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웠던 이 글이 여러분에게도 큰 힘이 되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천길 벼랑 끝 100미터 전,
하느님이 날 밀어내신다. 나를 긴장시켜려고 그러시나?
10미터 전. 계속 밀어내신다. 이제 곧 그만두시겠지.
1미터 전. 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미시진 않을 거야.
벼랑 끝. 아니야,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 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
....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
"올해 스물아홉, 대학 졸업 후 조그만 회사에 입사해 4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처음엔
힘든 시기에 직장을 구했다는 자부심과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설렘이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나 고민입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사치라고 하겠죠? 이 나이에도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하는 저 자신이 한심합니다."
요즘 들어 이런 메일이 부쩍 많아졌다. 이 땅의 젊은이라면 이런 생각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았을 거다.
특히 대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원하던 학교나 과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 졸업은 했지만 취직을 못 한 사람.
다니는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다니는 직장의 고용 상황이 불안정한 사람, 결혼해서 아이 낳아
웬만큼 키워놓고 다시 뭔가 해보려 했지만 현실의 높은 장벽 앞에 낙담한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도 누구 못지않게 비틀거린다. 사람들은 나를 어떤 선택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거침없이
나아가면서 자유를 한껏 누리는 사람이라고 여기곤 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일단 무엇인가를 선택하면
그 후에는 거기에 올인하고 집중하고 끝까지 해보는 성향은 분명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선택하는 순간까지는
나 역시 다른 이들처럼 흔들리고 떨리면서 너무나 괴롭다. 내 앞에 놓여 있는 옵션은 다 살펴보았는가?
내 선택이 과연 최선인가? 혹시 내가 선택한 것보다 더 좋은 게 뒤늦게 나타나면 어떻게 하나? 그러나 지금
선택하지 않으면 내 기회는 사라지는 거 아닌가?
돌이켜 보면 나 역시 십대, 이십대에는 안달복달하며 살았다. 가고 싶은 방향만 어렴풋이 알았을 뿐,
매일매일 비틀거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내 인생에 있어 첫 번째
큰 선택은 대학의 학과를 정하는 것이었는데 어렵게 다시 공부해서 들어간 대학이었지만 가고 싶은
학과에 가지 못했다. 나에게 특별장학금을 주겠다는 학교에는 언론학이나 국제관계학과가 없었다.
영문과는 차선책이었다. 나중에 꼭 국제 무대에서 일하고 싶으니 일단 영어를 잘 배워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미국 유학을 갈 때도 그랬다. 개인 장학금을 받아 가느라 학교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매우 좁았다. 그때 나는 원하는 학과가 아니라도 세계를 무대로, 대중을 상대로 일할 수 있는 학과라면
일단 가자, 라고 생각했다. 그게 국제홍보학과였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잘 다니던 외국계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떠날 때, 그 여행을 다녀온 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줄은. 그리고 그 오지 여행이 지금 하고 있는 구호 일과 이렇게 맞춘 듯이 이어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대학 때나 유학 시절, 꼭 가고 싶었던 과는 아니지만 적어도 맞는 방향을 선택했기에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제 무대에서 인도적 지원에 관한 일을 계속
하겠다는 방향만 갖고 있을 뿐, 향후 10년 내에 어느 곳에서, 어떤 활동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는 없다.
지금처럼 현장에 있을지, 구호 정책을 연구할지,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할지, 그러나 어떤 일을 선택하든 이 방향
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도 지금 이 순간 망설이고 흔들린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그 방향으로 첫걸음을 떼었느냐가 중요하다. 최종 목적지가 부산이라면
한 번에 부산행 기차를 타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내 말은 부산이
목적지라면 적어도 마산이나 진주로 내려가는 남쪽 방향을 잡아야지, 평양이나 신의주로
가는 북쪽 방향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방법만도 수십 가지다. 비행기도 있고 KTX도 있고,
승용차도 있고 자전거도 있고 트랙터도 있다. 하다못해 걸어서라도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가는 방법이야 가지가지겠지만 질러가든 돌아가든 여러분의 인생 표지판에 부산이라는
최종 목적지가 늘 보이기만 하면 되는 거다. 방금 본 이정표에 대전이라고 씌어 있어도
괜찮다. 목포라고 씌어 있어도 놀라지 마시길.
여러분은 잘 가고 있는 거다. 적어도 남행선 상에 있는 거니까. 방향이 정해졌다면 가는 길은
아무리 흔들려도 상관없다. 아니, 흔들릴수록 좋다. 비행기 타고 한 번에 가는 사람에 비해
훨씬 좋은 구경, 신기한 구경을 많이 할 테니까.
*
내가 쓴 <중국견문록> 중 '제철에 피는 꽃을 보라'라는 꼭지가 있다. 많은 독자들이 위안을
받았다는 대목이라서 여기 다시 옮겨 적어본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늦깎이라는 말은 없다. 아무도 국화를 보고 늦깍이 꽃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졌다고 생각되는 것은 우리의 속도와
시간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고, 내공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직 우리 차례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철에 피는 꽃을 보라! 개나리는 봄에 피고 국화는 가을에 피지 않는가.
*
내가 마음 깊이 존경하는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성공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놓고 가는 것
당신이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다.
이런 성공이라면, 나도 꼭 하고 싶다.
_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