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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만 나를 잃어버리지?_ 하정우

정정진 2019. 6. 19. 11:48


내 숨과 보폭으로 걸어야 할 때


2015년 내가 주연과 감독을 맡은 <허삼관>이 개봉했을 때, 나는 항상 <암살>의 주요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허삼관>은 기이할 정도로 관객이 들지 않고 있었다. 부랴부랴 이유를 찾다가, 나 자신을 질책하다가, 눈떠보면 <암살> 촬영 시간이 닥쳐와 있었다.


촬영장에 가는 것조차 너무나 힘이 들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분명 나를 위로하려 할 테니까. 어떤 사람은 별일 아닌 척 담담하게 나를 토닥일 테고, 또 누군가는 까맣게 타는 내 속마음을 눈치채고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조심스러워할 것이다. 그 모두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나는 더 불편했다.


갑자기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사람들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나의 아픈 마음을 어떻게 털어놓아야 하는 건지, 사람들의 위로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 건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촬영장에서 유쾌하게 농담을 건네고 사람들을 웃기던 하정우는 사라져버리고, 무슨 짓을 해도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든 어둡고 우울한 남자만 거기 남아 있었다.


아침에 촬영장으로 향하는 출근길, 나는 한 시간씩 기도했다. 제발 내가 맡은 연기만은 무사히 소화하게 해달라고.


그렇게 악전고투 끝에 <암살> 촬영을 간신히 끝내고 다음날 치과에서 사랑니 하나를 뽑았다. 밤비행기를 타고 LA로 날아갔다. 한 달 후 LA에서 그림 개인전을 열기로 되어 있었다.


LA 숙소에 도착한 첫날, 시차 때문인지 새벽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내가 무리한 걸까? 면역력이 약해지면 묘한 공포와 한기가 몸을 덮칠 때가 있다. 불안 증세와 함께 오한과 통증이 몰려왔다. 냉장고에서 물이라도 꺼내 마시려고 부엌으로 갔는데, 순간 무릎이 푹 꺾였다. 그대로 한참 동안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개인전을 열기 전에 내가 완성하기로 약속한 작품 수가 있었다. 전시 오픈 일정은 점점 다가오는데 그림이 모자랐다. 개인전이 열리기 약 한 달 전이었다. 숨 돌릴 새도 없이 그림을 그리는 사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이걸 다 어떻게 그리지?'

'못하면 어떡하지?'


갑자기 두려웠다. 내가 약속해버린 모든 것이. 내가 해내야만 할 모든 일들이.


그래도 어떻게든 그려야겠다 싶어서, 한 달 동안 꾸역꾸역 악으로 깡으로 그림을 그렸다. 바깥에 나가지도 않고 내리 스무 작품을 미친듯이 그렸다. 하루 열세 시간에서 많게는 열다섯 시간씩 그림에 미쳐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림을 그린 게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저 공포에 질려서 '나'를 복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려보니 체중이 15킬로그램이나 불어 있었다.


전시회 오픈일이 되었다. 아슬아슬했지만 다행히 약속한 작품 수를 모두 채웠다. 전시중에는 유명한 미술평론가도 다녀갔다. 그런데 갤러리에서는 의례적인 칭찬을 하고 내 그림의 장점을 주로 언급하던 그 미술평론가가 사석에서 내게 조심스레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왜 이렇게 디자인에만 신경을 쓰시나요?"


그 개인전의 한 코너에는 내가 시시때때로 쓱쓱 그런 스케치를 두었고, 넓은 공간에 완성도 있는 작품들을 전시해두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왜 저 구석에 있는 스케치처럼 자유롭게 그리지 못하고 완성작들은 디자인 요소에만 매달렸느냐'는 뼈아픈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내게 그 말은 곧, 왜 이렇게 남들 시선만 신경쓰며 사느냐는 물음과 다르지 않게 들렸다.


비단 그림에 대해서만이 아니었다. 영화에 대해서, 연출에 대해서, 연기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묻고 있었다.


'왜 이렇게 나 자신을 자꾸 잃어버리지?'


거의 1년 반 동안 나는 정말 바쁘게 열심히 살았다. <허삼관> 촬영, 후반 작업과 개봉, 그에 맞물려서 진행된 <암살>촬영, 그 촬영이 끝나자마자 한 달 동안 내 나름대로 안간힘을 다해 준비한 그림 전시회. 그런데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쏟은 결과가 고작 이것이라니.


'남의 눈만 신경쓰고 사는 사람.'


그 평론가의 말에 나는 깊이 찔렸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말은 내게 엄청난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묻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에 어떻게 그렸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뭐였지?'

'왜 그림을 그리려고 했지?'


운좋게도 다시 6월에 뉴욕 전시회가 잡혀 있었다.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든 못 받든 신경쓰지 말고 그려보기로 했다. 한점 한점 그저 내 마음 가는 대로 그림을 그려서 뉴욕으로 보냈다.


결과는?

감동적인 성장소설처럼, 반전 있는 드라마처럼 엄청난 호평이 쇄도하고 갤러리를 찾은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딱, 한 점이 팔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치, 난 원래 이런 걸 그렸던 사람이지.'


괜히, 웃음이 났다.

사실 뉴욕 전시회에 보낸 그림을 그릴 때부터 진작 알았다. 이 그림, 누구도 별로 안 좋아할 것 같다는 예감. 잘 안 팔릴 것 같다는 생각. 그간 사람들이 내 인물화를 보면 무섭다고들 했다. 그림이 팔리고 안 팔리고는 나에겐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내 그림을 선택하고 전시해준 갤러리에는 중요한 일이다. 기왕이면 내 그림을 믿어준 갤러리 관계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작품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밝게, 재기발랄하게 그려보면 어떨까!


그러다 그 미술평론가의 고마운 지적을 계기로 '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려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이다. 물론 뉴욕에서 받은 성적표는 처참했다. 팔린 그림 한 점.(그리고 뉴욕 갤러리에서는 통 연락이 없었다..) 그러나 그 사건은 분명 내게 결정적인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그후 나는 그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려나가기로 했다. 그림도, 또 내 인생도.


지금도 나는 어중간한 그림 열 점을 늘어놓았을 때보다 나를 닮은 그림 한 점이 완성되었을 때, 기분이 좋다.


한때 나는 열정을 잃어버린 느낌을 받았다. 나 자신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걷는 것, 내 보폭을 알고 무리하지 않는 것, 내 숨으로 걷는 것. 걷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묘하게도 인생과 이토록 닮았다.


걷는 사람, 하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