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정책

힘들지만 바른 길_ 오세훈

정정진 2020. 2. 27. 11:53


악마의 거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공무원 증원을 추진한다. 공무원 한 명을 증원하기 위해 세금 17억 원이 들었다.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겠다고 최저 임금을 급격히 인상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사업을 축소하거나 폐업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파트타임 근로자들까지 무리하게 정규직화해 신규 채용이 감소하고 기업 경쟁력이 약화됐다. 국민 노후를 보장하겠다고 연금을 인상해 한정된 재원은 조기 고갈되고 국가 부채는 증가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선심성 정책을 남발했고 무리하게 정부의 재정 지출을 확대했다. 제조업은 붕괴되어 주요 기업들이 폐업하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했다. 좌파 정권과 노조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임금 인상 요구가 심화되고 파업 등 노사 분규가 빈번해졌다.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모두 그리스의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그리스의 과거는 현 정부의 행태와 판박이다. 나는 그리스의 재정 위기를 악마의 거래라고 표현하고 싶다.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더 많은 현금 복지와 공무원 증원, 연금 증액을 약속하며 표를 얻는다. 이렇게 얻은 표로 정권은 유지되고, 국민은 약속받은 과잉 복지를 당연한 권리로 인식한다. 종국에는 국가 부채가 늘어나고 산업 경쟁력이 소멸한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온전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번영과 쇠퇴의 갈림길


갈림길이다. 국민 소득 3만 달러 수준의 나라가 경제 시스템을 미래 지향적으로 업그레이드하지 못하고 포퓰리즘에 빠져 2만 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하후상박의 복지로 빈부 격차를 극복하고 경제 체질을 개선해 4만 달러 수준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전자는 그리스, 스폐인 같은 나라들이고 후자는 독일, 프랑스의 경우다. 우리는 이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독일은 2003년부터 4단계에 걸친 노동 개혁인 '하르츠 개혁'을 시행했다. 하르츠 개혁의 요체는 좌파 정권의 우파식 개혁이었다. 실업 수당 지급 기간을 32개월에서 12~18개월로 단축해 실업자들의 적극적인 구직 활동을 유도했다. 노동 유연성 확보를 통해 비정규직과 미니잡을 다수 양산했다. 기업은 해고를 자제했고 노조는 임금 인상 요구를 억제하며 고통을 분담했다. 이는 실업률 감소와 독일 경제의 부활로 이어졌다. 그러나 하르츠 개혁을 이끈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정치적 사망이라는 진단서를 받아야 했다. 2005년 조기 총선에서 승리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슈뢰더 전 총리가 마련한 하르츠 개혁의 발판 위에서 노동 개혁을 계속 추진했다.


슈뢰더 정부 하르츠 개혁 VS 문재인 정부 노동 정책


슈뢰더 정부 하르츠 개혁

문재인 정부 노동 정책

실업 급여 지급 기간 단축

2개월 -> 12~18개월

실업 급여 지급액과 지급 기간 연장

실직 전 급여 50% -> 60%

지급 기간 최대 240일 -> 270일

미니잡 등 다양한 고용 형태 창출 및 세제 혜택

최저 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일용직 일자리 감수 우려

'해고 보호법'적용 예외 사업장 확대

5인 이하 -> 10인 이하

저성과자 해고 취업 규칙 폐지

창업 시 비정규직 계약 기간 연장

2년 -> 4년

상시 근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추진

신규 채용 근로자의 수습 기간 연장

6개월 -> 2년

공공 기관 정규직 채용 확대

55세 이상 실업자 채용 시

고용 보험 부담금 전액

취업 규칙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으로 환원

노사 간 타협 능력이 없으면 정부가 직접 개혁

노동자와 사용자 간 대화를 통해

이해관계자의 개혁 유도


프랑스의 개혁도 주목할 만하다. 2008년 국제 금융 위기 이후 프랑스는 EU 주요국 가운데 대량 실업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였다. 청년 실업률이 20%를 넘었고 경제 성장률은 수년째 1%를 유지했다. 강력한 기득권 노조가 그 중심에 있었고, 경직된 노동 시장은 경제 쇠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이런 상황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노동 개혁이 시작됐다. 마크롱은 친시장 정책을 표방하며 노동 시장을 유연화하고 노동 분쟁 처리 기간을 단축했으며 정리 해고 요건을 완화했다. 그 결과 2017년 신규 제조업 공장 수가 폐쇄 공장 수를 8년 만에 넘어섰고, 제조업 신뢰 지수는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자 수는 17년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마크롱 역시 지지율은 바닥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그리스가 채택한 정책과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했고, 그 결과도 그리스와 반대로 나타났다. 그리스 경제 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퍼주기식 복지였다. 1981년 취임한 사회당의 파판드레우 총리는 취임 후 정부 지출을 늘려 의료 보험 혜택을 전 계층으로 확대하고 평균 임금과 최저 임금을 대폭 인상했다. 근로자 해고 요건은 강화했고, 대학 진학에 실패한 고교 졸업생은 국비로 해외 유학을 갈 수 있었다. 그리스의 연금 수령액은 95%였는데, 독일의 42%, 프랑스의 50%보다 두 배가량 높은 수치였다.


2015년 마침내 국가 재정이 파탄 난 그리스에게 독일 등 EU 주요국은 엄격한 긴축 재정안이 포함된 구제 금융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그리스는 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2018년 8월 20일, 그리스는 3년에 걸친 구제 금융 프로그램을 마쳤다. 하지만 축소된 경제 규모, 높은 실업률, 막대한 국가 부채 등 여전히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포퓰리즘의 극복


포퓰리즘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고 정권을 유지하는 것은 뿌리치기 쉽지 않은 달콤한 유혹이다. 반대로 이미 지원하고 있는 복지를 정비하도록 국민을 설득하고, 경제 체질을 개선하도록 국민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고 험난한 과정이다. 자칫 정권을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더 나은 국가로 발전하기 위해 국민의 동의와 의지를 이끌어 내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기에 정치인이 이끌어 나가야 할 방향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가. 문재인 정부가 지금 추구하는 정책 방향이 인기 영합에 사로잡힌 포퓰리즘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이 과장이 아니다.


결국 포퓰리즘을 짚고 넘어가지 않고서는 성장과 번영의 담론을 이야기할 수 없다. 포퓰리즘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적과 아군을 정확히 구분한다. 둘째, 단순 논리로 아주 쉽게 접근한다. 이러한 단순함 속에 악마가 숨어 있다. 셋째, 당장의 문제에 집중한다.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에 대한 언급은 없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을 한번 살펴보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무원 증원, 최저 임금 인상, 연장 수당 의무화, 아동 수당 신설, 기초 연금 증액, 문재인 케어(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군 복무 단축, 중소기업 취업 청년 보조금....


대부분의 정책이 정부가 무엇을 주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바람직한 미래와 행복한 공동체를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 국민적 설득과 합의도 없다. 현재의 고통 감내와 투자 없이 우리 모두가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19대 대선 공약집에 따르면 위에 나열한 현 정부의 정책을 실현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평균 35.6조 원, 5년간 총 178조 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증세를 할 것인지, 부채를 확대할 것인지, 그리고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공론화 과정은 없었다.


해외 사례에서 해법을 찾아보자. 스웨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스웨덴이 보여 준 해법은 노사 간 교섭을 통해 고임금 기업의 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저임금 기업의 임금은 높이는 ① 양보와 희생 ② 균등한 기회의 제공 ③ 높은 국가 청렴도를 가져온 신뢰와 투명성 ④ 기부와 나눔 ⑤ 국민적 합의를 통한 고부담, 고복지로 요약된다.


간단하고 당연한 내용이지만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스웨덴은 서로의 희생을 강요하는 배타적인 갈등과 기회의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공생과 공존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국민적 동의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을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 판단했다. 아울러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공정한 제도와 시스템을 정비했고, 이런 노력들이 지금의 스웨덴을 만들었다.


이러한 해법이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기까지는 무엇보다 스웨덴 국민의 전통적 사회 가치관이 큰 역할을 했다. 양보와 희생, 균등한 기회와 나눔, 그리고 신뢰와 투명성을 만들어 내는 국민적 문화와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래_ 오세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