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2

러시아에 속은 고종_ 김용삼

최후의 파천 시도 고종 황제가 가장 신뢰하고 의지한 사람은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였습니다. 고종이 그와 주고받은 친서는 30여 차례나 됩니다. 친서는 암호문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904년 5월 16일 주한 파블로프 공사가 본국 외무부에 보낸 보고서에는 "고종 황제가 소장하고 있는 러시아 외무부와의 연락용 암호 통신문이 덕수궁 화재로 소실되었다. 혹시라도 일본이 훔쳐 보관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미리 방비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1903년부터 러일전쟁의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대한제국을 먹이로 둔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전쟁이었습니다. 그 긴박한 시기에 고종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자신의 즉위 4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하기 위해 경운궁 내에 석조전을 건축하였습니다. 전쟁의 위기가 임박하자 고종은 이 나라..

인물&역사 2022.02.05

이광수와 최남선의 학도지원 권유_ 정안기

이영재는 조선인 정치세력이 학도지원을 권유했던 사실을 두고 "일제의 대동아 이념 구현이라는 선전도구로 활용"되었던 "부왜노"의 활동이라고 매도하였습니다. 실제로 1943년 11월 윤치호, 이광수, 주요한, 민규식, 박흥식 등은 '학도병종로익찬회'를 결성해 학도지원병 권유를 위한 호별 방문, 권유문 발송, 지역별 학교별 간담회 개최, 권유 논설의 게재 등 적극적인 '권전 운동'을 펼쳤습니다. 나아가 이광수, 최남선, 김연수는 '학도지원병권설대'를 결성해 일본 각지를 순회하며 재일조선인 유학생의 학도지원을 권장하는 강연회를 개최하였습니다. 1943년 11월 중순 도쿄의 주오대학에서 개최된 이광수의 강연회에 대해서는 나중에 서울대학교 불문과 교수로 재직한 김붕구의 회고가 있습니다. 그가 기억한 이광수는 "경건..

인물&역사 2021.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