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수행

깨달음은 따스한 시선이다_ 현진스님

정정진 2017. 10. 29. 13:47


8세기 중엽의 스승 청원 선사는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를 세상에 남겼다.


노승이 30여 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었고 물은 물이었다. 그 후에 스승을 만나서 안목이 열려 보았을 때는 산은 산이 아니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모든 분별을 놓고 나니까 그때 역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더라.


이것은 깨달음 이전과 깨달음의 과정과 깨달음의 세계를 말한 것이다. 그러니까 깊은 수행을 통해 깨달음은 이렇게 전개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깨닫기 전과 후에도 여전히 산은 산이며, 물은 물이라는 방식이다. 어쩌면 현상과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관찰자의 입장이 달라진 태도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깨달음의 안목이라는 것은 세상을 향해 보다 긍정적이고 따스한 시선이 된다는 의미다.


대부분 사물을 인식할 때 본래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분별이라는 과정을 통하게 된다. 다시말해 자신의 지식과 이해가 개입된다는 것이다. 자연과 마주하면서도, 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꽃만 보일 것이며,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풍경으로 보일 것이며, 부동산 업자에게는 매매의 대상으로 투영될 것이다. 이렇게 각자의 이해타산과 상관없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뿐이다. 그러나 욕심을 정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여전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만 내 감정이 개입되지 않으니까 무심히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하다면 깨달음의 세계는 세상을 향해 끊없이 부드러워지고 친절해지는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즉 객관과 주관이 사라지고 시비분별에서 자유로워지니까 자비심이 충만한 그런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 깨달음을 이야기하는 스승이 까칠하고 무뚝뚝하다면 그것은 참다운 깨침이 아닐지도 모른다.


근래에 우리 교단의 교육을 책임지는 어른이 "깨달음은 이해다"라는 주장을 하여 논쟁이 가열된 적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깨달음은 이해될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쪽이다. 그분은 "깊은 사유와 성찰을 통해 깨달음은 이해될 수 있다"는 전제를 달고 있다. 즉 사유와 성찰의 과정을 거쳐야 깨달음은 이해될 수 있다는 견해다. 따라서 자기 수행이나 자기 발견이 없는 사람에게는 깨달음은 이해될 수 없다는 뜻도 된다. 그러니까 지식적인 이해가 아니라 체험적인 이해라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깨달음의 세계를 논리로 분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어떤 사유와 성찰의 단계를 거친다면 깨달음은 인식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깨달음의 안목이라는 것은 인식의 전환에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변화는 곧 행동의 변화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유와 성찰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여과를 거쳐 분별과 욕심이 줄어들었다면 그것은 작은 깨달음이 될 수 있다.


나는 강연할 때마다 경전의 교리나 선종의 법어를 보다 쉽게 설명하면서 전달하려고 고민하고 있다. 아무리 고귀하고 현명한 진리라 할지라도 그 용어가 어렵다면 그 사상은 이미 사람들과 멀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가르침을 대중성 있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듣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설명하는 사람의 허물일 것이다.


이곳 절과 인연이 되던 그해 겨울에 여유가 주어져서 법정스님의 저서를 빠짐없이 다시 읽을 기회가 되었다. 새삼 그 필력에 감탄하게 된 것은 문장이나 어려운 용어가 없다는 것이다. 평이한 서술이지만 그 행간에는 불교 교리와 사상이 깊이 스며 있었다. 그러니까 불교적 용어로 서술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에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몇몇 스님들의 공통점도 불교의 가르침을 쉽게 편안하게 이야기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분들의 강의는 거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서 대중들이 호응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결국 이해한다는 것은 반응한다는 의미다. 그 이해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고 내면을 성찰하는 효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깨달음은 어떤 식으로든 이해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 경우는 일상의 깨달음은 큰 감동과 충격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편견이나 가치관이 어떤 감동이나 충격과 마주했을 때 인생의 새로운 전기나 전환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통해 감동과 충격이라는 강한 울림이 있다면 그 시점부터 인식의 변화가 올 수 있다. 결국 인식의 변화는 한 사람의 행동양식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앙과 사상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이나 위안을 제공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감동과 충격에 반응하지 못하는 감성인지도 모른다. 일상의 작은 감동과 충격을 통해 감사와 위로가 전해졌다면 그 사람은 자잘한 깨달음을 경험한 것이라 말하고 싶다.


좋은 봄날에 울지 마라_ 현진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