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성찰

2015년 대한민국, 청년의 삶_ 청년유니온,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정정진 2016. 5. 24. 11:05


한국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은 2010년 3월 창립했다. 청년유니온의 태동은 21세기, 밀레니엄을 맞이한 우리가 '첫 번째 10년'을 보내면서 나온 결과물이다. 괜찮은 일자리는 줄고 노동시장 주변부가 확대되면서 생애 첫 일자리를 얻는 청년이 곤경에 처했지만, 한국 사회는 이에 대처하는 데에 실패했다. 시스템은 적절히 작동하지 않았고, 노동운동이나 정당정치도, 시민사회도 무력했다. 청년은 스스로를 지켜낼 조직이 필요했다. '일하고 꿈꾸고 저항하는 청년의 노동조합'은 그렇게 출발한다.


한국 사회에도 노동생산성이 커지는 만큼, 그러니까 한 명의 노동자가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 경제가 양적으로 성장하는 만큼 양질의 일자리가 생기고 임금이 오르던 시대가 있었다. 1997년까지 이어지던 '고속 성장'의 시기다. 고용과 성장은 선순환하는 것처럼 보였고 누구든 노력하면 중산층을 꿈꿀 수 있던 때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20대일 때, 즉 대학만 나오면 입사 서류를 여럿 쥐어들고 기업을 선택할 수 있었노라 회상하는 그때다.


모든 것이 1997년 바뀌었다. 김영삼정부는 이미 1994년부터 노동유연화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외환 위기는 한국 사회 전체에 이른바 '신자유주의' 경제 운영 원리가 빠른 속도로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기업을 살린다는 자상 목표하에 대규모 정리 해고가 자행되고, 퇴직 노동자는 쌈짓돈으로 자영업자 대열에 합류했다. (기승전-치킨집의 테크트리는 그때 생겨났다) 비정규직, 말 그대로 정규직이 아닌 모든 것이라는 유연한 고용 형태가 등장했고, 기업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언제든 노동자를 손쉽게 해고할 수 있게 되었다. 중산층은 무너지고 일자리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졌다.


200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청년'은 사회경제적 약자로 등장한다. 기업은 고용만 줄이는 게 아니라 신입 사원 재교육 비용까지 절감하기에 이르렀다. 괜찮은 일자리가 줄어들어 빈 곳은 불안정한 일자리로 채워졌으며, 기업은 바로 가져다 쓰고 버릴 수 있는 '비정규 경력직'을 선호하기 시작한다. 대기업이 생산을 외주화하면서 원,하청 구조가 확대되는데, 이윤을 독식하는 최상위 대기업이 아래로 비용을 전가하는 동안 중소기업의 일자리는 더욱 나빠졌다.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로 대두했고, 취업 애로 계층으로서 '청년'은 2003년 '청년실업해소 특별법'제정을 기점으로 고용 정책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12년이 흘렀지만 청년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경제위기의 부정적 폐해는 일자리를 최초로 구하는 청년층에게 좀 더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계속 줄어드는 괜찮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에 나설 최소한의 자격이라도 얻으려고 청년은 다른 선택지 없이 대학에 진학했다. 학자금 대출을 받고 높은 월세 비용을 감당하느라 주거 빈곤층으로 전락했으며, 토익 성적과 어학연수가 포함된 이력서 한 장을 만들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돈을 들이게 됐다. 그렇게 극소수의 승리자 외에는 대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경쟁이 본격화됐다.


기업은 청년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청년 실업의 원인을 청년이 눈높이만 높고 능력이 부족한 것에서 찾았다. 착하디착해 자기 탓밖에 할 줄 모르는 청년은 더 노력했다. 하지만 모든 노력을 다한 청년층에게 허락된 것은 2년짜리 계약직 일자리, 정규직 희망 고문, 그것도 아니면 열정 페이 인턴이었다. 인턴도 감지덕지, 뽑히기 위한 경쟁을 해야 하는 지경이다. 청년은 착취해도 좋으니 일자리를 달라 애걸하는 처지가 됐다. 끊임없이 공급되는 노동력에 힘입어 '싫음 말고' 식으로 마음껏 골라 쓸 수 있는 기업만 신이 났다.


2015년 통계청 기준에 따르면 청년층(만15~29세)의 실업률은 11퍼센트, 실질실업률은 31퍼센트에 이르렀다. 사회와 연결이 약해진 청년 니트는 163만 명에 이른다. 첫 번째 일자리가 1년 미만의 초단기 계약직인 대졸자의 비율이 20퍼센트를 돌파해 2008년에 비해 두 배나 늘어났다. 만 29세 이하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급은 2009년 94만 9000원, 2013년 101만 6000원으로 100만 원 수준에서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이른바 고학력 실업자가 양산되고 일자리의 질이 악화되는 사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비진학 고졸 구직자의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청년은 경제적 사정 때문에 '묻지 마 취업'에 나서며 이곳저곳 전전하지만 경력이 쌓이기는커녕 비정규직이라는 낙인이 찍혀 노동시장 주변부를 맴돌고 있다. 장기 실업에 지친 누군가는 아예 구직 활동 자체를 포기하기도 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이상, 이제 보통의 청년은 더 이상 '미래를 열어갈 새 세대'가 아니라 시급한 사회적 조치를 필요로 하는 '노동 약자'다.


2015년 대한민국, 청년의 삶은 절벽 끝에 서 있다. 기성세대에게 허락된 삶의 방식이 산산이 파괴된 뒤 새로운 대안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회의 출발선에 선 청년은 노동과 주거,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서부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불안정 저임금 노동을 하면서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고, 주거비를 비롯한 생계 비용을 마련하다 보면 저축은 고사하고 매달 더 큰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쌓이는 부채를 제때 해결하지 못하면 시시때때로 신용주의자가 될 위험에 빠진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미래를 계획하거나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삶. 평생에 걸쳐 조금씩 나아지리라는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삶. 사회적 관계마저 해체되어 공동체와의 유대오 연대를 경험하지 못한 채 배제되고 고립된 삶. 연애와 결혼도, 출산도 개인이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포기하기를 강요받는 삶. 더 이상 빼앗길 것이 없지만 지금의 현실에 달관하기를 종용받는 삶. 청년의 삶은 그렇게 무너지고 있다.


결국 청년이 겪고 있는 사회경제적 문제는 청년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에 의한 것이며, 그러한 시스템의 한계점에서 발생한 것이다. 즉 청년 문제라는 것은 우리 사회가 수십 년간 키워온, 그러나 한 번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오래된 문제, '불평등'이 낳은 현상이다. 그 불평등의 핵심에는 노동에 의한 소득, 임금의 문제가 있다.


최저임금은 청년임금이다


"바보야, 문제는 임금이야!"

그렇다, 문제는 임금이다. 그렇다면 청년의 임금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원칙적인 정답은 노동조합을 통해 스스로 단결함으로써 기업 단위 혹은 초기업 단위의 임금 단체 협상에 나서는 것에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0퍼센트 수준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단 1퍼센트만이 집단적 노사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마저도 사용자의 노조 파괴 탄압에 의해 노동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 앞선 세대에 비해 더 불안정한 일자리에 진입하는 청년에게는 '노동조합이 없다.'


'바보야, 문제는 최저임금이야!"

그렇다. 청년의 입장에서 문제는 최저임금이다. 청년유니온은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최저임금에 주목했다. 청년유니온이 진행한 최저임금 운동은 다음 문장 하나로 압축된다. '최저임금은 청년임금이다.'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열악하고 취약한 조건에서 노동하는 청년이야말로 최저임금 당사자다.


그리고 최저임금은 '00 임금'이다. '청년'이란 노동시장 주변부를 배회하는 노동자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들은 알바 노동자이자 여성 노동자이고, 고령 노동자, 이주 노동자, 시간제 노동자, 하청 노동자, 파견 노동자, 450만 명에 이르는 저임금 노동자다. 최저임금은 이들 모두의 임금이며, 최저임금 결정 과정은 노동조합을 가지지 못한 모든 노동자의 임금 단체 협상이다.


그렇다면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어야 할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청년을 비롯한 최저임금의 직접적인 당사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임금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생활수준이 개선된다. 최저임금 인상은 다른 무엇보다 불안정 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우선적인 목표가 있다.


둘째,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청년이 선택할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가 늘어난다.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시장의 하단에서부터 일자리 수준을 향상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누구나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만한 수준의 일자리가 생겨나야 청년이 무한 경쟁의 늪에서 빠져나와 노동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청년에게 다짜고짜 눈높이를 낮추라고 권하기 전에 세상에 널린 저질의 일자리를 괜찮은 일자리로 바꿔나가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것이 흔히 '구인 구직 미스매치'라 부르는 현상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셋째, 노동시장에 적용되는 임금 기준이 높아짐으로써 모든 노동자의 임금이 함께 인상된다. 최저임금은 임금 협상의 기준으로 기능한다. 한편 노동시장에서 저임금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임금 수준이 최저임금의 결정에 따라 더 밀접하게 변동하는 노동자의 규모도 커졌다. 그때 최저임금은 임금 결정의 준거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최저임금에 의해 단순히 임금 구조의 하단이 잘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임금이 영향을 받는 것이다.(이정아, '최저임금과 임금', 사회경제평론 46호 2015, 참조)


넷째,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저임금 노동자의 구매력이 향상되어 내수 소비가 늘고 전체 경제가 활성화된다. 노동자는 생산자인 동시에 시장에서의 소비자다. 아무리 많은 상품이 생산되어도 소비할 사람이 없으면, 즉 소비자의 가처분소득이 낮으면 내수는 진작되지 않는다. 임금소득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계의 소득으로부터 경제 활성화를 모색해야 한다. 가계 부채가 1100조를 넘어선 현실에서 '부채주도의 수출 중심' 경제로는 더 이상 경제를 가동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득 주도의 내수 중심' 경제가 한국 경제의 새로운 해법이다.


그리고 우리는 2015년 최저임금 운동을 시작하며 노동계, 시민사회와 한목소리로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만 34세 이하 청년 노동자(미혼 1인 가구)의 한 달 평균 생계비는 186만 5000원가량 된다. 2015년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116만 6220원이다. 한 달 꽉 채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최저임금으로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한 현실이다. 매달 70만 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최저 시급 5580원을 받으며 영어 학원 수강료 34만 원을 내려면 60.9시간(7.6일) 숨만 쉬고 일해야 한다. 1년치 대학 등록금 734만 원을 준비하려면 1315시간(164,4일), 7평짜리 원룸 월세 50만 원을 납부하려면 89.6시간(11.2일), 평균 전세 가격 2억 8000만 원을 마련하려면 5만 179시간(6272.4일, 17.18년) 꼬박 일해야 한다.


보다시피 최저임금 시급 1만 원, 월급 209만 원이란 더 이상 빚지지 않고 살면서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삶의 가능성이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청년 문제 해결의 출발선이자 우리 삶의 새로운 가능성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청년 세대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공동 과제다.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활동은 '청년의 사회적 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청년 세대가 집합적 주체가 되어 세대 공동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으로서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라는 합의의 산물을 위해 사회 전체를 상대로 벌이는 싸움이다.


이런 시급 6030원_ 청년유니온,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