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밸런스도 지혜롭게_ 유세미
워라벨이 사회의 키워드가 된 것은 이미 상당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워라벨이라는 신조어에 부응하느라 기업마다 자율퇴근제를 서둘러 시행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휴기 보내기 대국민 프로젝트까지 내놓으며 부산스럽게 움직여 왔다. 그러나 단지 몇몇 정책만으로 워라벨이 생활에 안착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일과 삶의 균형이란 기준 자체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색깔의 어떤 비율로든 내가 만족해야 균형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 그렇다.
내 주변만 둘러봐도 그렇다. 학창 시절부터 기타를 부여안고 어떻게 하면 놀 기회를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명석한 머리로 대기업에 입사해 부모님을 기쁘게 한 것도 잠시, 야근, 특근을 못 참고 뛰쳐나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친구의 일을 도와주며 적은 돈을 받아 1년에 절반은 해외에 있다.
그런가하면 다른 친구는 독특한 일 중독증으로 주말에도 회사에 있어야 마음이 푸근해진다고 한다. 그 덕에 꽤 성공한 진급 케이스가 되었지만 가족과는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어색한 가장이다. 같은 학교에 다녔고 함께 사회생활을 하지만 다들 이렇게 다르다.
유독 그 재능이 감탄스러운 후배가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꼭 맞추듯 일을 딱딱 부러지게 하는지 내가 애지중지 보물을 다루 듯했다. 그러나 경력 입사한 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 이유는 언제 개인적인 스케줄을 잡아도 되는지 알 수 없어서라고 했다. 유독 신규매장 오픈이 잦은 우리 부서는 오픈 일정이 잡혔다 하면 낮이고 주말도 없는 시간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묵묵히 일을 잘한다고 해서 일에 만족하고 있다고 믿으면 오산이다. 또 다른 성실한 후배는 별다른 불평 없이 일하다 얼굴이 돌아가는 구완와사에 걸렸다. 스트레스를 참고 참은 결과였다. 함께 파트너로 일하던 동갑내기 후배는 입으로는 쉬지 않고 투덜대며 빽빽한 업무량에 항의하지만 결국 남에게 일을 나눠주지도 않고 혼자 다 끌어안고 처리하는 걸 보면 스스로에 대한 가학 증상이 있나 싶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투덜대며 일만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직장 생활을 오래하고 업무 특성상 직원이 많다보니 이렇듯 상당히 많은 케이스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핵심은 각자에 맞는 워라벨을 지혜롭게 찾아내고 삶에 적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일과 삶의 균형을 잡아 기쁘고 행복한 직장 생활이 가능할까.
무엇보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우선되어야 한다. 여기서 해답을 찾아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일'에 대한 정의가 정확치 않다면 '삶'에 대한 밸런스는 의미가 없다.
가령 그 일이 너무 좋아 미친 듯이 하고 싶다, 일은 좋아하지 않지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할 것이다, 나의 정체성을 증명하기 때문에, 하다못해 일하지 않으면 내가 가치 없는 사람으로 느껴져서 등등 이유는 수없이 많다. 그 일이 생각만 해도 좋다면 일에 무게추가 확 옮겨가서 인생의 대부분을 일에 쏟아 부어도 상관없다. 그것 자체가 이미 밸런스이다.
만약 일 자체에 대한 의미가 생계 수단 이외에 없다, 라고 한다면 일에 할애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로 삶을 과감하게 배분해야 행복할 수 있다. 음악이든 운동이든 하다못해 드라마를 보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나만의 만족감을 찾아내야 한다.
제일 애매한 상황은 일 자체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고, 좋아하는 일도 별반 없고, 결혼하자니(이미 했더라도) 그것도 시큰둥한 경우이다. 이런 경우 회사 사정에 따라 일에 몰두해 번아웃 증후군이 오면 가장 나쁜 사례가 된다. 황폐해진 정신 건강을 채울 대체물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이런 예시가 적지 않다. 후배 민준은 자타공인 엄친아였다. 좋은 학벌에 부모님 소원대로 대기업에 취업해 3년 만에 부모님의 소원에 걸맞는 여자와 특급 호텔에서 결혼했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꽃값만 해도 얼마가 될지 궁금해지는 결혼식장에서 스테이크를 썰며 우리 모두는 양가 부모님들의 재력에 감탄했다.
그런 민준은 새로 런칭하는 브랜드로 1호점까지 오픈하고 그대로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게 되었다. 신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시간에 퇴근도 못하고 주말도 없었으니 신혼부부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또 일에 대해 그리 열정도 없었으니 재미도 없고 몸은 피곤하고 짜증에 절어 결국 폭발한 거다. 일 때문에 폭발하지 않으려면 말 그대로 스트레스인 일에 대응할 균형추가 필요한데 그는 불행히도 그것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를 무작정 그만두었다. 그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결정인 듯 말이다.
'일과 삶의 균형'의 의미는 '각자가 행복할 수 있는 균형'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일 때문에, 아니면 개인적인 일로 문제가 생길 경우 건너편에 있는 저울추를 움직여 다시 균형을 잡을 수 있게끔 미리 양쪽에 '나를 보호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일, 혹은 신앙과 사랑, 가족, 취미 등 자신을 행복하게 할 그것을 중심으로 다른 추가 균형을 잃지 않게끔 조정해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한번 균형을 잡아놓은 추가 영원하지는 않다. 추는 계속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움직여줘야 한다. 인생은 길다. 어떤 시기에는 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해야 인생에 균형이 맞는다. 또 어떤 시기는 가족을 돌보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 자신이 즐거운 일에 세월을 쏟아야 균형이 잡힐 때도 있다. 그 균형의 추를 지혜롭게 옮겨가며 살아야 한다. 결국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일과 쉼이라는 균형을 '나'에 맞춰 지혜롭게 유지해나가는 것이 행복한 삶을 위한 우리 모두의 과제인 셈이다.
오늘도 출근하는 김대리에게_ 유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