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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레이스에 더 유리한 것은 재능보다 적성이다_ 김미경

정정진 2020. 2. 22. 18:24


많은 경우에 재능과 적성은 겹치는 경우가 많다. 잘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EBS 다큐프라임 '아이의 사생활'에는 현재의 일에 불만을 가진 8명의 출연자들이 나온다. 영어 교사, 의대생,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 등 남들이 보기에는 더 이상 꿈꾸는 일이 불필요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현직 영어 교사는 수의사를 꿈꾸고, 의대생은 방송작가를 꿈꾸고,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는 성우가 되고 싶다고 한다. 이들에게 다중지능 테스트를 해봤더니 그들이 갖고 있는 재능과 그들의 꿈이 8명 모두 정확하게 일치했다.


수의사를 꿈꾸는 영어 교사의 강점은 자연친화 지능이었고, 방송작가가 되고 싶은 의대생의 강점은 자기이해 지능이었다. 또한 성우가 꿈인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는 언어 지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내 안에 내재돼 있던 재능이 자연스레 열정과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가설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다른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데 잘하는 것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이거나,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재능은 태권도일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청춘들이 묻곤 한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나요?"


만약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드림인턴이라면 좋아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초보 때는 천재가 아닌 이상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본인은 잘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프로의 세계에 뛰어드는 순간,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하다. 10년 혹은 15년 정도 무르익지 않은 재능은 그 어떤 재능이라도 사회에서 자본과 거래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장기 레이스에 더 유리한 것은 재능보다는 적성이다. 재능에 집중하면 초반에 반짝 빠르게 달릴 수는 있다. 하지만 중간에 지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게 하는 에너지는 적성에서 나온다. 잘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는 법이다.


물론 처음에는 조금 망설여질 수도 있다. 잘하는 것을 놔두고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모험이니까. 실제로 잘하는 것은 객관적인 실체고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다. 잘하는 것은 '얼마짜리'인지 손쉽게 가치를 환산할 수 있는 반면, 좋아하는 것은 가치를 매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지금 하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꿈은 영원히 꿈에 머물고 만다. 감히 이 일을 정말 좋아하고, 내 꿈이라고 말하려면 잘할 때까지 해야 한다. 모험이 무모한 도전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잘하게 만드는 것 또한 나의 책임과 의무다. 물론 내 주관적인 감정을 실체로 드러내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일을 취미반에서 프로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면 피눈물 나는 실행이 필요하다.


싫어하는 일 30%까지도 참아낼 수 있나?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체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해야 '나는 이것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으로 내 꿈을 만들려면, 어느 정도로 좋아해야 하는 것일까?


많은 직장인들이 살면서 한 번쯤은 진로변경을 심각하게 고민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적성에 안 맞고 아무리 해도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다른 일을 몇 가지 떠올려보지만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하나?'에 대해 자신조차 헷갈린다. 내가 좋아하는 것의 실체를 알고 싶다면 이제부터 설명하는 세 가지의 객관적인 기준을 놓고 철저히 검증해보기 바란다.


첫째, 일주일에 1회 좋아하는 것은 취미반이지 선수반은 아니다. 좋아하는 것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말에 영화 한 편 정도는 취미로 본다. 일주일에 한 번씩 요리를 즐기기도 하고, 출사를 나가 사진을 찍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그 일을 취미로 할 때는 무척이나 즐겁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내가 꿈의 재료로 쓸 만큼 좋아하는 일일까?


정말 좋아한다면 일주일에 하루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일주일 내내 밤낮없이 생각하고, 늘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한창 강사의 꿈을 키워가고 있을 때는 24시간 내내 강의만 생각했다.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강의를 나가더라도 그 하루를 위해 한 달 내내 매일 공부하고 연습했다. 강사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에는 하루에 4~5번씩 전국을 돌며 강의를 해도 지치지 않았다.


반면, 내가 아는 어느 CEO는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절대 강의를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는 일이 재미있지만, 자신에게는 딱 그 정도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2시간짜리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도 힘들고, 하고 나면 체력도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처럼 강의가 적성에 맞는 사람은 하면 할수록 연비가 높아져 피곤하지도 않다. 쉬지 않고 달려도 남들보다 힘이 덜 들고, 아무리 에너지를 많이 써도 금방 다시 채워진다. 적성이라는 꿈의 재료가 최고급인 이유다. 때문에 적성이라는 드림리소스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자신에게 내재한 꿈을 만드는 재료가 프로용인지 아마추어용인지부터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둘째, 정말 좋아하는 것은 좋아할 수 없는 30%를 참아내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30% 정도 싫고 귀찮은 일들이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요리사가 되어 요리하는 것은 좋은데 설거지는 너무 싫다. 선생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좋은데 학부모 면담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의사로서 환자들을 돌보는 것은 보람 있지만 그들의 불평불만을 듣는 것은 고역이다.


특히나 일을 처음 하는 초보 때는 좋아하는 일이 30%, 싫어하는 일이 70%다. 조직에서 인턴은 제일 만만한 사람이므로 남들이 하기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일까지 떠안게 돼 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고 경력이 쌓이기 시작하면 점점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의 비율이 역전되기 시작한다.


예전에 나는 강의를 할 때 가장 하기 싫은 일이 교안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미 내 머릿속에 다 들어 있는 내용을 글로 다시 정리하자니 어색하고 귀찮았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강의를 맡기는 동시에 교안을 요구했다. 초보 강사 때는 사전에 교안으로 실력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내게 교안을 요구하는 곳이 거의 없다.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믿고 맡기기 때문이다. 어쩌다 교안을 요구해도 직원들이 정리해준다. 여기까지 오는 데 거의 15년이 걸렸다.


때문에 정말 이 일을 좋아하는 것은 좋아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까지 감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꾸로 말해 70%는 좋은데 나머지 30%를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다면, 그것은 꿈의 재료로 쓸 만큼 좋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경우라면 100% 좋아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는 게 현명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이것밖에 없다면, 싫어하는 일 30%와 끝까지 싸워서 좋아하는 일로 만드는 것, 그래서 100%를 채우는 것도 방법이다.


셋째, 남들이 다 좋아하는 것은 진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화려하고, 쉽고, 그럴듯해 보이는 일을 선호한다. 특히 TV 드라마나 언론에서 새로운 스타가 등장하면 너도나도 따라한다.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갑자기 피겨스케이팅 바람이 불고, 드라마에서 의상 디자이너나 의사가 뜨면 그쪽으로 확 쏠린다. 그런데 남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 일인데 유독 그 일이 좋아 보이면 드림리소스일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똑같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지만 홍보팀에서 기자들을 상대하는 것과 직접 영업을 하면서 고객을 상대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대부분은 영업보다 홍보 일을 선호한다. 영업 업무라는 것이 실적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고 사람들로부터 상처도 많이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남들이 꺼리는 영업이 좋다면 그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과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에 휩쓸리게 마련이다. 여기서 나다운 적성을 찾는 것은 때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끌리는 일이라면 한 번쯤 모험을 해볼 가치가 있다.


내 적성,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때로는 내가 나한테 속기도 하고, 세상에 휩쓸려 잠시 착각하기도 한다. 게다가 사회의 모든 분야가 탁월한 드림워커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집요하게 탐구하지 않으면 평생 동안 모를 수도 있다.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주관적인 나만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낼 정도의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만이 궁극적으로 꿈을 만들고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그 어느 것보다 강력한 꿈의 자원이 될 수 있다.


김미경의 드림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