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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내 어머니_ 정미경

정정진 2021. 6. 25. 08:40

어쩌면 나는 이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몸으로 그것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나이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동생을 낳다가 피를 많이 흘리셨다고 한다. 동생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어머니를 따라 저 세상으로 떠났다.

 

아버지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죽음도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 방황을 지켜보다 지친 아버지 동기생들이 아버지를 강제로 월남전에 보냈고, 우리 남매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의 젊고 예쁜 여동생에게 맡겨졌다. 그녀는 그렇게 평생 나를 돌봐주셨고, 지금은 고운 할머니가 되어 내 아이들까지도 맡아 길러주신다.

 

피붙이가 아니더라도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는 것 하나로 가족이 될 수 있음을 온몸으로 헌신하며 가르쳐주신 내 어머니. 자칫 깨졌을 우리 가족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켜주신 어머니. 가족끼리 서로 돕고 사랑해야 함을 당신의 인생을 통해 가르쳐주신 어머니. 삶을 감사해야 함을 알게 해주신 어머니.

 

머리가 아닌 몸으로 그것을 배웠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아픔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검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의 순간에도,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며 타협하고 쉽게 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오직 나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때문이다. 큰 실수 없이 어렵고 힘든 업무를 잘 수행하게 되었다면 그것도 어머니 때문이다. 친구나 동료에게서 칭찬과 격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 때문이다. 일에서 게으름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도 신이 등 뒤에서 항상 나를 쳐다보고 계신다고 믿게 하신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언제나 내 곁에 머무시며 집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임을 가르쳐주셨다. 어머니가 나를 지켜주었듯이, 나도 누군가를 지켜주어야 한다. 그 누군가는 또 누군가를 지켜주고, 그렇게 지켜주기는 계속 되리라.

 

John donne의 시 중에서 내 어머니를 닮은 구절이 있어 소개한다.

 

사람은 누구도 섬일 수 없어

사람은 누구도 홀로일 수 없어

어떤 이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고

어떤 이의 믿음은 나의 믿음이야

 

우리는 서로가 필요해

그래서 나는 지킬 거야

어떤 이를 내 형제처럼

어떤 이를 내 친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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