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있게 산다는 것_ 이근후 이서원
자존감 하면 유대인이 떠오릅니다. 유대인은 국가를 잃고 2,000년도 넘게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았지만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어요. 1945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자 다시 모여서 이스라엘을 세운 겁니다. 유대인의 중요한 성격은 우월감이에요. 바로 선민의식이죠. 선민의식이 작용하니까 자존감이 엄청 커요. 유대인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한 문장을 듣고 내가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철수야, 놀자' 같은 문장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유대인 교과서에는 '우리는 한때 이집트의 노예였다'라고 나온대요. 이건 굉장한 자존감이거든요.
이서원 유대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존감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내 못난 것을 감추려고 하지 않는 것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의 특징이군요. 내 못난 것을 감추려 애쓰면서 "나 이래봐도 자존심 있는 사람이야. 이거 왜 이래!" 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은 게 아니라 허세가 높은 것이었나 봅니다. 선생님에게 자존감을 가지고 산다는 건 어떤 모습으로 사는 것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부끄러운 약점을 숨기지 않는다.
이근후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못난 점을 일부러 감추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나도 괜찮다고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에 구태여 남에게 감추려 하지 않는 것이죠. 안네 프랑크의 집에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라고 적혀 있다고 했잖아요. 내가 그걸 브루나이공화국에 갔을 때 이스라엘 대사 부인을 만나 물어보니까 알고 있더라구요. 그곳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 그런 게 쓰여 있대요. 선민의식이 아니고는, 열등감을 가지고는 그런 말을 못해요. 숨기죠.
우리나라에 대비해보면, 우리가 열등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역사에 대해서만 말하려고 하지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서는 드러내려고 하지 않거든요. 대표적인 예로,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무릎 꿇고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린 인조에게 항복을 받은 청나라 태종이 자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우게 한 삼전도비를 들 수 있어요. 그 비석이 땅에 몇 번 묻혔는지 몰라요. 묻었다가 팠다가 또 묻었다가 팠다가, 이걸 파묻는 것 자체가 열등감이에요. 그래도 우리 역사인데 말이죠. 자존감이 낮으니까 숨기고 싶은 거예요. 유대인 같으면, 역사적 교훈으로라도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후세들이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말자는 마음을 갖게 하지 않았을까요?
잘난 점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자존감 있는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은 잘난 걸 굳이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요즘 유튜브 조회수에 연연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광고 수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조회수 자체에 집착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조회수가 곧 자기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해서 집착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조회수를 어떻게 늘릴까, 자신의 잘난 점이나 특이한 점을 어떻게 드러낼까를 항상 고민하죠. 하지만 그건 자기 평가를 남에게 맡기는 거잖아요.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거예요.
자존감이 높으면 굳이 드러내려고 하지 않아요. 조회수에 연연하지 않을뿐더러 굳이 유튜브에 올리려고도 하지 않아요. 필요하면 사람들이 나를 찾겠거니 하지, 나를 모르는 사람한테 '나 이런 사람이니 나를 필요로 하세요' 하고 홍보할 게 아니잖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모두 불안해할 때 어떤 젊은이가 전철에서 자신을 중국 우한에서 온 폐렴 환자라고 거짓말하며 기침을 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그걸 유튜브에 올렸다는 거 아니예요. 이 사람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에요. 자존감이 높으면 이런 짓을 하겠습니까? 오죽 했으면 이런 연극까지 벌여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했겠어요.
배운 사람들이 일상적인 대화에 한자어나 영어를 심하게 섞어서 이야기하는 것도 자존감이 낮아서 하는 행동이에요. 자신은 못 배운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생각하겠지만, 자존감의 시선으로 보면 이건 도리어 우월감으로 포장된 열등감이에요. 영어의 시대가 되면서 학교 선생님이 나눠준 지도안을 보니까 이런 식이었어요. '윈드wind가 들어오니까 도어door를 닫아라.' 거기 서 있지 말고 체어chair에 앉아라.' 의학 용어같은 전문 용어는 우리말이 없기 때문에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 내가 예로 든 것처럼 일상적인 대화까지 영어로 말해서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야 할까요?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게 진짜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조건이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 조건도 갖추지 못하고 잘하는 것이 없어도 지금 이대로의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존감이 높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자꾸 뭘 자신에게 보태고 덧댈 필요가 없습니다. 조건이 자존감을 만드는 게 아니라 태도가 자존감을 만들기 때문이에요.
지금 이대로 내가 괜찮다는데 굳이 남과 비교할 필요가 있겠어요? 남이 날 무시할까 걱정할 필요가 있겠어요? 내가 나를 괜찮다고 굳게 믿는데 누가 뭐라고 한들 흔들리겠느냐고요. 또 남에게 나를 알아달라고 내세울 필요가 있겠어요? 결국 내가 나를 인정하기 위해 그러는 건데, 이미 내가 나를 인정하고 있는데, 남의 인정을 더 받을 필요는 없는 것 아니에요? 그래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담담한 사람이에요. 알아주면 나쁠 건 없지만 딱히 좋을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몰라준다고 섭섭해하지도 않고요.
이서원 지금 이대로의 내가 좋다는 마음은 조건이 결정하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 달콤합니다. 내가 괜찮다는 생각을 하기 위해 억지로 더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잖아요. 내 존재 자체를 긍정한다는 건 멋진 일이네요. 그리고 긍정하는 주체가 나라는 건 더 멋진 일이고요. 제 자신에게 왜 내가 괜찮지 않은지 물어봤더니, 사회에서 말하는 기준들이 줄줄이 나오네요. 돈이 많아? 지위가 높아? 힘이 있어? 그런 기준들 말이죠. 돈이 없어도, 지위가 낮아도, 힘이 없어도 자존감이 낮을 필요가 없다는 건 얼마나 희망적인 소식인지요. 그저 나를 받아들이고 다독이고 괜찮다고 말해준다면, 자존감이 올라가고 열등감이 사라진다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면_ 이근후 이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