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

서울대 출신 치과의사? 오룻이 나로 승부하라_ 이수진

정정진 2020. 6. 21. 09:40

출근길에 '보랏빛 소'를 보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도 출근하자마자 직장 동료에게 "세상에 내가 오늘 아침에 뭘 봤는지 알아?" 하며 당신이 본 보랏빛 소에 대해 흥분해서 큰 소리로 이야기할 것이다. 만일 그 이야기를 지나가던 다른 동료가 듣는다면 어떨까? 그 사람은 그 이야기를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할 것이다. 아마 삽시간에 그 '보랏빛 소'에 대한 소문이 퍼져 당신 직장의 모든 사람이 오후가 되기도 전에 그 소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다.

 

이는 국내에도 번역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보랏빛 소가 온다>의 저자이다. 마케팅 혁명가 세스 고딘이 제시한 마케팅 이론이다. 세스 고딘은 그의 저서에서 앞으로 TV나 신문, 라디오 등의 매스미디어에 돈을 퍼부어 홍보하는 방식은 통하지 않을 거라고 경고했다. 대신 위험 요소를 안더라도 예외적으로 독특한 제품을 만드는 데 투자하고, 이 제품에 열광할 소수의 소비자 집단을 공략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현시대는 남들과 비슷한 것이 아닌 차별성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마케팅 수업에서 보랏빛 소 이론을 들었을 때, 나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보랏빛 소? 나잖아?" 하는 생각에서였다. 갑자기 내가 살아온 세월이 정당화되는 느낌이랄까.

 

절대 평범하지 않던 내가 어린 시절 중소 도시에서 애써 평범한 척하며 살았어도 결국엔 그렇게 되질 않았다. 제법 큰 병원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딸인 것도 평범하지 않은 요소 중 하나였다. 성적이 늘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던 시기에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외모에 관심이 많던 고교 시절에는 옆 학교 남학생들이 뽑은 '베스트 드레서' 여학생이 되기도 했다. 참고로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시기에 교복 자율화가 되었다. 그러나 교복 자율화의 첫 세대여서인지 복장에 대한 제재가 있었다. 언제나 아침 등굣길이면 청바지의 길이를 재는 복장 단속을 받았다. 발목에서 몇 센티미터 위로 청바지가 올라가는지를 검사하는 기가 막힌 단속이었다.

 

이때에 나는 청바지 길이가 지나치게 짧고 몸에 붙는다는 이유로 번번이 제재를 받았다. 그 시절에 내가 즐겨 입던 빨간 미니스커트도 기억이 난다. 햇살이 반짝이던 더운 여름날 빨간 짧은 치마를 나풀거리며 등교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 나의 즐거운 기분이 꼭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교복 자율화가 막 시작된 세대의 자유와 해방감을 그대로 느꼈으니 말이다.

 

그 소도시에선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내가 어디에서 누구랑 어울려서 뭘 했는지 그날 저녁이면 아버지 귀에 들어갈 정도였다.

 

서울대에 합격해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나는 안심했다. 서울에서는 아무도 나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학교에서도 나는 여전히 튀었다. 당시 서울대 캠퍼스에는 두꺼운 안경을 끼고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학구파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나는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눈에 띄는 커다란 링 귀걸이를 즐겨했다. 즉,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보랏빛 소'였다.

 

나는 일부러 보랏빛 소가 되고자 한 적은 없다. 어릴 때나 대학시절에나 그저 나를 꾸미는 것이 좋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 나는 늘 보랏빛 소였다. 그렇다고 굳이 다른 친구들과 비슷한 복장으로 나를 가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결국, 보랏빛 소가 주목을 받는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며 젊은 시절을 보낸 셈이다.

 

치과를 개원하고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하던 시절엔 이러한 나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똑같은 치과 광고를 해도 나의 광고는 단연 눈에 띄었기에 히트를 했다. 예를 들어 임플란트 수술은 흔히 아프고 무섭다는 생각부터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환하게 미소 짓는 여의사가 임플란트 수술을 광고한다면 어떤가? 당연히 근엄하게 전문성만을 내세우는 다른 광고들과는 달리 보이지 않을까? 또 당시 대부분의 치과가 도입하지 않았던 물방울 레이저로 임플란트 수술을 한다는 문구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광고 덕분에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들었고, 나는 임플란트를 가장 많이 하는 의사가 되었다. 한때는 병원 적자로 야반도주까지 생각하던 처지에서 단숨에 인생이 역전된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시절에 나를 찾아와 주었던 환자들과 그분들의 지인들로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분들의 기억 속에는 피도 거의 나지 않고 아프지 않게 수술을 받은 기억이 강하게 박혀 있다. 또 그런 자신의 경험을 꾸준히 동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계신다.

 

나는 보랏빛 소 이론이 그대로 적용된 광고 전략 덕에 지금까지 먹고사는 셈이다. 나 자체가 보랏빛 소인데, 나의 치과까지 보랏빛 소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보랏빛 소는 언제나 사람들의 눈에 띄기 마련이다. 거기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까지 가세하면 마케팅은 백전백승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치과의사로서의 나의 성공이 외모나 서울대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나 자신이 보랏빛 소가 아니었다면, 기존의 광고들처럼 나의 모습을 최대한 숨기고 비슷하게 만들어버리지 않았을까?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낸다면 누구나 보랏빛 소가 될 수 있다. 당신이 어느 학교 출신이든 혹은 정규 교육을 다 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자신만의 전략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걸 만들어낸다면 성공할 수 있다. 문제는 당신의 외모나 배경, 학벌이 아니다. 당신이 지금 하고자 하는 사업이 얼마나 그 시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인지가 중요하다. 또 그 이로운 사업을 얼마나 돋보이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모든 사업의 시작은 단 한 명의 고객 확보에서 시작된다. 모든 책이 단 한 줄의 문장에서 시작되듯이 말이다. 단 한 명의 고객이 당신의 제품이나 기술에 반해 주변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한다면 금세 소문이 나고 새로운 고객이 줄을 잇게 된다.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성공한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니 수많은 제품과 브랜드가 이 세상에 나와 있는 것이다. 나도 하고 너도 해낸 일이라면, 당신도 해낼 수 있다.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는다. 하지만 당신 스스로 무대에서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빛을 볼 것이다. 무한 경쟁 시대이고 이 세상엔 너무나 많은 좋은 제품과 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나름의 광고 전략이 필요하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너무나 좋은 제품들이 비슷비슷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럴 때 보랏빛 소가 필요하다. 당신의 좋은 아이디어와 제품을 더욱 많은 사람에게 알리려면 말이다. 또 이것이 무한 경쟁 사회에서 생존하는 '개인 브랜딩'의 원리이다.

 

느리게 어른이 되는 법_ 이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