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

직장 생활과 연애의 공통점은 권태_ 금주은

정정진 2020. 5. 7. 10:42

달콤하던 나날이 하루하루 일상이 되어 가면 연인은 눈만 마주쳐도 빙그레 웃던 시절이 언제였던가 싶은 권태가 찾아온다. 예전에는 연인의 일거수일투족에 눈길이 가고 관심을 두었지만 이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연인이 어느 날 머리부터 발끝까지 변화를 주고 나타나도 어디를 어떻게 치장했는지 눈치채지 못한다. 권태를 극복하지 못하면 연인들은 싸우다가 지치기도 하고 싸울 힘도 없을 때는 헤어지고 만다.

 

직장 생활도 연애와 별반 다르지 않은 시기가 온다. 취업 포탈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 662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권태기에 대해 조사한 결과 97.3%가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권태기를 겪은 적이 없다."고 답한 직장인은 2.7%에 불과했다.

 

회사생활에 권태를 느꼈던 시기로는 입사 후 1년 차가 32.3%로 가장 많았고, 이직 최고 타이밍으로 꼽히던 3년 차가 25.9%로 뒤를 이었다. 권태기 증상을 묻는 질문에는 "이직을 고려했다."는 직장인이 39.3%로 가장 많았고 "출근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았다."가 36.8%로 그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업무 의욕이 떨어졌다(34.6%)거나 회사 생활이 즐겁지 않았다(17.7%), 만사가 귀찮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직장 생활에 권태를 느낀 이유로는 "반복되는 업무가 지겨워서"라는 응답이 38.4%로 가장 많았다.

 

권태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이라고 한다. 사람은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미 익숙해진 일이나 사람에게는 약간 소홀해진다. 그래서 법정스님은 자신의 저서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인간관계에서 권태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늘 함께 있으면서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여 변화를 가져오지 않고, 그저 날마다 비슷비슷하게 되풀이되는 습관적인 일상의 반복에서 삶에 녹이 스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가꾸고 다듬는 일도 무시할 수 없지만 자신의 삶에 녹이 슬지 않도록 늘 깨어 있으면서 안으로 헤아리고 높이는 일에 근본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권태를 벗어나는 방법은 '깨어 있음'이다. 새로이 만나는 사람은 아니어도 어제와 다른 무언가가 있는지 관심을 두려는 노력에 권태가 한 발자국 다가왔다가도 물러설 것이다. 매일 보는 회사 직원이나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일상생활에 관해 묻거나 이야기한다면 이전에 알던 면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작은 관심을 기울이는 일을 나는 법정스님이 말한 '창조적인 만남'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하는 일이 매일 다를 수 없고 만나는 사람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환경에서 관심과 애정은 잘 굴러가는 톱니바퀴에 권태가 때처럼 끼지 않을 수 있도록 닦아 주는 세제 역할을 한다.

 

자동차 판매왕 조 지라드는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쉐보레 자동차와 트럭을 판매하는 세일즈맨으로서 무려 11년 동안이나 판매 실적 1위 자리를 차지해 자동차 세일즈에서는 전설의 인물로 꼽힌다. 그렇다고 그가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조 지라드의 어린 시절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불행 그 자체였다. 디트로이트 동남부 지방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과 아버지의 폭행에 못 이겨 학교를 그만두고 구두닦이를 시작했다. 35세까지 40여 개의 직업을 전전하며 방황을 거듭했다. 고등학교 중퇴의 학력은 번듯한 직업을 가지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조 지라드는 더 이상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자동차 세일즈를 하게 되었다. 일하면서 어느 날 한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 모임에 모인 사람이 약 250명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모임에도 갔는데 그 모임에 참석한 인원 역시 250명 정도였다. 다른 세일즈맨이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이 상황에서 그는 250명이라는 공통 숫자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250명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250명이라는 숫자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두 모임 다 참석한 사람의 숫자가 250명이라면?'

 

계속 고민한 결과 한 사람의 인간관계 범위가 250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는 250명이란 숫자를 판매에 도입해 '조 지라드의 250명 법칙'을 탄생시켰다. 이후 그는 고객 한 사람을 마치 250명 대하듯 했다.

 

'내가 한 사람의 고객에게 신뢰를 잃으면 그것은 곧 250명의 고객을 잃는 것이다.'

 

그는 어떤 사람을 대하더라도 친절하고 진실하게 대했다. 고객의 말을 가슴으로 듣도록 노력했다. 그러자 외모에 상관없이 한 사람 사람이 모두 소중해졌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몇 달간 제자리걸음이던 판매 현황 그래프가 서서히 상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는 지점 내에서 1위를 하게 되었다. 그때 한 동료가 비결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고객을 250명 대하듯 해봐. 그리고 고객의 말을 건성으로 듣지 말고 가슴으로 들어야 해. 그러면 자연스레 판매로 이어져."

 

조 지라드는 고객이 하는 말을 시종일관 관심과 애정으로 들었다. 그러자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고객과 친밀감을 유지할 수 있었고 고객은 그에게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매달 1만 3천 장의 카드를 고객에게 직접 보냈다. 물론 다른 세일즈맨들 역시 한 달에 한 번은 아니더라도 고객에게 카드를 발송한다. 하지만 그가 여느 세일즈맨과 다른 점은 물건을 팔기 전이 아니라 팔고 난 다음에 카드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동차가 고객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구매에 대한 감사의 편지를 쓰고, 매달 카드를 보냈다.

 

"훌륭한 세일즈맨에게 중요한 것은 한 번 차를 산 고객이 결코 자신을 잊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고객에게 차를 팔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스스로 주지하는 노력이다."

 

그는 사용하는 봉투에도 세심한 신경을 썼다. 보통 우편물의 컬러와 크기를 달리해 열어 보지도 않은 채 휴지통에 버려지는 일이 없도록 한 것이다.

 

어딘가에서 "권태는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라 시선이 사라진 것"이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실제로 마음에서 떠났다기보다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것, 소홀히 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권태를 불러온다. 그래서 같은 시간에 늘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같음'에서 탈피하고자 사람들은 때로 훌쩍 떠나고 싶어 하기도 한다. 하지만 떠났다가 돌아와도 또다시 '같음'이 반복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책이 필요하다. 잠시 떠났다가 일상생활로 돌아와도 또 다시 쉬이 떠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책 속 세계이기 때문이다. 일상과 너무 동떨어지지 않게 그러나 또 너무 권태스럽지 않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것은 책만한 것이 없다.

 

오늘 일상이 너무 똑같다고 생각한다면 꼭 책을 읽어 보자.

 

책은 미래다_ 금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