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

노조의 무한 질주_ 송호근 교수

정정진 2018. 12. 3. 15:25


일은 적게, 돈은 많이, 고용은 길게.. 현장노동자들의 최고 관심사인 이 세 가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조는 작업장을 장악해야 한다. 작업현장의 모든 사안을 결정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 현대차 노조는 이미 이런 조건을 충족했다. 8 대 2 비율로 노조 권한이 막강해진 작업장에서 회사의 통제력은 위축 일로를 걸었다. 웬만하면 다 들어준 덕택이다. 문제의 소지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 그래서 대자보로 어떤 공장의 충돌사태가 전 공장으로 퍼지지 않게 막는 미봉책이 난발됐다.


"어지간하면 그냥 피하지요. 구태여 충돌해서 문제를 일으키면 나만 손해니까."


회사 통제력의 근간인 라인장과 그룹장은 이렇게 말한다.  '나만 손해'란 대의원에 의해 낙인찍히는 것을 말한다. 대의원이 조합 집행부에 올려 사안을 키우면 내가 스스로 보직해임 당하는 외에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러는 사이 조합원 4만 8천 명을 거느린 대규모 단위노조, 독접기능을 가동해 비대해진 노조는 전국 최고의 임금, 전국 최고의 복지, 그리고 완전고용이라는 중산층의 꿈을 실현시키고 특권적 철옹성이 되었다.


전직 노조위원장들은 노조의 이런 행보에 대해 비판적이다. 미래를 대비하고, 기업경쟁력을 고려하고, 사회적 형평성을 동시에 살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재임기간 중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는 것, 이제는 노조의 공익 기능을 증진해야 할 시점이라고 반성적 어조로 말한다. 자신의 노동에 훨씬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사회적 인식을 더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완전고용 합의, 가파른 임금인상, 8/8 근무제를 따낸 것이 노조의 가장 큰 업적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른 공장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상당한 쟁취이지만 그것이 노동의욕을 높였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한 전직 위원장은 러시아공장에서 여성노동자가 자동차 프레스에 흠을 내지 않으려 방석을 소지하고 있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자신이 생산한 제품을 아끼는 거지요. 그런 열정을 한국공장에는 보기 어렵습니다."


고용안정과 고임금을 쟁취한 노동자들이 노동규율에 대한 냉소와 '노동 최소화'로 갚고 있다면, 한국경제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고용안정


완전고용 합의는 사실상 노동 사기를 진작하는 매우 값비싼 선물이다. 널뛰는 경기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조치가 어디 쉬운 일인가. 1998년 쓰라린 대량해고 사태를 치른 뒤 노조는 2000년 완전고용 합의를 따냈다.


현재 재직 중인 정규인력은 정년을 보장하고, 국내외 경기변동으로 인한 판매부진 및 해외공장 건설과 운영을 이유로 조합과 공동결정 없이 일방적인 정리해고, 희망퇴직을 실시하지 않는다.


완전고용도 부족해 최근에는 정년연령을 만 60세로 늘렸다가, 2015년에는 65세로 늘려 줄 것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기도 했다. 청년실업에 역행하는 발상이다. 완전고용 합의와 함께 정리해고의 완충지대를 설정했다. 비정규직이 그것이다.


생산차종의 단종, 신구 차종 간의 병행 생산기간, 한시적인 특수 발생, 생산량이 정해진 예외 작업 등 그 기간과 인원이 명백한 경우 임시로 비정규직 투입을 허용하되, 일자리 배치 공정은 노사합의한다. 공장 전체의 투입 비율은 1997년 8월 이전의 비율 이내 관리를 원칙으로 한다. 단, 노사합의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


이것이 비정규직 문제의 출발점이다. 과거에는 포장, 청소, 식당 등 주변 업무에 활용된 비정규직은 이후 생산라인에 직접 투입되는 인력으로 바뀌었다. 현대차 노조는 비정규직 비율을 16.9%로 고정했는데, 임금은 대개 70~80%에 불과하고, 극단적인 고용불안정에 내몰린 상태가 지속됐다. 문제는 최근까지 '하청 근로자'로 불리는 비정규직이 직영 정규직과 사실상 동일한 노동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섞여 일을 하는 작업장에서 비정규직은 서러운 하층민이다. 정규직이 자기 공정으로 인력을 빼 가거나 힘들고 어려운 노동을 할당하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났는데, 노조 대의원은 그것의 부당함을 시정하거나 개선을 지시하지 않는다. 조합원들이 원한다면 묵인한다. 편한 것을 좋아하고 기득권을 행사하고 싶은 문화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대의원은 조합원들의 그런 심정을 간파한다. 거기에 호응해야 차기 대의원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다.


표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까... 사측에 논리적으로 끌려간다 싶으면 다음 선거에서는 당선이 안 되거든요. 국회의원하고 똑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러니까, 조금 강하게 보이려 하고, 자기 나름대로 뭔가 하여튼 현장 조합원들, 현장 사람들, 직원들한테는 좀더 뭔가 챙겨 주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자꾸 생각이 더 올라가게 되고, 현장의 노동문화가 이건 아니다 싶은데도 자꾸 그런 쪽으로 벗어나는 경향이 있는 거죠.


현장이 이러니 비정규직은 서러움을 씻을 곳이 없다. 저녁 술자리에서나 울분을 토로할 수밖에. 이런 부당한 대우와 종속적 지위에 대항하여 비정규직자는 2003년 노조를 결성했다. 이후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노조와 연대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했는데, 10여 년에 이르는 논란 끝에 2016년 6천여 명 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합의에 이르렀다.


정규직화된 하청 1차 인력 4천여 명은 지난 시절의 부당한 대우를 만회하려고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중이다. 근속연한 인정, 초기직급의 상향조정, 심지어는 오랜 기간 강요된 임금 불이익의 일괄 지급을 요청하고 있다. 정규직 노조도 예상치 못한 이런 요구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결자해지라고 했던가, 고용안정의 철옹성을 쌓은 현대차 노조는 그들의 서러움을 씻는 차원에서 아무튼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형편이다. 차별을 구조화했던 원죄에 대한 대가 치르기가 시작됐다. 국내 3개 공장에 전환 배치된 4천여 명의 인력은 노조 내부에 새로운 분파를 결성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2016년 봄, 울산공장에 대자보가 붙었다. "사측 노동시장 구조개악 2대 지침 등에 업고 판매조합원 징계협박"이라는 제목이었다. 2대 지침이란 노사정위원회가 제안한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즉 '임금 피크제'다. 이 두 가지는 정부 차원의 노사정위원회가 노사의 양보를 맞교환하는 과정에서 제안된 의제인데, 민노총과 야당의 극렬한 반대로 아직 입법화가 안 된 쟁점 사안이다.


그 대자보가 붙은 경위는 이러하다. 회사는 판매직 사원 중 근무태만, 나태, 영업장 이탈, 부도덕한 행위를 한 사람을 골라 징계절차를 밟았고, 그중 의도적으로 영업현장을 이탈한 십수 명을 적발해 해고하려 했다. 그중에는 출근도장만 찍고 자택에서 주식투자를 일삼던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부도덕 행위만이 아니라 일종의 사기행각에 해당한다.


그런데 대자보 제목 바로 밑에는 이런 구호가 적혔다. "판매가 뚫리면 우리도 뚫린다." 저성과자 평가로 해고가 가능하다면, 울산공장의 작업장도 평가대상이 되고 이는 곧 노사정위원회 제안을 수용하는 꼴이 된다. 노조는 문제가 된 판매사원의 행위를 실사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성과자 해고'를 서둘러 방어하려는 포석이었다. 판매직이 아무리 근무태만이나 여타의 부도덕한 행위를 저질렀다 해도 노조의 반대가 심한 상황에서는 해고가 쉽지 않다. 단체협약에 명시되어 있는 고용보호 조항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작업장은 도덕적 해이가 포자처럼 번성할 좋은 조건을 갖췄다. 노동 사기를 높이는 고용안정협악은 생산성을 낮추는 활강 활주로로 변했고, 인기 영합이 최고의 권력자원인 노조는 그 활주로를 지키는 경비병이 되었다.


가 보지 않은 길_ 송호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