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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 스님이 2001년 2월16일부터 ‘생명, 평화와 민족화합’을 화두로 시작한 1000일 기도가 지난 12일 끝났다. 1000일기도는 새로운 형태의 평화운동체인 ‘지리산평화생명결사’를 낳았다.
지리산평화생명결사 창립식을 하루 앞둔 14일 저녁 도법 스님을 실상사 극락전에서 만났다. 스님은 “평화는 행한만큼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자신부터 평화를 가꾸는 일에 뛰어들겠다고 밝혔다.
-1000일 기도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처음 기도를 시작한 것은 지리산이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였다. 지리산의 파괴는 현대사회가 처한 문명사적 위기를 담고 있다. 지리산의 처지에서 세상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는 생태적인 문제 의식과 논리로 세상을 봄을 뜻한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민족, 좌우, 국가간의 갈등은 끝간 데 없는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생태적 문제 의식과 논리를 시대의 담론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을 찾다 종교적 상징성을 지닌 기도를 택했다.
-생태적 문제의식과 논리란 무슨 뜻인가
=생태계의 눈으로 보면 너와 나의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거나 승부의 논리로 다룰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된다. 생태계의 논리는 조화와 공생이다. 동·서, 좌·우, 남·북의 갈등과 대결은 모두 생태적 존재방식에 대해 무지한 결과다. 너를 없애고 나만 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갈등이 풀리고 화해와 공존을 위한 새로운 모색이 가능할 것이다.
-기도중에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전쟁설이 나돌았고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기도 했는데
=그 사건들로 인해 추상적으로 시작된 기도가 지리산생평평화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됐다.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 나온 뒤부터는 한반도에 전쟁을 막기 위해 기도와 실천을 집중했다. 6자회담이 열리고 전쟁의 위협이 줄어들면서 다시 초기의 문제 의식으로 되돌아가 생명평화를 어떻게 일상적 삶속에서 구현할 지 고민했다.
-해답은 찾았나
=존재의 실상에 대해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은 음식을 먹이면 살아난다는 것, 목마른 사람은 물을 주면 갈증이 사라진다는 것. 이것이 존재의 실상이다. 이를 깨달으면 나눔은 절로 이뤄지게 된다.
-반전시위나 파병반대시위처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평화운동과는 조금 다른 개념인 것 같다
=지금까지의 평화운동은 근원적인 해결방법은 아니지만 비굴한 침묵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생태적으로 평화를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당한 분노나 공격도 필요하다.
-백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우리 나라에는 생태적 각성에 바탕한 평화운동은 고사하고 이라크 전쟁이나 파병과 같은 일에 대해 정당한 분노를 나타내는 사람들조차 매우 적다.
=만약 국민들이 북핵 문제나 이라크 전쟁에 대해 진실을 안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현 정부는 물론이고 정치권이나 지식인 사회에서 한반도 위기 상황의 본질, 이라크 전쟁의 본질에 대한 실상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올바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라크 파병 문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느냐 마느냐는 친미냐 반미냐를 넘어선 문제다. 이라크 파병은 양심적으로 떳떳하지 않다. 우리 스스로 작고 약한 나라로서 많은 서러움을 겪었는데 이라크인들의 아픔을 함께하지 않고 괴롭히는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법적인 측면에서도 이라크 전쟁은 정의롭지 않다. 국익 논리도 마찬가지다. 국익을 위해 이라크에 파병한다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본을 어떻게 비판하겠나.
-지리산생명평화결사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나
=지리산생명평화결사는 누가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는 것이다. 참여한 사람 각자가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먼저 자신이 평화로워지도록 가꾸고, 자신이 밝힌 평화의 등불로 주위를 비추자는게 결사의 취지다. 나도 하나의 등불로서 역할하게 될 것이다.
-이런 형태의 평화운동은 성과를 낳기 힘들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초기 수행자집단을 제외하면 나로부터의 평화를 화두로 한 운동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마하트마 간디에게서 가능성을 본다. 그는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비폭력평화운동을 통해 인도의 독립을 이뤄냈다. 많은 이들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이다. 불가에서는 평화로운 수단으로 목적을 달성했을 때 제2의 화살을 맞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간디가 그랬다. 그는 총칼을 써서 영국을 몰아내는 대신 세상은 함께 살게 되어있다는 점을 영국은 물론 인도인들도 깨닫게 함으로써 그런 기적을 이뤄냈다.
-생명평화의 탁발순례를 떠난다고 들었다. 세간의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분노하면 인간다워지고, 행복해지고, 문제가 풀린다면 그렇게 하라. 하지만 그렇지 않지 않은가.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이해의 능력을 기르고 인내, 관용,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면 된다. 이는 누군가 먼저 시작해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강자와 약자가운데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해와 관용은 약자와 피해자가 먼저 시작할 수밖에 없다. 강자나 가해자는 대부분 그걸 모르기 때문이다. 나부터 시작하자.
-평화를 거스르는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가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 다른 사람을 해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병자들이다. 존재의 진실에 무지한 사람은 환자이거나 병자다. 병자는 힘의 논리로 치유되지 않는다. 깊은 관심, 애정, 보살핌으로 고칠 수 있다.
-1000일 기도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내가 그동안 불교를 잘못 알고 잘못 행하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경전, 언어, 논리, 관념 등을 통해 추상적으로 다뤄왔다는 점을 반성하게 됐다. 마음의 평화는 이른바 한소식해서, 깨달은 뒤 얻어지는 게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 이 자리에서 내가 평화를 가꾸기 위해 행동할 때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가꾼 만큼, 행동한 만큼 평화로워지는 것이다.
글·사진 실상사(남원)/권복기 이제훈 기자 bokkie@hani.co.kr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