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발

대치동 사람들_ 안재만·이종현

정정진 2020. 4. 11. 13:35

 

지금은 금융권에서 일하는 최황 한국펀드평가 매니저는 오랫동안 대치동에서 입시 컨설턴트 및 강사로 일했다. 그가 주로 상대한 학생의 부모가 딱 이 책에서 거론하고 있는 '이웃집 부자들'이었다. 남다른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은 아니다. 평범한 직장인이거나 빵집 주인, 작은 슈퍼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의 자녀 등 평범한 사람들이 주 고객이었다.

 

물론 부자이기는 하다. 대치동에 집 한 채만 있어도 20~30억 원 부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세로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전세 세입자들의 자산규모가 이에 미치지 못할 수 있겠으나 대치동에서 학구열에 불타는 부모는 대체로 본인이 명문대 출신이거나 전문직, 혹은 대기업 직장인일 때가 많다. 20억 원에는 못 미치더라도 근접한 사람이 많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대치동에는 100억 원 이상 부자도 많겠지만 그들은 논외로 하겠다. 그들은 자녀 교육에 대해서도 일반인들과 다르게 접근한다. 명문대 진학에 실패할 것 같으면 플랜 B를 앞세워 해외 유학에 도전하는 것이 그들의 삶이다. 아이의 성적에 맞춰 플랜 C까지 설정돼 있는 사람들로, 그들의 플랜은 이웃집 부자라고 해도 따라 하기 힘든 코스다. 돈이 어마어마하게 있으면 사실 자녀 교육도 큰 문제가 아닌 셈이다.

 

공부로 될 아이는 바로 알아본다

 

최황 매니저는 대치동에서 일할 때 공부를 잘할 아이와 못할 아이를 금세 구분해낼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면담할 때는 "자녀분도 아직 가능합니다"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바로 판가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꼽은 기준은 바로 숙제를 얼마나 성실히 하느냐 여부다. 학생의 약 70%는 숙제를 아예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무성의하게 한다고 한다. 답을 '1, 2, 3, 4, 5' 순서대로 적어놓고 숙제를 다 했다고 말하는 아이도 봤다고 한다. 그 아이들은 엄마의 압박 때문에 억지로 숙제를 할 뿐,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이다. 머리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이 같은 자세에서 일단 결정이 난다고 강조했다. 머리가 좋으면 금상첨화지만,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아이는 대치동에서 버티면 그래도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돌려 말하면, 아이가 어떤 식으로든 의지를 갖지 않는다면 아무리 들들 볶아봐야 성과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아이는 절대로 부모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강남권의 한 도서관 옥상에서 하루 종일 머무른 적이 있었다. 책을 보러 왔지만 날씨가 좋은 김에 둘째 아이와 함께 옥상에서 햇볕을 쬐며 시간을 보냈다. 한 4~5시간 머물렀는데 그 시간 내내 옥상에서 계속 남자 친구와 수다를 떠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은 분명 부모의 강압 때문에 도서관에 왔을 것이다. 하지만 도서관에 와봐야 남자 친구와 수다만 떤다면 보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었다(그 시간 동안 그들은 싸웠다가 화해하고, 즐거워하다가 펑펑 울었다). 그 학생이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는 고생했다며 어깨를 두드려주지 않을까? 결국 자기 주도학습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이다.

 

중위권이라면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좋다

 

최황 매니저는 고등학교 진입 시점에 이미 될 아이와 안 될 아이가 90% 이상 판정 난다고 말했다. 이미 상위권에 있어야 최종 성적이 잘 나온다는 것이다. 중위권에서 상위권으로 치고 나가는 경우가 물론 있지만, 이는 대부분 그동안 공부를 멀리했던 공부 잘하는 아이가 늦바람이 난 경우다. 상위권이 최상위권이 되기는 쉽다. 대부분 잘하고 살짝 미흡한 영역만 발굴해서 보강하면 되기 때문이다. 중위권이 상위권이 되려면 컨설턴트를 잘 만나야 하고, 공부에 뒤늦게라도 재미를 붙여야 하며 머리도 좋아야 한다.

 

"중위권은 소위 말하는 펑크 나는 구석이 많습니다. 이걸 다 메워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다녀야 하는 학원이 너무 많아집니다. 공부를 하기에는 늦은 시점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튀는 아이가 간혹 나옵니다. 그런 아이들 때문에 중위권 학생의 학부모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원 사업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돈만 버리고 끝납니다."

 

잘하는 아이의 경우 학원을 너무 많이 보내면 독이 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혼자 자기 학습을 하면서 본인의 것으로 습득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모든 시간을 다 학원으로 때우면 본인이 활용할 시간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상위권 학생은 본인이 미흡한 부분을 단과별로 찾아서 듣고 나머지는 본인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불확실한 자회사에 몰아주느냐, 수익성 좋은 모회사에 투자하느냐

 

언론계에 있는 서울대 출신 M씨는 자녀교육에 단 한 푼도 쓰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에게 왜 공부를 시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억지로 해봐야 성과가 나오지도 않고 그만큼 돈이 아깝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는 지금 멀쩡히 돈을 잘 벌고 있는 모회사입니다. 하지만 아들들은 미래가 한없이 불투명한 자회사죠. 저는 멀쩡한데 왜 자회사라는 이유만으로 투자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저(모회사)까지 망합니다. 차라리 제가 건강하게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제가 죽을 때 돈을 물려주는 것이 낫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견을 밝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공기업 임원 H씨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스펙을 가진 신입사원들을 볼 때마다 아이를 이 정도로 키울 자신이 없고, 설령 자녀가 이 회사에 들어온다고 해도 과거에 비해 턱없이 적어진 복지와 급여를 생각해보면 자녀의 미래가 밝지 않음을 느낀다고 했다.

 

강남에서 아이를 키우려면 많이 드는 집은 1년에 1억 원 이상씩 든다. 이것이 연구, 개발 자금이라고 했을 때, 과연 먼 미래에라도 이 자금이 회수될 수 있을까?

 

그동안 우리는 남의 시선 때문에라도 자녀가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원했다. 그런데 이것도 점점 옛날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다른 집에 대한 관심도 사실 해가 갈수록 옅어지고 있다.

 

금융회사 임원인 D씨는 같은 금융권에서 일하는 장남보다 요리사를 하는 차남 자랑을 더 많이 한다. 차남이 집에서 해주는 김치찌개는 엄마의 김치찌개와 차원이 다른 맛이 난다며 자랑한다. 본인이 요리사가 되고 싶다며 오랫동안 준비했고 지금은 즐겁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며 무척 기특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한다. 외국에서 대학을 나와 IB부문에서 일하는 장남이 들으면 서운하겠다 싶을 정도다.

 

D씨를 보면서도 느낀다. 우리 사회가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고... 명문대 입학이 다가 아니다.

 

이웃집 부자들_ 안재만·이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