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소박한 삶이 진정한 희망입니다”
농어민신문 2009년1월5일자 (제2110호)
새해,도법스님이전하는 희망메세지
2008년은 나라 안팎이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습니다. 각종 FTA,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국을 휩쓴 조류인플루엔자, 각종 농자재가격 인상 등으로 우리 농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지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간의 생명평화탁발순례를 마치고 지리산으로 돌아와 새해를 맞이하면서 ‘생명의 절대적 조건은 자연, 농업, 농촌이며, 이 근본이 무너지는 것이 생명위기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이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걸었던 길을 돌아봅니다.
모두 생명위기의 시대라고 소리를 높이지만 생명의 절대적 조건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았고 오로지 경제논리만 난무했습니다. 전국 어느 곳을 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농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돈 버는 농업, 살맛나는 농촌’의 깃발이 온 나라에 나부꼈습니다. 그러나 ‘돈 버는 농업’과 ‘살맛나는 농촌’은 함께 들 수 없는 깃발입니다. 그것은 농업의 논리가 아니라 자본의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농민들의 파산과 농촌공동체가 붕괴되는 벼랑끝의 길이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경제성의 논리로 따지면 농업과 농촌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경쟁 논리로 접근하면 농업, 농촌은 더 이상 희망을 이야기할 근거가 없습니다. 목도하는 바처럼 경제성, 경쟁력의 논리가 FTA를 말하고, 농업정책을 축소하고,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들녘 한 복판에 버젓이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는 간판을 세우면서 농촌을 잠식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농촌은 인류의 문명과 문화의 영원한 뿌리요, 고향입니다. 농업은 인간과 자연, 이웃과 이웃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바람직한 삶의 방식입니다. 현재 생명 위기의 본질은 문명의 고향이며 생명의 뿌리인 농촌, 농업의 가치를 무시하고 함부로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21세기 화두가 되고 있는 지속가능한 사회도 과학기술과 도시 문명이 아니라 천하의 근본인 자연, 농촌, 농업에 근거할 때 비로소 실현 가능합니다. 아무리 현대사회의 산업 구조상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위치가 작아졌다 하더라도 농업·농촌은 나라의 근간이요, 국민의 목숨줄이라는 엄중한 사실은 달라지지 않음을 직시할 때입니다.
문제의 실상이 자명함에도 돈 논리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는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가 봅니다. 최근의 위기 상황이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버리라고 웅변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돈 논리에 따른 해결책과 도시 중심의 정책이 난무하고, 경기 부양이라는 허망하고 구태의연한 구호와 주장만 넘쳐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도시나 혹은 서울이 더 나은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소위 지옥철에 갇히고 빌딩 숲에 묻혀 하늘 한 번 제대로 못보고 살아가는 팍팍한 삶들이 있을 뿐입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극한경쟁과 강박 속에서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마저 팽개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받고 있는 곳이 오늘의 도시문명 사회입니다.
온 나라가 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주체적으로 차분하게 자신의 삶을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 농촌에서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구축하는 일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대안이고 희망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립, 자치 체계의 확립이야말로 생명 위기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 농민들이 농업·농촌의 가치를 다시 깊이 새기고, 그 가치에 맞게 민주주의의 생활화와 단순 소박한 삶으로 진정한 희망의 촛불을 피워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문명의 뿌리인 농촌을 지키고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농부가 되는 것은 세상에 한 인간으로 태어나 인생을 걸만한 값지고 좋은 일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농업·농촌에 대한 깊은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나아가면 시대의 흐름은 반드시 농업·농촌의 가치를 중심 화두로 삼게 된다고 봅니다. 그 때엔 절망하고 불안해하는 도시민들도 농업·농촌에서 희망을 보고 국민농업이라는 화답을 해 올 것입니다.
올해는 소의 해입니다.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라고들 합니다. 농민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그러할 것입니다. 위기는 기회라고 합니다. 지금의 위기가 바로 농업·농촌에서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소의 큰 걸음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세상을 온 몸으로 품어 안는 농촌 농부가 되어 한 해의 문을 열었으면 합니다. 경제 논리, 경쟁력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기꺼이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단순 소박한 삶을 선택하는 위풍당당한 농촌 농부의 길을 가는 원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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