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관계

이것도 못 참으면 어디서 뭐할래?_ 권순영

정정진 2020. 12. 27. 13:25

많은 사람 앞에서 평소 나와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나에게 별로 없는 모든 사교성과 외향성을 닥닥 긁어모아 곱하기 1,000을 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내 스타일의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계속 노력하다 보면 나중엔 정말 좋아서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다르게 하면 할수록 힘들었다. 내 외모 중 단 하나의 장점인 맑고 깨끗한 피부(?)가 점점 잿빛이 되어가고, 그 일에 대한 부담은 점점 커져갔다. 해결책을 찾으려고 나름 노력했지만 다 소용없었고, 그렇게 참고 견디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바보멍텅구리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역시 난 안 된다'는 고착된 패배감에 힘들어하다가 이렇게 힘들 바엔 그냥 하지 말자고 결정 내리고 더 이상 못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야, 나는 뭐 좋아서 하는 줄 알아? 힘들어도 참고 하는 거야. 남들도 다 그래. 이 정도도 못 참으면서 어디서 뭘 할 수 있겠냐?"

 

나에게 그 활동을 제안했던 지인의 말이었다. 그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꿋꿋하게 밀고 나가 그 세계를 떠났지만 그의 말은 꽤 오랬동안 남아 나를 괴롭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괴롭혔던 것은 그의 말이 아니었다. 힘든 건 지인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그는 계속 버티고 나는 포기했다는 패배감이 문제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그는 활동적이며,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일을 벌이는 걸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자신이 벌려놓은 일의 뒤처리는 스스로 못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아무리 활동적인 사람이라도 지속적으로 여러 사람 앞에 나서서 자신의 의지를 펼치는 것이 부담되는 일임에는 분명하니 본인도 힘들지만 참고 있다는 말이 스스로 느끼기에 거짓말은 아니었으리라.

 

그 활동을 끊은 이후, 알고 싶지 않지만 자꾸 그의 소식이 들렸다. 계속해서 일을 벌이고 (역시 마무리는 못하며) 활동과 감투를 만들어내는 그의 근황을 들으며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그는 나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따라서 그가 하는 말, 특히 타인의 마음에 대해 자신의 경우와 빗대어 하는 말과 내가 각고 끝에 내린 생각을 같은 도마 위에 올려놓고 비교 분석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는 그 부담스러운 상황에 에너지를 쏟는 만큼, 그로 인해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더 인정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와 내가 어떤 활동에 똑같이 에너지 500을 썼다면 그는 그 활동을 통해 에너지 700을 리필하고, 나는 1도 채우지 못한다. 그와 나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너만 힘드냐? 다 힘들어도 참고하는 거야" 라는 말은 얼핏 보면 맞는 말이지만 조금만 더 알고 보면 틀린 말이기도 하다. 이솝우화 <학과 여우>가 생각난다. 하아, 주둥이는 눈이 보이기라도 하지 우리 내면의 차이는 보이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경우와 많은 차이들은 무시하고 타인의 틀을 당신에게 적용하지 말아라. 나의 힘듦과 다른 누군가의 힘듦은 다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세상에 둘도 없는 스페셜한 존재라는 전제는 가지고 있으면서 그 차이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 참 우습지 않은가? 당신만큼 당신을 깊이 들여다보지도 못한 누군가가 자신이 가진 새끼손톱만 한 틀에 당신을 끼워 맞춰 저런 소리를 한다면 다음의 글을 크게 따라 읽어라(후미진 곳에서 주위를 잘 둘러보고 사람 없을 때 읽기를 추천한다).

 

"웃기고 자빠졌네. 아는 건 쥐뿔도 없으면서 어디서 아는 척이야. 니가 무슨 생각을 하건 내 알바 아닌데, 너의 틀린 기준으로 감히 나를 평가하는 네놈의 그 주동아리는 좀 닥쳐줄래? 내가 어디서 뭘 하든 너보다 무식하진 않아!"

 

참을까? 때려치울까?_ 권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