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10명 중 1명만 몰입해 일한다_ 박앤디
일은 열심히 해도 몰입은 못하는 이유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흔 직장인들의 얼굴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표정이 어둡다. 먹고사는 일만 아니라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는 얼굴이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다"라는 말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입버릇이 될 정도로 근무 시간은 그저 참고 버텨야 할 시간, 순식간에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시간이다.
심지어 얼마 전에 나를 찾아온 한 의뢰인은 자신의 커리어 컨설턴트에게서 이런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일은 원래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일이 즐거울 수는 없어요"라고. 일이란 진정 생계를 무기로 우리를 구석으로 몰아놓고 끊임없이 괴롭히는 존재란 말인가?
세계적인 여론조사기관 갤럽에서 직장인의 몰입도 조사를 실시한 적 있다. 전 세계 기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업은 평균 30%의 직원이 업무에 몰입하는 반면, 한국 기업은 평균 11%만이 몰입하고 있었다. 이는 10명의 직원이 있으면 미국에서는 그중 3명이, 한국에서는 단 1명만이 일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과 한국이 몰입도에서 이러한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한국인이 미국인에 비해 선천적으로 게을러서? 그렇지 않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한국인은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의욕적이었다.
내가 진행하는 커리어 워크숍에 참여한 직장인들은 그 원인을 환경적 요인에서 찾았다.
"월급이 너무 적어서 동기 부여가 안 돼요."
"야근하랴, 회식하랴, 업무 시간이 길어서 집중이 안 돼요."
"미국에 비해 전반적인 근무 환경이나 복지가 너무 열악해서 그래요."
"경직된 조직문화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들의 말은 한국과 미국의 조직을 둘 다 경험한 나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왜 똑같은 환경에서도 11%의 사람들은 몰입하는가? 그들은 본래 일 중독자인가? 보통 사람과는 유전자부터 다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11%의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는 진짜 이유는 그들이 '자신에게 맞는 일과 환경'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자신에게 맞는 일과 환경을 찾는다면 누구나 몰입해 일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에게 맞게 일할 때 몰입은 저절로
몰입 이론을 주장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어렸을 적부터 '왜 거리에서 구걸하면서도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고, 부와 권력을 모두 가졌지만 종일 불안해하고 짜증만 내는 사람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이후 그는 심리학자가 되어 이 주제에 대해 평생 연구하는데, 그 결과 환경이나 조건과는 별개로 행복한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무엇인가에 '몰입'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전설의 프로그래머로 불린 나카지마 사토시 역시 자발적 몰입을 한 사람이다. 그는 더블클릭과 마우스 오른쪽 클릭을 개발하고, 윈도우 95와 98을 설계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프로그래밍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잘 몰랐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구직을 할 때 연봉이 얼마나 되는지, 야근은 얼마나 시키는지와 같은 업무 조건만을 따졌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래밍 분야를 선택해 엄청난 성과를 거둔 지금, 그는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수많은 조건 중에서도 직업의 첫 번째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자신이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할 때면 하루 16시간도 몰입할 수 있었지만,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도저히 몰입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와 나카지마 사토시의 몰입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언가를 이루거나 성과를 내려면 싫어도 집중하려고 노력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몰입'과 '집중'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무언가에 집중하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인과관계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집중하지 않아도 '스스로 몰입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라는 상관관계로 보는 게 맞다.
칙센트미하이와 나카지마의 핵심은 '자발적 몰입 상태'다. 누가 집중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집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강요한 것도 아니다. 본인이 하고 싶어서, 진심으로 내킬 때만 자연스럽게 몰입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칙센트미하이가 몰입했을 때의 느낌을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느낌'이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열악한 근무 환경 안에서도 분명 11%의 사람들은 자신의 성향에 맞는 일과 회사를 찾아 몰입하고 있다. 이 수치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버티고 참으며 자신을 일과 회사의 틀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일상적 행위를 최대한 많이 반복할 수 있는 일을 하루 빨리 찾는 것, 즉 자신의 성향을 깨닫고 그 성향에 맞는 일과 환경을 꾸준히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어제보다 더 나답게 일하고 싶다_ 박앤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