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종교

부처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깨달음_ 사티쉬 쿠마르

정정진 2009. 5. 25. 22:35

자연으로부터 배운다.

 

'심층생태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자연의 주인도 아니고 청지기도 아닌 자연의 친구이다.

'친구사이'라는 말은 두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가 아는 사람을 친구

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을 알고 있고, 함께 어울려 놀며, 시간을 보내고,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 서로를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밖에, 친구사이라는 말에는 또다른 의미

가 있다. 우리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공감해주고 애정을 쏟을 때 우리는 이 관계

를 '친구사이'라 한다. 여기서 친구사이란 상호성, 호혜성을 의미한다.

 

우리가 우월감이나 열등감 없이 다른 사람들과 우리 스스로를 동일시할 수 있을 때, 친구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환경단체 '지가의 친구들'을 설립한 사람들의 비전이었다.

 

친구사이(우정)는 가장 순수하면서도 고귀한 관계다. 불교 용어로는 그것은 '메타(metta)'이다.

평생동안 부처는 제자들에게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의 메타, 즉 우정의 실천을 가르쳤다. 부처

자신은 친구를 의미하는 '마이트레야(Maitreya)'로 불렸다. 주인도, 예언자도, 스승도 아닌 단지

친구였다. 우정은 불교가 세워져 있는 토대이다. 우정은 비폭력과 연민의 개념을 지탱한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친구를 해코지하거나 착취하거나 다치게 하거나 모욕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친구가

주는 선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을 것이다. 우리는 친구에게 또 우리 자신의 선물을 주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자연에게서 받은 모든 것은 선물이다. 그 선물이 음식이건, 물이건, 햇빛이건, 혹은

다른 무엇이건. 모든 것은 선물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겸손함, 경이로움, 그리고 공경심을 갖게

하는 공생관계이다. 자연은 약탈당하거나 착취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히 간직되고

축복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관점을 '공경의 생태학'이라고 부른다.

 

모든 생명체는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생명체에 대한 심오한

공경의 느낌을 경험하기 시작하고, 아름다움과 고결함, 풍요로움과 너그러움, 그리고 전체 생명의 그물

을 지배하는 경제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통제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대신에, 우리는 정교하게 짜여진

생명의 그물의 과정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더이상 지구의 주인이나 청지기가 아니라 참가자이자

지구의 공동 창조자이다. 물론, 인간은 우주적인 체계 내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꽃,

열매, 균, 벌레, 나비, 바다, 산, 그리고 크고작은 모든 유기체들도 그러하다.

 

우리가 이러한 확장된 의식을 갖고 보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자연에 관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

부터 배울 수 있는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자연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 부처는 한그루의 나무에게서 상호

의존성의 진리를 배웠다. 한 나무 밑에 앉아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들과 얼마나 상호의존적인지를 관찰

하다가 부처는 깨달음을 얻었다. 열매는 꽃에서 나오고, 꽃은 가지에서 나온다. 가지와 잎은 줄기에서 자라고,

줄기는 흙에서 나오며, 흙은 비를 통해 양분을 얻고, 비는 구름에서 나온다. 구름은 바다에서 형성되고,

바다는 강에서 나온 물을 받고, 지구가 이 바다를 담고 있다. 바다는 지구에 양분을 주고, 지구는 다시 바다

에게 양분을 주고, 이 과정은 계속된다. 부처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깨달음이 '심층생태학' 및 '공경의 생태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자연과의 일체감은 오직 우리가 자연과 분리된 존재라는 생각을 버릴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자연으로부터

배우기 위해서 우리는 자연 속에 있을 필요가 있다. (전은화 옮김)

 

* 사티쉬 쿠마르 : 생태잡지 Resurgence 편집자. 슈마허 칼리지 프로그램 기획자. 녹색운동의 지도자.

 

- 김종철 <녹색평론 76호, 2004년 5~6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