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없는 것이 트렌드_ 이종린(메디슨브랜드)
이종린 사장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꽤 알려진 기업의 대표였다. 2010년 그의 나이 서른둘에 세 명의 직원과 함께 사업을 시작하여, 6년만에 300명의 식구를 거느리는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2016년 가을, 돌연 회사를 정리하고 2017년 1월, 정유년의 시작과 함께 '메디슨브랜드'라는 스타트업 기업을 새로 꾸렸다.
기업 정리의 이유로 흔히 꼽을 수 있는 매출 저하, 상장 심사 탈락 외에 아주 중요한 것이 있었다. 대학생 때부터 현재까지 20년 가까이 장사와 사업을 해보니, 돈도 돈이지만 '과연 그 일을 하면서 나는 행복했는가?', '그 일이 얼마나 가치 있고 의미 있었는가?'에 대한 물음에 스스로 명쾌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그는 늘 괴로웠다. 하면 할수록 행복해지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새로 시작하는 회사의 아이템은 그런 부분들을 충족시켜주는 것이어야 했다.
다행인 것은 이미 이전 기업에서도 조금씩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회사를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는 혼란스런 분위기에서도 큰 흔들림 없이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다. 메디슨브랜드의 출발은 이종린 사장이 2010년에 시작했던 작은 회사의 첫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직원은 그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이다. 사장실이 따로 없는 조그만 사무실이다. 게다가 6년쯤 후의 목표도 비슷하다. 그는 6년 만에 직원 500명의 회사를 만들 각오다. 다만 회사가 커진다 해도 지난번처럼 경영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두 번째 도전의 출발점에 서 있는 그의 앞으로의 계획과 직전 기업을 통해 느낀 점, 그리고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사장들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예상된다. '이렇게 했더니 좋은 것 같았는데 사실은 아니었다.'와 같은...
트렌드를 좇아서
이종린 사장은 야간 대학생 시절 시작한 '휴대폰 판매 대리점'부터 메디슨브랜드까지, 지금까지 총 여섯 번의 창업을 경험했다. 메디슨브랜드를 제외한 다섯 번의 사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두 트렌드를 좇아 시작했다는 것.
흑백 폰에서 컬러 폰으로 시장의 큰 변화가 생기며 소비자들이 휴대폰에 열광하기 시작했을 때 모교 앞에 휴대폰 대리점을 시작했고, 온라인으로 플라워 숍이 활성화될 때는 화원을 운영했다. 당시, 화원은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애로사항이 많았다. 다음에 이어 네이버까지 등장하며 중소기업들 사이에 웹 디자인 열풍이 불었을 때는 웹 디자인 학원을 차려 적지 않은 돈을 모았고, 영화 <타짜>의 포스터 글씨 한 子가 수백만 원의 가치가 있을 때에는 수도권을 제외하고 전국 최초로 부산, 경남지역에 캘리그라피 학원을 설립하는 등 끊임없이 유행을 좇아서 사업을 했다.
캘리그라피 학원을 운영하고 있던 때, 좀 더 트렌디한 강사를 영입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그는 서울이라는 차원이 다른 세상과 그동안 해오던 자신의 사업에 한계를 느끼고 소위 큰물에 몸이라도 담가보겠다는 마음으로 휴대폰 제조 기업에 입사한다. 그런데 그때, 아이폰이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고, 아이폰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을 보고 또 다시 그의 '트렌드 좇기 본능'이 살아났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디자인 기업을 만들어 휴대폰 케이스 제조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의 회사에서 만든 휴대폰 케이스는 누적 판매량 3000만 개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유아용품 트렌드가 북유럽 스타일인 것을 알고나서는 북유럽 스타일의 자체 유아용품 브랜드를 개발하고, 자연을 모티브로 한 주얼리가 유행하자 장미가시 디자인의 보석 브랜드를 론칭했으며, 오가닉이 트렌드가 되자 아예 유기농 마트를 차리기도 하는 등 정말 쉬지 않고 유행을 따라, 돈 되는 일을 좇아 사업을 해왔다.
새롭게 소비자들의 관심을 끄는 트렌드를 빨리 발견하고 그것을 아이템으로 사업화시킨 덕에 회사의 규모는 점점 커져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자의 트렌드 변화 주기가 짧아지기 시작했다. 길면 3년도 넘게 이어지던 유행이 요즘은 심한 경우 1~2개월만 반짝하고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회사 성장의 결정적 계기였던 휴대폰 케이스 판매도 '단통법'시행 이후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자주 바꿔야 케이스 판매도 꾸준히 이어질 텐데, 소위 공짜 휴대폰이 사라지니 사람들이 예전처럼 자주 휴대폰을 바꾸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야심차게 만든 북유럽 스타일의 유아용품 자체 브랜드도 더 이상 트렌디하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2016년 가을 이후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아예 트렌드라는 것이 사라지게 되는 듯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트렌디한 브랜드의 론칭 이후 사업이 잘될 때에도 그의 양심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아이폰 케이스 제조 전문 브랜드로 론칭한 'I-face'나 북유럽 스타일 유아용품 브랜드인 '스칸디나 파파'등을 소비자들은 외국 브랜드인줄 알았다는 것. 이러한 소비자 인식이 신규 브랜드로서의 매출과 성장에는 분명 기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종린 사장과 기업의 자존심 측면에서는 안타깝기만 했다. 그때 결심한 것이 언젠가는 '한국적인 브랜드를 만들겠다', 그리고 '일시적인 유행을 타지 않는 지속 가능한 아이템으로 승부하겠다'는 두 가지 다짐이었다.
이것이 경영해오던 기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이종린 사장의 새로운 아이템이 바로 '한국의 전통'인 이유다. 이전 기업을 운영하던 때에도 그는 전통시장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품질은 좋은데 소비자가 외면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전통시장 리뉴얼 작업을 꾸준히 사회 공헌 활동으로 해왔던 그가 이제 본격적으로 '전통의 대중화, 현대화' 작업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전통'을 주제로 그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우리 전통주'의 현대화다. 지금은 수입 쌀이 넘쳐나고 우리 쌀이 남아도는 상황이다. 서구화된 식습관과 다양하게 발전한 외식문화 등으로 이미 쌀 소비량의 감소는 심각하다. 이와 같은 우리 농가의 문제도 해결할 뿐 아니라, 맥주, 양주, 와인 등 외국 술은 글로벌한 브랜드가 있는데 비해 우수한 우리 전통 술은 우리나라 사람도 외면하는 현실을 바꾸어보자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것이다.
대신 소비자들에게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현대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했다. 그리고 우리 전통 제품의 장점이자 단점인, 질은 좋지만 대량 생산이 불가능한 점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에도 박차를 가해 좋은 질의 제품을 쉽게 많이 만들어낼 수 있게 했다.
트렌드가 없는 것이 트랜드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종린 사장의 첫걸음이 드디어 내디뎌진 것이다. 증류주, 소주, 막걸리, 스파클링 소주 등 종류도 다양화해서 반드시 전통주 히트 상품을 만들어내겠다는 각오다.
이어서 '한복' 아이템도 준비하고 있다. 전통한복, 개량한복, 생활한복으로 진화해온 그동안의 시도에 훨씬 더 대중화되고 현대화된 디자인을 입히고 있다. 평소 입고 다녀도 전혀 낯설지 않으면서 전통의 깊이가 녹아들어 있는 옷을 개발 중이다. 또한, 전통차의 대중화, 현대화 작업도 이미 시작되었다. 영국의 TWG, 중국의 보이차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우리의 차'가 소비자에게 다가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전통의 대중화, 현대화 사업의 이익 일부를 우리 전통 문화예술계에 기부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메디슨브랜드의 매출 일부를 꾸준히 우리 문화재 복원, 무형 문화재 처우 개선, 신진 전통 공예 디자이너 지원, 전통 박물관 활성화 등에 기부할 계획이다. 아마도 그의 새로운 아이템, 우리 것의 현대화, 대중화가 성공한 다음에 이어질 아이템 또한 결코 트렌디하지 않을 것 같다.
복지보다 교감먼저
직원 300명이 넘는 강소기업을 경영했던 이종린 사장은 창립 7년 차 되던 해에 파격적인 혜택을 임직원에게 제공했다. 바로 주 4일 근무 시스템, 회사가 가파르게 성장한 것이 모두 구성원들의 덕분이라고 생각한 파격적인 아이디어였다.
반대하는 임직원들이 꽤 있었지만 그는 확신했다. 주 4일제를 실시하면 직원들의 애사심이 깊어지고 일의 능률과 집중력이 향상될 뿐만 아니라, 쉬는 날이 많아져 직원들의 개인적 자기계발에도 도움을 주어 결과적으로 회사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 4일제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주 4일제에 대한 임직원들의 생각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실시한 것이 잘못이었다. '복지'라는 기업의 원칙과 목표가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교감'하지 않고 사장이 홀로 제안한 복지 제도가 문제였던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창립 초기부터 함께한 임직원들에게는 주 4일제가 이 사장의 의도대로 다가간 반면, 입사 2년 미만의 임직원들에게는 '참 놀기 좋은 회사' 이상의 의미로 느껴지지 않았다.
주 3일의 쉬는 날에다 앞뒤로 휴가를 붙여 여행을 떠나버리는 직원들이 종종 생기는 바람에 업무가 마비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중요한 업무가 있는 시기에는 그러지 말아달라 부탁하니 돌아오는 대답은 '그럼 이게 무슨 주 4일제냐'라는 반응이었다. 오히려 이 제도를 시행하기 전보다 회사와 직원들과의 관계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다. 돌이켜보니 주 4일제를 반대했던 임직원의 대부분은 회사 창립 초기부터 동고동락했던 장기 근속자들이었다. 회사가 겪어온 그동안의 굴곡을 함께하지 않고 이미 커져버린 회사의 외형과 복지에 매력을 느끼고 입사한 직원들에게는 애사심이 깊어지는 효과보다 주어진 혜택을 누리는 데 치중하려는 부작용이 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그들은 이미 했던 것이다. 그리고 만약 상황이 나빠져 제도를 철회하거나 축소했을 때의 부작용 또한 염려되었던 것이다.
사장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교감하며 회사를 이끌어왔던 장기 근속자들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고, 회사 상황이 안 좋아지자 회사에 등을 돌리는 직원들이 늘었다. 주 4일제의 부작용, 급변하는 트렌드로 인한 매출 감소, 주식시장 상장 심사 탈락 등의 여러 이유로 결국 이종린 사장은 회사의 각 브랜드를 매각하고 정리했다.
회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는 기간은 지난 7년여를 돌이켜보는 소중한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처음의 마음과 달리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신입사원 면접과 퇴사하는 직원의 면담을 소홀히하게 되었던 점, 임직원들이 어떤 것에 힘들어하고 또 어떤 것에 기뻐하는지 가슴으로 느끼려 하지 않고 머리로만 예측해 복지라는 방패를 앞세워 위안 삼았던 점, 회사를 매각하고 정리하지 않았다면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힘겨웠지만,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는 이제 조그만 사무실 공간을 임대하여 네 명의 직원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했다. 출근하면 직원들과 함께 사무실 청소부터 한다. 회사가 커져도 사무실 청소는 위탁업체에 맡기지 않을 생각이다. 다섯 명이 일하기에 그리 좁은 공간이 아니지만, 따로 사장실을 마련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장 책상도 따로 없다. 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섞이기 위함이다.
수행비서까지 합하면 비서만 네 명이었던 이전 회사에서처럼 '사장 코스프레'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보고만 받는 사장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직원이 500명이 되어도 전 직원과 소통할 것이고, 사장이 꼭 해야할 일은 임원들에게 위임하지 않고 직접 할 생각이다.
기획실장의 처남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고, 수석 디자이너가 지난 주말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로부터 애프터 신청을 받은 이야기로 웃음꽃이 피는 지금의 하루하루, 그는 이러한 하루가 너무나 소중하며 행복하다.
사장 얼마면 할 수 있을까
이종린 사장이 강연을 하게 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바로 '창업자금은 얼마였으며, 그 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느냐'이다. 때로는 아예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이 좋은지, 은행 대출 혹은 부모님이나 지인들에게서 도움을 받는 것이 더 나은지를 질문받을 때도 있다.
그때마다 이 사장은 웬만하면 어렵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시작하라고 답한다. 그래야 그다음이 쉬워진다고 덧붙인다. 정부의 지원이나 은행으로부터의 대출, 가족과 지인의 도움은 나중에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그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도 그랬듯이 아이디어와 열정만 확실하면 얼마든지 주변 도움 없이 출발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힘들지만 스스로 시작하면, 그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 고민과 노력들이 사업을 이끌어가는 데 중요한 자양분이 될 것이고, 성장에 뒤따르게 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거라고 믿는다.
실제로 그가 그동안 해왔던 여섯 번의 사업 중 단 한 번도 대출이나 주변의 투자로 시작한 것이 없다.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 좀 더 쉽게 빠르게, 그리고 더 크게 일을 벌일 수는 있지만 무너지면 다시 시작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시작했다가 무너지면 주변 도움을 받아 일어날 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도움을 받아 시작했다 무너지면 다시 도움을 받기도, 스스로 일어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자체 브랜드 서너 개를 보유하고 있는 디자인 그룹을 경영해보고나니, 매출의 크기와 행복은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출이 아무리 커져도 느껴지는 보람과 비례하지는 않았다. 스스로가 만족하면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규모의 경제에 예민해지지 않기를, 작지만 보람을 느끼는 일에 매진하다보면, 매출은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최고가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그러기 위해 잃어야 하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다. 세계 1위, 국내 1위, 업계 1위가 되려고 하기 보다 그 분야에서 작지만 뚜렷한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회사를 만들 수 있다면 만족하기를 바란다. 작은 것에도 만족할 수 있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면 당신도 얼마든지 남의 도움 없이 '사장'할 수 있다.
박물관 안에만 있으면 무슨 소용일까
얼마 전 일본의 한 기업이 백자 도자기 디자인의 가습기를 출시하여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이 바로 그런 것이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을 현대화하여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한다.
장인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든 자개장이 좋은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너무 비싸고 오랜 시간이 걸리며 무엇보다 많이 만들어 낼 수가 없다.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을 가미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방식을 연구해야, 소비자들에게 적절한 가격으로 많은 양을 공급할 수 있다.
한복이 아름답다는 것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평소에 입기에는 좀 불편하고 어색하다는 것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복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한 제품을 개발해 가치와 의미를 살리면서 디자인, 편리성, 기능성까지 만족시키는 옷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선보이는 일도 준비 중이다. 한복에서 모티브를 얻은 글로벌 대중 패션 브랜드를 꿈꾸고 있다. 유니클로나 자라 같은 브랜드를 우리라고 왜 못 만들겠는가?
전통을 살리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중화, 현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박물관에 찾아가서 잠시 감탄을 연발한 후 평소에는 잊고 사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 문화의 장점들을 각종 생활용품, 전자제품, 사무용품 등에 접목시키는 일이 앞으로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다.
사실 당장의 돈만 좇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남들이 잘 손대지 않는 경쟁력 있는 블루오션이라는 장점도 있으며, 누군가는 해야 할 사명과 같은 일이기에 오늘도 이종린 사장은 우리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
메디슨브랜드
2017년 1월 정유년 새해에 창립한 디자인 전문 회사다. 메디슨브랜드는 브랜드를 보호하고 치료한다는 의미로, 현재 세대가 살아가면서 다음 세대에게 전해줄 유산을 우리 전통문화에서 찾고자 한다. 가장 한국적인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경험하여 미래에도 지속가능하게 한다는 경영 이념과 좋은 브랜드가 좋은 직장을 만들고 좋은 회사를 만든다는 경영 목표를 바탕으로 현재 전통주, 전통차, 코스메틱(기초 화장품, 향수), 패션(생활한복), 핸드백을 만들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 전통 문화가 지닌 장점을 다양한 생활용품과 전자제품, 사무용품 등에 접목시켜 사업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
현재 서울 연희동 사옥에서 다섯 명의 직원이 2017년 한 해 동안 '자기다움'이라는 슬로건과 '나눔'에 기반을 둔 기업 문화를 내세우며 한국적인 소재와 콘텐츠를 재해석하여 소비자와 미래 세대에게 가치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사장하자_ 서경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