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물주도 간섭할 수 없는 인생_ 서암스님
올 때 빈 손, 갈 때 빈 손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 마음 하나 밝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무슨 이상한 진리나 어떠한 물체나 위대한 어떤 것을 창조해낸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부처님이 출현하시기 전이나 부처님이 출현해 지나간 뒤나 조금도 변함이 없는 우주의 진리를 발견해서 이 한 중생을 깨닫게 하는 것이 불교인 것입니다.
그러한 위대한 자기 인생을 접어두고 밖으로 어떠한 힘에 의존하면서 허우적거리고 신앙하고 쩔쩔매며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제일 금기로 배척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 위나 하늘 밑이나 자기 자신이 제일 높다하는 말 한 마디로 결론을 지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없는 것을 창출해낸 것이 아니고 아까도 얘기했지만 본래있는 무시무종의 자기를 발견했을 뿐입니다. 요새 과학자들도 부처님의 사상을 많이 이용하고 들어옵니다. 영국사람인데 우주를 파헤치고 연구하고 평생의 심혈을 기울인 이십세기의 이름있는 천체물리학자(스티븐 호킹)가 우리나라에 와서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고 들었는데 우주의 원리는 본래부터 완전무결하게 있었다 이겁니다. 제 삼자의 어느 누구도 신이나 조물주가 간섭할 자리가 없다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신이 이 우주를 만들 때 얼마나 많은 자유를 가졌을까? 하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물음에 스티븐 호킹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만약 무경계의 제안이 옳다면 - 이는 정상적인 두뇌를 가진 모든 과학자가 인정하는 것이다 - 신은 시초상태를 선정할 아무런 자유도 없었다" - 편집자 주)
그러니까 과학도 우리 불교에서 말하는 무시무종의 진리에 가까이 와 있습니다. 비록 그들은 바깥을 더듬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이지만 부처님은 마음 하나 깨침으로써 우주전체를 알아버렸던 것입니다.
서양의 종교는 전부 신을 믿는 종교입니다. 신이란 것은 일종의 귀신 아닙니까? 맑고 깨끗한 자기의 정신을 잃어버리면 어떠한 허깨비에 매달리게 됩니다. 산상기도한다고 깊은 산중에 가서 옆 사람의 충동을 받고 열심히 하다보면 눈에 허깨비도 보이고 귀에 이상한 것도 들리고 이럽니다. 이러면 아이쿠 신이 계시한 것이라고 그만 미쳐버리는 것입니다.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참으로 금물입니다. 더군다나 문명이 발달한 오늘에도 맹목적으로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미개민족이나 하는 짓입니다. 우리는 종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부처님도 나를 믿지말고 진리를 믿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인생을 마칠 때는 빈 주먹 쥐고 혼자 갑니다. 하나도 가져갈 수가 없습니다. 일만 가지를 가져가지 못하고 오직 업만 가지고 갑니다. 업은 빛도 모양도 냄새도 없지만 쌓여있는 자기 습관, 자기가 행동한 자기의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평생 남을 해친 사람은 그 해친 습관이라는 것이 모양없이 가득 쌓여있어서 항상 지고 다닙니다. 착한 일을 하면 착한 것이 모양은 없지만 착한 생활이 항상 자기 그림자 마냥 따라 다닙니다. 그것이 업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살던 땅이나 보배, 친구는 같이 술먹자고 데려가지를 못합니다. 올 때도 빈 주먹 갈 때도 빈 주먹, 따라 다니는 것은 오직 평생동안 산,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세계를 찾아서
이 육체는 우리가 부모한테 받은 것입니다만 여러분의 빛나는 모양도 없는 정신은 부모가 낳아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시무종이라, 우주가 생기기 이전에도 있었고 우주가 끝나도 상관이 없는 그 자리를 발견하라 그겁니다. 이걸 체달해야 모든 고통이나 불안이 가신다 그 말입니다.
부처님이 그걸 발견하신 겁니다. 이 불교는 나를 따르면 복이 되고 나를 믿지 않으면 아무리 착해도 지옥에 간다하는, 그런 경우 없는 서양 귀신 종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걸 모르면 시시각각으로 불안하고 초조하고 항상 무엇인가에 쫓기는 것마냥 안심입명이 안됩니다. 그러니까 내 인생을 바로 찾아서 해탈의 세계, 아무 거리낌이 없는 세계를 찾자고 이렇게들 모여 가지고 우리가 불교를 얘기하는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자기 밖에 나를 간섭할 존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겁니다.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데 스스로 헤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의 노예가 되어 "신의 종이올시다. 이 종을 마음대로 해주십시오." 이렇게 자기 인생을 완전히 포기하고 노예로 전락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신을 반대하는 사람은 그냥 사탄이요 적이니까 쳐도 된다 이런 식입니다. 그러니 항상 적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투쟁이 끊이질 않습니다.
저 사람들(서양사람들)이 요즘 들어 동양사상, 석가모니 사상에 귀를 돌리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들은 오욕락에 빠져있고 그저 쟁취하는 문화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기네는 드디어 길이 막혔습니다. 아무리 무기를 만들고 천하의 중생을 다 죽일 수 있어도 그것 가지고는 해결이 안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습니다. 이까짓 육체가 떠내려가도 상관이 없는 불생불멸하는 근본을 그 사람들은 모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은 대부분 정신적인 병입니다. 육체적으로는 문제가 덜 됩니다. 전부 정신이 병들어 가지고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니 피가 탁해져 버리고 병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을 내면 얼굴 빛이 달라집니다. 성이 손가락이나 발톱에서 일어난 게 아니라 빛도 모양도 없는 곳에서 성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모양이 있는 육체에서 벌써 마음작용을 하는 겁니다. 진심(瞋心)이 생기면 입맛이 떨어지고 병이 납니다. 애들도 크게 놀라면 눈이 똥그래지고 그만 밥도 못먹고 병이 나거든요. 그래서 동양의학에서는 정신치료를 중요시합니다.
자네, 정신병을 좀 내놔보게
우스운 소리지만 한번은 얼마 전에 나이 많은 보살님이 딸을 데리고 봉암사에 같이 찾아왔습니다. 그래 왜 왔느냐고 그러니까 자기 딸이 학교 선생님을 하는데 몇 달전부터 정신이 이상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대구 정신과 의사한테 가보니까 봉암사 노장한테 가라해서 왔다는 겁니다. 그것도 까닭이 있습니다. 그 전에 어느 대학교에서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이 만난다 해가지고 토론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정신과 의사가 신부에게 정신이상자 치료하는 법을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그 답을 하는 신부가 하다가 말이 막히니까 하나님 세계, 하나님이나 알지 다른 이는 모른다 이렇게 답변을 하니까 청중이 전부 가톨릭이나 기독교 신자인데도 깔깔하고 웃었습니다. 내가 만약 청중으로 있었다면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데? 로켓트를 타고 가야 빠른가 비행기를 타고 가야 빠른가 버스를 타고 가야 빠른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게 빠른가 가는 법을 일러줘야 가서 얘기하지' 이러지마는 같이 앉아 있으니 말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지요. 그런데 질문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듣는 사람 모두 넋빠진 사람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대답도 아무 것도 안나왔는데 그렇게 만족하고 웃고 말아버리더라니까요. 그런데 그 질문이 내게 돌아온 것입니다.
그래 내가 지금 이야기대로 정신은 모양이 없다. 몸이 병난 것은 수술도 하고 고약도 붙이고 약을 먹이고 이러지만 모양이 없는 데가 병이 났는데 약물치료가 되겠습니까? 그럼 정신병은 왜 생겼느냐. 모양이 없는 마음에 충격을 받아 일어났다. 뭔가 자기 뜻대로 안되어 노심초사가 되든지 뭔가 마음에 갈등이 일어나 생겨난 것이 정신병입니다. 그런데 정신은 본시 병 붙을 자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정신병이 있느냐 그 말입니다. 정신병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잘 인도하고 마음을 딱 사로잡아 마음을 안정시켜야 병이 낫는 거다 이런 말을 몇 마디 했는데 그 의사가 내 철학이 옳다 그래서 자기 정신병원을 찾아온 환자를 내게 보낸 겁니다. 참 우스운 일이지요.
그래 내가 봉암사를 찾아온 그 여선생님 보고 그랬습니다. 그래 그대가 정신병이 들었다니 내가 정신병을 단박에 치료를 해줄테니 그 정신병을 어디 한번 보여줘보라고 그랬습니다. 정신이라는 게 모양도 빛도 없는데 어디 정신에 병이 붙느냐 그거지요. 그 정신병 좀 내놔라, 내놔야 내가 치료를 해줄게 아니냐 그랬지요. 그런데 대답을 못하고 우물우물 하길래 내가 '이 정신 참말로 없는 것 다 봤구나'고 고함을 질러줬습니다. 그리고는 한 시간쯤 붙들고 몇 마디 얘기를 해줬더니 씩 웃더니만 '이제 괜찮습니다' 그래요. 그리고는 보살이 데리고 갔는데 얼마인가 후에 나한테 고맙다고 전화를 했는데 정신병이 나았다 그겁니다. 정신의 매듭을 풀어주니 병이 어디에 붙을 수가 있겠습니까? 붙을 자리가 있어야 병이 붙지요. 허공에 어디 먼지가 붙겠습니까? 우리 정신에는 아무런 때도 없고 티도 없는데 거기에 어떻게 병이 붙느냐 그 말입니다. 다 착각입니다. 착각만 풀어주면 정신의 병은 없습니다. 어려운 게 아니라 간단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밝은 이치만 알면 그 이치 속에 진리가 다 있습니다.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른 정신차리면 천하가, 그 자리가 정토세상입니다. 정토세계가 이 법당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사람들의 착란만 쓸어버리면 그대로 그게 정토세상인 것입니다. 구름이 사라지고 안개만 걷히면 청천하늘인 것처럼 우리가 번뇌망상만 지워버리면 본래 부처인 것입니다. 본래 바탕이 어디 가겠습니까? 잠시도 여의지 않는 그 부처를 우리가 잊어버리고 바깥으로 허우적거리고 재물에게 귀신에게 매달리는 이런 넋빠진 행동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고통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1994년 9월 서울 정토포교원
훨훨 털고 같이 가세_ 서암큰스님 법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