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성찰

길은 하나가 아닌데_ 하완

정정진 2019. 3. 16. 13:46


나는 불치병에 걸렸었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입시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병이었다. 그 병의 이름은 '홍대병'. 내가 입시를 준비하던 당시, 이 병에 걸려 무려 7수를 하고 있다는 입시생의 전설이 학원가를 떠돌았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었지만 홍대병은 그 정도로 무서운 병이었다. 다른 대학에 붙어도 홍대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재수를 하고 떨어지면 또다시 도전하고, 그렇게 일곱 번 무려 7년간 입시생 생활을 할 만큼 무서운 불치병이었다. 홍대가 뭐라고. 그런데 그 무서운 병에 내가 걸렸다. 덜컥.


고3 때 홍대 입시를 봤지만 떨어졌다. 다른 대학에 붙었지만 당연히 가지 않았다. 대학의 레벨이 높아진다면 기꺼이 1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재수를 하고 다시 홍대에 도전했다. 그리고 또 떨어졌다.


이럴 수가, 아까운 내 1년.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라고 배웠으니까. 노력하면 안 되는 건 없어. 내 노력이 부족했던 거야. 한 번만, 한 번만 더 도전하자. 투자한 1년이 아까워서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3수생이 됐다. 아아, 나는 멈췄어야 했다.


벌써 3수라니, 이번엔 꼭 붙어야만 한다. 누구보다 노력했고, 누구보다 간절했다. 홍대에 붙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그런데 맙소사, 또 떨어졌다. 세 번째 낙방. 합격자 발표가 있던 밤, 나는 동작대교 위에서 차가운 강물을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내 인생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리 위에서 인생을 끝낼 생각이었다.


세 번이나 도전했는데 떨어지다니. 이유가 뭘까? 나보다 못 그리던 애들은 다 붙었는데, 왜 내가 떨어진 걸까? 긴장했던 탓일까? 홍대 입시장만 가면 한 번도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니, 거의 망치고 나왔다. 아, 누군가 실전에서 잘하는 것도 실력이라고 했다. 이유야 어떻든 난 떨어졌고 그것은 곧 실력 부족, 노력 부족을 의미했다. 변명은 필요 없었다. 난 루저다.


부모님 얼굴을 어떻게 보나. 이대로 죽는 게 깨끗한 선택이야. 그래, 죽자! 하지만 무서워서 뛰어내리지 못했다. 죽을 용기도 없는 비겁한 나를 마주하니 더 비참해졌다. 울면서 다리를 건넜다. 겨울바람이 차가웠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어쩔 수 없이 다른 대학에 입학했다. 두어 달 다녀봤는데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다.


'겨우 여기 오려고 3수까지 한 거야? 처음부터 네 자리는 여기였어. 주제도 모르고 덤비더니 꼴좋다.'


나를 괴롭히는 목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루저인 채로 살아가야 하는 건가. 이런 패배감을 안고 평생 살아가야 하는 거란 말인가.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내가 꼭 가고 만다. 그렇다. 그 병은 불치병이었다.


어쩌면 그때 멈췄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부모님 몰래 자퇴를 했다. 학교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시 입시 준비를 했다. 4수였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나에겐 그곳에 가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고, 다른 길은 없었다.


아, 홍대병에 걸려 7수를 했다던 그 입시생. 거짓이 아니었구나. 바로 나 같은 인간이 그런 입시생이 되는 것이었구나. 고작 대학교의 간판을 위해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낼 가치가 있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눈에 뭔가가 씐 게 분명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겨울이 오고 홍대 입시를 치렀다. 그리고 그 해, 나는 네 번의 도전 만에 홍대에 합격했다.


이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서 꿈을 이룬 성공 스토리쯤으로 읽었다면 한참 잘못 읽은 거다. 이건 잘못된 목표가, 오직 한 가지 길밖에 없다는 믿음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내가 홍대를 갈망했던 이유는 그것이 내 인생을 바꿔줄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어른들은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인생이 성공으로 끝나는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다들 미대 중에선 홍대가 최고라며 입을 모았다. 홍대만 나오면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스카우트한다는 소문도 들렸다. 바로 저기다. 저기만 들어가면 내 구질구질한 인생도 한 방에 바뀌겠지. 아무도 날 무시하지 못할 거야. 지금 내 상황에선 저곳만이 유일한 희망이야.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생고생해서 홍대에 입학했지만 내 인생은 변하지 않았다. 캠퍼스의 낭만이나 배움의 열정은 개뿔, 오직 학비를 벌기 위한 노동만이 있을 뿐이었고 대기업들이 스카우트한다는 소문은 말 그대로 소문이었다. 각자 알아서 자기 살길 찾느라 바빴다. 그리고 난 길을 잃었다.


4년째 공무원 시험에 낙방하여 자살을 택한 한 공시생의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들었다.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던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그 청년은 목을 맸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또 얼마나 죄송했을까. 수많은 젊은이가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는 현실도 안타깝고, 거기서 실패했다고 목숨을 버리는 상황은 더욱 안타깝다.


고작 공무원 시험에 목숨을 버리느냐고, 공무원이 목숨을 걸 만한 일생일대의 일이냐며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무언가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다른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나 역시 죽으려 하지 않았나.


조금만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길들이 있는데, 그때는 그게 보이지 않는다. 오직 하나, 이 길만이 유일한 길이라 믿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길은 절대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그 길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가보면 그 길이 자신이 원하던 길이 아닌 경우도 많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싫어한다. 목숨 빼곤 다 포기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쉽게 포기하며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하는 목표가 있으면 노력도 하고, 최선을 다해봐야 한다. 그렇게 두세 번 도전했는데도 안 되면 과감히 포기하는 게 맞다. 나처럼 4년 혹은 그 이상 매달리는 것은 집착이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말처럼 잔혹한 말은 없다. 그 목표를 절대 포기할 수 없어서 자신의 목숨을 끊다니 이런 비극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다.

어떤 길을 고집한다는 것은 나머지 길들을 포기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이미 많은 것을 포기했으니 그것 또한 포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너무 괴롭거든 포기해라. 포기해도 괜찮다. 길은 절대 하나가 아니니까.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_ 하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