제로 허버트의 예측이 그대로 들어맞은 이래 석유정점론(Peak Oil)은 에너지 문제의 화두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세계 주요 거대석유회사 가운데 하나인 토탈도 2004년 오일피크는 2020년에서 2030년 사이일 것이라고 발표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의 내부 비밀연구에서는 석유정점을 2014년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대체로 석유정점은 2010년에서 2020년 사이 어느 지점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편이다.


- 미국을 비롯해서 리비아, 베네수엘라, 인도네시아, 알제리, 이란, 멕시코, 노르웨이, 영국, 나이제리아 등등 이미 전세계 50개 남짓 산유국 가운데 그 절반인 25개 나라 이상이 정점을 지났다. 특히 세계 석유생산량 1위이자 석유정점의 시기를 판단하는 기준치인 사우디의 생산량도 2005년 1111.4만 배럴을 정점으로 2006년 1085.3만 배럴, 2007년 1041.3배럴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석유 발견의 정점도 이미 1963년에 지났다. 1990년 이후 발견된 유전의 평균 규모는 5천만 배럴에 지나지 않는다.


- 석유정점은 어느 해 어느 날로 특정해서 예측할 수 없다. 생산량이 비밀이라는 사실 때문에도 그렇지만 생산량 자체가 다양한 요인으로 말미암아 늘 오르락내리락 하기 때문이다. 유가가 하늘 높이 오르는 데도 공급량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평평한 지평선을 그리고(plateau 현상), 이른바 공급의 가격탄력성이 적어지고, 그런 현상이 한 동안 지속되다가 이윽고 더 이상 생산량이 늘어나지 않고 하락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바로 석유정점의 도래가 된다. 그런데 지난 30개월 이상 석유생산 곡선은 대체로 개마고원처럼 평평한 지평선을 그리고 있다.


- 석유정점은 단지 석유가 고갈되고 생산이 정점에 도달했다는 석유생산의 공급 수요 곡선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 산업문명 자체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자본주의 산업문명의 주춧돌이 값싼 에너지였기 때문에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 대한 충격은 오일 쇼크 정도가 아닐 것이다. 전체 시각을 가져야 그나마 도대체 미래에 무엇이 일어날 것인지 가늠해볼 수가 있다.

- 석유정점만이 문제가 아니다. 식량정점도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다른 무수한 천연자원 또한 고갈되어 가고 있다.(peak everything)


2. 끔찍한 식량재앙이 다가오고 있다

- 석유정점의 쌍둥이, 식량정점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용으로 사용되던 엄청난 양의 화학무기들이 산더미처엄 재고로 쌓여 있게 되었다. 이들 군사용 화학무기들은 곧 농약과 샴푸 등으로 개발되어 논과 밭, 그리고 사람 몸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농약의 대량 사용은 2차대전이 낳은 결과 가운데 하나이다. 그 결과 식량 생산량은 2.5배에서 3배로 늘어났다. 1945년 대략 20억이던 세계 인구는 지금 67억으로 늘었다.


- 식량의 90%가 석유와 가스이다. 곡물생산에 들어가는 화석연료 에너지의 1/3은 1헥타르 당 200시간이 들어가는 사람의 노동력을 1헥타르당 1.6시간으로 줄이는 데 쓰인다. 나머지 2/3의 에너지가 곡물 생산에 들어가고 그 가운데 1/3이 비료로 들어간다.

- 씨앗, 논밭갈기, 비료, 농약, 가을걷이, 도정, 포장, 운송, 보관 등등 석유가 투입되지 않는 분야가 없다. 우리는 사실상 석유를 먹고 디룩디룩 살이 쪄서는 다이어트를 한다고 실내에서 이상한 기계 위에서 땀을 흘리는 이상한 포유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먹지 않고 버리는 남한의 음식쓰레기 양은 북한 동포들의 굶주림을 모두 해결하고도 남을 양이다.


- 녹색혁명 또한 이제는 불가능한 환상임이 드러나고 있다. 녹색혁명의 산실인 필리핀의 국제미작연구소(IRRI)는 록펠러재단을 비롯한 석유업자들과 농약, 비료를 만드는 거대 화학회사들이 자금을 지원했다. 여기서 만든 종자는 농약과 비료를 투입해야만 하는 종자였다. 


- 오늘날 모든 나라에서 농지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전세계 경지면적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감소로 돌아섰다. 흙이 1cm 만들어지는 데 대략 200년이 걸리는데, 매년 약 240억톤이 넘는 표토가 유실되고 있다. 표토가 유실된 농토는 곧바로 염분이 많은 불모의 땅으로 변하고 사막화가 진행된다.


- 세계 식량생산량은 1996년 이후에는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다. 밀과 쌀 가격이 2배로 뛰었던 1970년대 초 이래 세계 곡물재고량은 60일분이 채 안되는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 석유농업은 녹색혁명이라는 허울좋은 이름 아래 각 지역의 환경에 적응해 왔던 전통농업과 가족소농을 완전히 파괴해버리고, 다국적 곡물메이저의 노예로 전락시켜버렸다. 게다가 이제는 생명공학이라는 끔찍한 과학기술로 유전공학 농업까지 확산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런 현대 자본주의의 과학기술을 이용하는 석유농업, 유전공학 농업은 사실상 인간과 자연을 극한까지 착취하는 착취농업이며, 소수의 석유메이저 이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비참하게 생활하다 죽어야만 하는 흡혈귀 농업에 다름 아니다. 


- 석유정점이 되면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갈 것이고 지금의 값싼 비료와 농자재, 농기계는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곡물생산량 감소는 필연이며, 식량위기, 식량전쟁은 필연이다. 2008년 2월 카메룬에서는 식량폭동이 일어나 40여 명이 죽었다. 4월에는 아이티에서 일주일 동안 식량폭동이 일어나 2명이 죽고 총리는 해임되었다. 이집트에서 인도네시아까지 전세계 50여 나라에서 지금 식량폭동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는 지금 무차별로 터지는 식량 폭탄 때문에 곳곳이 지옥도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 물론 국제투기자본의 투기가 고유가와 곡물가 폭등을 부채질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오늘날 전세계 외환 거래에서 실제 상품 거래에 쓰이는 액수는 고작 2%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대부분 국제 투기자본의 이동이라고 보면 된다. 투기자본이란 적어도 20% 이상의 단기 고수익을 노리면서 먹이감을 찾아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하이에나들이다. 1997년 한국을 공격해 순식간에 서울의 빌딩에서부터 외환은행과 포스코 등 대기업까지 산업 전반을 먹어치운 IMF 사태가 바로 그런 투기자본의 포식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문제는 그런 하이에나들이 왜 곡물과 석유, 철과 구리와 아연 등 천연자원을 먹이감으로 선택했는가에 있다. 곡물소비량은 급증함에도 곡물생산량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있는 허기진 공급 부족의 먹이감을 놓칠 하이에나는 없다.


- 물론 현재의 곡물생산량은 지구상의 65억 인구를 충분히 먹여 살리고도 남는다. 지금 세계 곡물생산량의 40%가 가축사료로 소비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곡물생산량의 80~90%를 가축사료용으로 소비한다. 굶주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배를 불리는 곡물교역량 80% 점유의 미국계 카길,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와 프랑스계 드레퓌스(12%), 아르헨티나계 벙기(7%), 스위스계 앙드레(5%) 등 5대 곡물메이저들, 몬산토와 같은 유전자조작 종자와 농약생산 다국적 기업들이 있는 한, 그리고 이들을 지원해 소농 중심의 지역 식량 자립을 무너뜨리고 있는 국가가 있는 한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불평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굶주림은 분명히 식량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 체제의 문제이고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 지난 50년 동안 세계 곡물시장은 늘 과잉생산과 과잉공급 상태였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곡물시장은 공급과잉에서 공급부족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있다. 2004년 초 중국이 마침내 밀 800만톤을 수입해야 하는 식량수입국으로 전락했다. 그해 8월 중국은 베트남으로부터 쌀 50만톤을 수입하고자 했으나 거절당했다. 국제 쌀 교역량이 현재 약 2,500만톤 규모인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이 가운데 1,600만톤을 태국, 베트남, 미국이 수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식량수입국 전락이 미치는 앞으로의 국제 곡물시장 혼란을 짐작하게 한다.


- 그런데도 식량자급율 20%대, 쌀을 제외하면 5% 정도인 우리의 현실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여전히 음식쓰레기들은 산더미처럼 양산되고 있다. 북한의 식량 자급율이 무려 60%대인데도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갔다는 사실 또한 우리와는 거리가 먼 머나먼 얘기일 뿐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은 남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훨씬 잘 살았던 공업국가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다. 1950년대 북한은 남한에는 단 1대도 없었던 트랙터를 3천대나 보유하고 있었다.


3. 기후변화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 사람들은 2세기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땅속에 파묻혀 있던 화석연료를 어마어마하게 퍼올려 소비했다. 그 결과 땅속에 수억년 동안 잠자고 있던 이산화탄소가 대기 속으로 다시 귀향해버렸다. 이제 기후변화는 사람이 스스로 자초한, 돌이킬 수 없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1800년 이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약 280ppm이었으나 2000년에는 약 380ppm,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 추산으로는 2007년에는 약 400ppm이 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1년에 약 80억톤의 탄소(이산화탄소 환산 300억톤)가 대기 중으로 뛰쳐나오고 있다. 지난 수십만 년 동안 이산화탄소 농도가 280ppm을 넘은 적이 없었다.


- 지구온난화 현상은 도처에서 확인된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아버리고 있다. 히말라야와 알프스, 킬리만자로의 빙하와 만년설이 사라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해수면은 계속 상승하고 있고 투발루를 비롯한 섬이 바닷물의 상승으로 잠기고 있다. 그린란드가 다 녹으면 해수면은 6m 정도 높아질 것으로 예측하는 학자도 있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멕시코난류(Gulf Stream)의 흐름이 3분의 1이나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유럽에는 조만간 빙하기가 도래하리라는 불길한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 시베리아 툰드라 지대와 알래스카 등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얼음 밑에 저장되어 있던 메탄가스 또한 대기 속으로 빠르게 편입되어 들어가고 있다. 기후변화의 가속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1배나 강한 온실가스이다. 특히 대부분 축산업에서 발생된 대기 중 메탄가스 농도는 산업혁명 이후 2배나 증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지구촌 곳곳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극심한 홍수와 가뭄, 카트리나와 같은 초대형 태풍이 자주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황금개구리의 멸종도 기후변화로 말미암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도 기후변화는 식물들을 혼란에 빠뜨려 개화시기에 이상이 생기면서 식량생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 지구온난화의 정반대 현상으로 이산화탄소 등 대기오염 물질의 증가로 말미암아 지구 표면에 도달하는 햇빛의 양이 차단되는 글로벌디밍(global dimming)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된다. 이는 지구에 도달하는 햇빛의 양이 줄어들어 대양의 수분 증발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강수량이 줄어들게 되고 지구촌 곳곳에 가뭄 현상을 일으킨다. 1960년대 이후 아프리카 사헬 지역은 강수량이 갑자기 떨어져 급속하게 사막으로 변했다. 서구의 주장처럼 이 지역 주민들이 낙타와 양, 소들을 지나치게 많이 방목해서 식물을 파괴했기 때문이 아니다. 사헬 지역에 해마다 유입되는 인도양의 몬순 구름 자체가 적어지고 있는 것이 사헬 지역 가뭄의 원인이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 서부의 가뭄 등 기후변화와 글로벌 디밍의 결과로 추정되는 이상현상이 전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 물 공급을 둘러싼 전쟁이 다가오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으로 농업용수는 말할 것도 없고 지하수까지 사람이 먹을 식수가 고갈되고 있다. 아프리카와 호주의 심각한 물부족 사태는 도시 자체를 폐허로 만들고 있다.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내리면 인도 북부와 동남아 일대까지 농업이 불가능한 상황이 닥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세계는 바야흐로 물전쟁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 미국방성에서 국가안보 차원에서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몇 개의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한 펜타곤보고서는 석유중독 국가인 미국의 인식을 그대로 내보이고 있으며, 이들이 상정하는 석유정점 이후의 세계는 전쟁과 기아이다.


-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04년 4억 6,500만톤으로 세계 9위이다. 이것은 8톤 트럭 탱크로리 4,650만 대 분량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8톤 탱크로리 트럭 1000여 대의 줄이 일렬로 죽 이어져 있는 분량과 같다.


4. 한국경제에 미래가 있을까


- 한국의 눈부신 압축 경제성장, 압축 산업화의 원동력이자 전제조건 또한 값싼 에너지였다.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을 배후에서 기획하고 추진했던 미국은 처음부터 한국의 산업구조를 석유의존의 산업구조로 재편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1950년대 말부터 이미 미국은 한국에 경제개발계획의 시행을 강요하고 있었고, 1961년 11월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에게 미 국무장관 로스토우는 한국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오직 두 가지,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과 전력을 안정되게 공급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 오늘날 한국경제는 에너지 소비구조의 측면에서 보면 거의 에너지 무개념 경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농업을 비롯해서 전 산업 설비와 운영이 에너지고갈 사태에 대해서는 전혀 대비해 놓지 않은 에너지 리스크 제로 설정의 경제이다.

  

- 한국의 1차에너지 소비(2005년)는 석유가 44.4%, 석탄 24%, 원자력16.1%, LNG  13.3%, 수력 0.6%, 신탄(바이오매스) 및 기타 1.7% 등이다. 명실상부한 화석연료-원자력 에너지 체제이다. 한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는 2005년 4.73TOE로 독일과 일본보다도 많다. 그만큼 경제 규모에 비해서도 에너지 다소비형 경제구조로 정립되어 버린 사회이다.


- 우리나라 최종에너지 소비(2005년)는 산업 분야가 55.2%(제조업 51.8%, 비제조업 3.4%), 수송 분야가 20.8%, 가정 ‧ 상업 분야 21.6%, 공공 ‧ 기타가 2.4%를 차지하고 있다. 제조업 가운데서는 에너지 다소비 산업인 1차금속, 석유화학, 비금속광물이 에너지 소비의 75.4%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제조업 에너지 소비의 절반은 석유이며 25% 정도가 석탄, 그리고 전력이 15%대이고 나머지가 가스, 기타이다.


- 자본주의 상품생산을 가능케 하고 성장과 개발을 추동했던 엔진이 다름아닌 석탄과 석유, 가스 등의 화석연료였다. 이들 에너지는 생산비용에 들어가지도 않을 만큼 아주 값싸게 공급되었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화석연료 경제, 석탄 가스를 포함한 탄소경제이자 자연과 사람을 약탈하는 약탈 자본주의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값싼 에너지와 천연자원을 빨아먹고 사는 기생 자본주의이다. 기생자본주의는 숙주가 죽음에 이르면 또다른 숙주를 찾지 못하는 한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한국 또한 그런 탄소경제와 극심한 양극화를 성장 기반으로 하는 인간과 자연 착취의 약탈경제, 사막경제이다. 이는 전혀 지속불가능하다.


- 값싼 석유가 생산이 정점에 도달하면서 종말을 고하고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른다면 더 이상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은 불가능하게 된다. 흔히 성장이 중단되면 생산 규모만 조금 축소된 형태로 기업은 운용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에너지 공급의 축소와 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생산 축소를 위한 노동자 대량 해고, 수요 감소, 시장 축소, 판매 축소, 다시 노동자 대량해고 등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공황상태로 금방 들어가게 된다. 문제는 과거의 공황은 1929년 월가의 주식폭락에서 시작된 대공황처럼 뉴딜정책과 같은 대규모 개발 정책으로 회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규모 개발 정책은 값싼 에너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역사상 자본주의의 또하나의 유전병인 공황은 늘 이렇게 값싼 에너지 덕택으로 운좋게도 탈출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에너지 공급 자체의 부족과 붕괴 앞에서는 이제 공황은 그 어떤 탈출구도 발견할 수 없다. 혹 외계인들이 새로운 무한에너지를 지구에 선물로 주고 간다면 모를까 자본주의 자체의 몰락 밖에 어떠한 회생책도 불가능하다.


- 게다가 현대 자본주의는 고도로 복잡하게 조직 진화된 금융자본주의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전세계 외환거래의 단 2%만이 상품 결제에 쓰인다. 나머지는 투기자본이다. 특정 상황에 적응해서 고도로 조직 진화된 유기체일수록 그만큼 사소한 충격과 변화에도 민감하게 조직체 자체가 붕괴되고 만다는 것은 상식이다. 세계경제의 붕괴는 지극히 우연한 행위로 시작되어 나비효과처럼 인류문명 자체의 붕괴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너무나 농후하다. 


- 이미 오일피크보다도 더한 석유고갈 사태를 경험한 두 나라가 있다. 북한과 큐바이다. 1990년대 초반 구소련이 붕괴되자 구소련으로부터 석유를 거의 공짜에 가깝게 공급받고 있던 북한과 큐바는 하루 아침에 석유공급이 끊기고 말았다. 이후 초기 석유중독증 환자였던 두 나라가 겪은 금단현상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북한은 아직도 비료와 농약을 지원받으면서 수백만의 아사자를  발생심켰고, 반면에 큐바는 유기농으로 전환, 최소한 굶어죽는 사람은 없는 새로운 탈석유사회 실험에 성공했다. 피크오일 이후를 설계해야 하는 석유중독증 말기 환자의 우리에게는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5. 착취의 풍요는 지속불가능하다


-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전기사용량은 대략 하루 16kWh, 연간 5,800kWh나 된다. 영국이나 일본보다도 더 많다. 세계 8위 쯤 된다. 이게 무슨 문제냐고, 하루 16kWh가 무슨 대수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1kWh의 에너지란 에펠탑 꼭대기(약 320미터)에서 땅에 있는 소형승용차를 맨손으로 꼭대기까지 들어올리는 힘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것이다.


- 우리는 지금 맨손으로 매일 16번씩이나 소형승용차를 에펠탑 꼭대기까지 들어올리는 슈퍼맨들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고용해서 그야말로 과거와 미래를 통틀어 어떤 인류도 누릴 수 없는 호사의 극치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중이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고 있는 풍요는 지금까지 어떤 시대에도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라. 세종대왕 시절 백성들이 겨울에 흔하게 수박을 먹을 수는 없었다. 당연히 세종대왕조차도 먹을 수 없었다. 네로나 엘리자베드 여왕도 에어컨 나오는 마차를 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아주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차상위 빈곤층일지라도 적어도 의식주 일상생활만큼은 동서양의 어떤 제왕보다도 호화롭게 산다.  


- 물론 이것은 전혀 지속불가능하다. 인류 역사상 극히 짧았던 20세기 중후반에서 21세기 초반에 걸쳐 단 1세기 동안에 살았던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정말 호화판 생활일 뿐이다. 미래의 우리 자식들은 이런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풍요를 결코 경험해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석유문명, 과학기술문명은 석유와 천연자원이 고갈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문명이기 때문이다.


- 석유정점 이후 무엇보다도 교통수송 분야의 붕괴가 먼저 일어날 것이다. 전세계 석유의 절반 이상이 비행기, 선박, 자동차, 철도 등 교통 관광 분야에 소비되고 있다. 오늘날 관광산업의 발달은 값싼 석유가 만든 아주 짧은 시간의 백일몽일 뿐이다. 자가용 중심 사회는 이제 더 이상 지속불가능하며, 자가용 사용은 살인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실상 범죄행위이다. 자동차 중심 사회에서 사람 중심 사회로의 전환, 대중교통 체제로의 전환 따라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우리는 이제 자전거 중심 사회, 자전거 속도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 빠른 시일 안에 에너지 소비의 혁명이, 온실가스의 배출을 급속히 줄이지 않으면 우리는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초스피드로 미래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파괴했던 가장 미련한 호모 사피엔스(슬기동물)로 기록될 것이다.


6.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민주주의(민이 주인이고 또 주인이다)는 선거가 아니다. 4년마다 한 번 주인이 되는, 그것도 제대로 된 주인이 아니라 대규모 언론매체의 조작된 이미지에 따라 수동의 객체로서 참여하는 선거민주주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사실상 민주주의가 아니며 민주주의라는 환상일 뿐이다.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아리스토텔레스같은 아테네 철학자들은 선거는 전혀 민주주의 제도가 아니라고 확언한 바 있다. 그런 중우 민주주의, 선동 민주주의는 언제든 곧바로 과두제와 독재로 치달을 수 있는 경향이 강하며 실제 오늘날 서구 민주주의는 히틀러의 파시즘의 예에서 보듯 언제든 독재로 변모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 민주주의의 실현 주체는 국가가 아니다. 국가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이 투철한 민주주의자들이라고 해서 민주주의가 잘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실현 주체는, 실현의 핵심은 공동체이다. 자치와 자립의 공동체 민주주의이다.


- 민주주의의 핵심은 마을 공동체의 자립과 자치이다. 마을공동체가 특히 에너지와 식량을 자립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가능하다. 또한 마을공동체가 입법, 행정, 사법의 모든 분야에 걸쳐 대부분의 경우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치를 행할 수 있어야만 민주주의는 가능하게 된다. 지금과 같은 에너지 집중체제, 에너지 독재체제를 벗어나 에너지 분산체제, 에너지 민주주의체제의 확립이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도 이런 자립이 기초하지 않고 에너지-식량을 외부에 의존하는 체제에서는 언제든 자치는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 1인당 필요 경지면적은 대략 1천 2백평, 4마지기 곧 1에이커 정도이다. 가족농을 중심으로 마을공동체가 복원되지 않으면 끔찍한 식량위기 앞에서 끔찍한 독재의 등장과 피비린내나는 전쟁은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그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도 우리는 에너지와 농업의 자립을 시급히 실현해야 하며, 마을공동체의 복원이라는 풀뿌리운동부터 시작해야 한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동체 사회로의 전환은 자립과 자치를 실천하는 수많은 지역공동체의 형성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지역공동체의 근본은 무엇보다도 에너지와 식량을 자립하는 지역 소농공동체의 재형성이다. 여기에 비정규 문제 해결의 단초가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단언컨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농으로의 존재 이전만이 근본 해결책이다. 생각해보라. 비정규직 노동자 수백만 명이 소농으로서 농촌에 간다면 아마도 우리 사회의 근본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존재 이전은 단순히 실업자 축소와 노동시장의 수요공급 구조를 뒤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 경제 구조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과 상상력을 뒤흔들어 놓는 거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 공장식 생산을 하는 자본주의 대농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대안이 결코 될 수 없다. 지금까지 정부의 농업정책이란 농업포기 정책이었다. 기껏해야 전업농-대농을 육성해서 농업의 경쟁력을 키운다는 정책이었다. 최근에는 카길과 같은 대규모 농어업 회사를 만들겠다는 코메디같은 정책을 버젓이 발표하기도 한다. 가히 개그 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대량 투입하는 녹색혁명, 공장식 농업은 석유의 고갈과 함께 이제 지속불가능하다.  생태순환 농업으로의 전환은 거의 유일무이한 식량위기의 대안이다.


- 한 사회의 기초는 산업이 아니라 농업이며, 식량과 에너지를 자립하지 못하는 사회는 언젠가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이치를 우리는 다시 재인식해야 한다. 미국을 주인처럼 우러러보는 한국의 어륀지족 상류층 매판세력들은 부시 미 대통령이 국민은 먹어야 살고 국가의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국가안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며 국민의 건강과 후생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해외농산물에 의지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식량자급을 하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라고 할 수도 없다고 한 말은 왜 우러러 떠받들지 않는지 모르겠다. 프랑스의 드골은 진정한 독립은 식량자급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자동차와 핸드폰 팔아서 식량을 사온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단견이자 미래 세대를 굶겨죽이려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행위이다.


- 자주개발이란 이름으로 대안으로 거론되는 해외 식량기지 확보 방안도 말짱 도루목일 뿐이다. 일단 식량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 어떤 나라든 제일 먼저 곡물 수출 항구부터 전면 봉쇄한다고 역사는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식량자급 대책은 화급하고도 필수불가결한 우리 사회 최우선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 똥오줌을 이용한 생태순환 농법은 이미 20세기 초반 미 농무부 토양관리국장을 지낸 프랭클린 히람 킹이 중국, 일본, 한국을 둘러보고 확신하던 서구농업의 대안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서구 농업은 지력감퇴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서구에서는 똥오줌을 이용한 거름 농법이 없었다. 그래서 휴경 방식을 쓰거나 비료를 얻기 위해 심지어는 농부들이 전장터를 누비면서 인골을 수집하기도 했다. 구아노(인광석)를 얻기 위해 구아노 제국주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쟁까지 불사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바로 그 시점에서 킹 박사는 마치 컬럼부스처럼 4천년 동안이나 지속되어 온 동아시아의 전통 농법이란 신대륙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대안을 버리고 우리는 엉뚱하게도 지속불가능한 석유농업의 덫에 갇히고 말았다.


- 오늘날 농지는 해마다 줄어들어 1970년 230만 헥타아르에서 2007년 약 178만 헥타르로 줄었다. 농가수는 123만 가구에 지나지 않고, 농민수도 이제는 3백만을 조금 넘는 정도이다. 물론 거의 6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대다수이다. 한국 농촌에는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지금이야말로 절망의 짙은 그늘에 빠져 있는 농촌에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릴 때이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강하게 살리면서 식량자급율도 높이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길, 다름아닌 존재이전 운동이다. 새로운 보나르도 운동이다. 자립농업은 몇 백만의 비정규직 노동자 가족이 소농으로 존재이전을 해야만 비로소 소생 가능하다.


- 우리는 대기업 중심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산업 체제도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생태 순환의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비정규직이라는 현대판 천민 노예보다 스스로 주인으로서 일하는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의 존재이전이 훨씬 더 사람 냄새가 난다. 생태순환의 산업은 경쟁, 생산성, 효율 면에서도 협동조합이 오히려 더 적합하다. 소농들이 중심이 된 에너지-식량의 지역자립 체제 구축이야말로 민주주의 실현의 기초이며, 비정규직의 촛불이자 식량광우병-식량위기의 촛불이다.


- 지금의 청년들은 아마도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대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 될 것이 뻔하다. 노예로서 죽을 것인가 농사꾼으로서 자유인의 삶을 살 것인가. 선택은 스스로 내려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 머지않아 최고의 신랑신부는 농민이 될 것이다


- 에너지전환에 앞서 에너지 소비 제로 혁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에너지소비를 전제로 한 에너지전환은 불가능하다. 현재의 재생가능에너지 기술과 제품도 사실은 완전한 자립에너지 체제로 가는 징검다리 사다리일 뿐이다. 햇빛, 바람, 물, 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은 현재의 산업체제와 에너지 광소비체제의 해체를 전제로 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 만약 지구상에 화석연료를 비롯해서 모든 천연자원이 다 고갈되고 나면 그나마 햇빛발전이나 바람발전도 불가능하게 되고 생태순환형 자립에너지 체제는 오직 식물계 에너지를 중심으로만 가능하게 될 것이다.


- 1830~1870년대 유럽의 토양 영양분이 심각하게 소실된 상황에서 구아노 제국주의가 나타났다. 새똥이 굳어 형성된 구아노를 구하기 위해 미국은 94개의 섬과 바위, 산호초를 점령해 이중 66개를 미국령으로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유럽의 농부들은 워털루같은 전쟁터를 누비며 인골을 가져다 농지에 뿌리기도 했다. 지금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나우루 섬의 비극이 이 구아노 제국주의의 잔영이다. 이 구아노 제국주의는 화학비료의 등장과 함께 퇴조했다.


- 때문에 바이오가스는 도시와 농촌의 결합 체제로 이행하는 주요한 농업-에너지 대안이다. 비옥한 금비인 똥을 막대한 비용을 들여 만든 물로 씻어내고 그로 말미암아 또한 하천을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나머지 슬러지는 해양투기를 하는 이런 어이없고도 미친 수세식 화장실이야말로 현대 도시문명, 산업문명의 멍청함을 상징하는 가장 특이한 발명품이다. 똥은 음식쓰레기와 함께 바이오가스 시설의 혐기성발효를 통해 열과 전기도 얻고 양질의 비료도 얻는 주요한 에너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 우리나라는 지금 민간에서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면 정부가 그 전기를 의무매입하게 되어 있는 발전차액지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발전차액지원제도을 통해 시민들이 에너지 생산자로 나서는 시민발전운동은 어둠 속의 촛불이 아닐 수 없다.


7. 공동체운동이 출발점이다


- 한국의 이른바 진보개혁세력은 무능을 넘어 무개념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허울뿐일지라도 이른바 저탄소 녹색경제의 의제조차 이명박 정부에게 뺏긴 그 한심함은 그들의 본색이 이명박 정부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경제성장 지상주의자들임을 입증한다. 기껏해야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자본주의를 육성하고 경제성장을 해야 한다는 사민주의 복지국가 전략을 운운하고 ‘사회적 일자리’ 정책 정도가 고작이다.


- 난데없이 좌파 신자유주의를 한다며 한미 FTA를 들고 나온 무식과 맹목의 성장주의, 부동산 투기 조장과 뉴타운의 용산 참사로 귀결되고 만 이른바 ‘비판적 지지’의 개혁세력은 이제 범죄자로 전락했다. 그리고 이른바 진보세력 또한 사회주의 말고는 다른 어떤 기획도 없는 학습 지진아로 전락하고 말았다. 북한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인지 중국식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북유럽 사민주의나 큐바와 베네수엘라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인지 도무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 한국의 진보세력은 기후변화, 에너지-자원 고갈, 금융위기 등 삼중의 위기에 대해 어떤 근본의 대안도, 중장기와 단기 정책도 없다. 녹색경제에 대한 어떤 의미있는 기획조차 없다. 그저 그때그때 현실에서 터져 나오는 사건에 따라 언론에 한두줄 구색맞추기로 등장하는 임기응변의 대책뿐이다. 진보세력의 주요한 의제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어떤 의미있는 근본 대책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전국단위 노동조합은 어처구니없게도 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득권 보호장치로 낙인찍힌 상태에서 급기야는 성폭행 사건까지 일어나 이제는 민주주의와 공동선의 어떠한 의미있는 활동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 그럼에도 한국의 진보세력이야말로 녹색경제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수원지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다름아닌 지역 때문이다. 지금도 전국의 지역에서는 이른바 진보세력이 빠르게 녹색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비단 녹색농업을 선택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녹색에너지, 녹색건축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다. 협동조합 운동도 작년 한 해 원주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1천 5백명이 넘을 정도로 전국 각지로 빠르게 확산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성미산 공동체나 부산의 물만골 공동체, 마포 민중의 집처럼 도시에서도 아파트와 주거 현장에서 생협과 다양한 공동체들이 선을 보이고 있다.


- 진보신당의 녹색 세력이 중심이 된 에너지정체센터와 민노당에서 최근에 결성된 환경위원회 등도 진보정치를 녹색정치로 바꾸는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조합운동도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지역에서 녹색 협동조합 성격을 갖춘 지역 노동조합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대부분의 진보학자들과 이론가들도 급격한 기후변화와 에너지 고갈의 현실 앞에서 녹색 의제를 정면으로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 그러므로 문제는 다시 지역과 공동체이다. 녹색경제는 이런 지역과 수많은 공동체의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공동체 경제가 튼튼히 뿌리내려야만 국가 권력을 공동체의 권력으로 바꾸는 진짜 뉴딜은 비로소 가능해진다. 끝- 이윤이 목표가 아니라 우애와 협동이 목표인 협동조합은 그 속성상 규모화를 억제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힘과 자립 자치의 견인력을 갖고 있다. 때문에 녹색경제는 기업경제와 달리 반드시 공동체의 재조직 경제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으며,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원주의 다양한 협동조합은 그 산 실례이다. 최근 원주의 협동조합에서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 자립마을 시도는 협동조합이야말로 녹색경제의 보루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 공동체의 재구성 없는 사회운동은 이제 무의미하다. 그리고 지속불가능하다. 농촌공동체뿐만 아니라 도시의 다양한 공동체운동도 지속가능한 경제와 사회안전망의 기초이다. 지역먹거리(Local Food) 체계와 도농 직거래 체계를 비롯해서 생협, 의료생협, 공제조합 등 각종의 다양한 협동조합은 지역 순환경제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된다. 여기에 수많은 녹색 일자리가 있다.


- 이윤이 목표가 아니라 우애와 협동이 목표인 협동조합은 그 속성상 규모화를 억제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힘과 자립 자치의 견인력을 갖고 있다. 때문에 녹색경제는 기업경제와 달리 반드시 공동체의 재조직 경제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으며,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원주의 다양한 협동조합은 그 산 실례이다. 최근 원주의 협동조합에서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 자립마을 시도는 협동조합이야말로 녹색경제의 보루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 특히 도시의 공동체운동은 우선 아파트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파트 입주자들의 자치기구에서 에너지-식량과 관련된 수많은 활동을 할 수 있다. 생협 뿐만 아니라 우선 당장 부산에서 시작된 상조 서비스 사업을 공제조합으로 전환하는 운동부터 필요하다. 지금 상조 사업은 조만간 무너질 다단계 판매사업으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서민들의 자조 금융인 신협운동도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녹색건축의 건축 협동조합 기업도 시급히 시작할 수 있는, 수많은 일자리 창출의 저수지이다.


- 지역에서부터, 자신의 주거에서부터 시작하는 공동체운동이 깨어나야만, 일터에서의 노동조합운동도 공동체운동으로 다시 재출발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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