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선거혁명'_ 허원순
아르헨티나는 페로니즘의 70년 수렁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70년간 아르헨티나 정치를 지배해온 페론주의가 막을 내렸다는 의미"(뉴욕타임스), "좌파가 득세하던 아르헨티나에서 균형을 찾게 됐다"(CNN),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지진"(월스트리트저널) 등 12년 만에 우파 후보가 당선된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선거에 대해 세계의 주류 언론들은 '포퓰리즘에 대한 심판'이란 평가를 내렸다. 새 대통령 당선자인 마우리시오 마크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56)에 대한 서방세계의 기대도 그만큼 크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병'은 깊고 포괄적이다.
페로니즘의 '위대한 유산'을 어떻게 감당해낼지가 마크리 정부에 주어진 당면 과제다. 수십 년 포퓰리즘의 후유증은 성장과 일자리를 지향하는 새 정부의 개혁에 적지 않은 난관이 될 것이다. 경제는 이미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 있다. 살인적인 물가상승률은 매년 30%를 오르내린다. 지난해 마이너스였던 성장률은 올해도 겨우 0%대 수준이다. 세계적인 자원 부국이 국가부도 상태에 빠지면서 아르헨티나의 페소의 가치도 근래 수직하락세를 보였다. 아르헨티나의 70년 시행착오에서 한국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페로니즘 70년 적폐 청산'외친 우파 대통령
"신은 진정 위대했다. 이 풍요롭고 넓은 아르헨티나 땅을 창조해낸 것이 그렇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사람들까지 만들어낸 건 신의 실수였다." 아르헨티나 사람들끼리도 하는 자조 섞인 우스개다. 1946년 군출신 후안 패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남미 최대의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퇴보일변도의 길을 걷게 된다. 페로니즘으로 20세기 인류 역사에 한 챕터를 남기기까지 아르헨티나인들은 반세기 이상을 포퓰리즘에 갇혀 살았다. 페로니즘의 결과는 나태와 궁핍, 의타심의 심화였다. 2015년 11월 23일 아르헨티나 대통령선거는 그런 아르헨티나의 종언을 의미한다.
아르헨티나의 경제와 국력은 페론과 밑바닥 출신 대중가수로 그의 재혼 부인인 에바 페론의 활동과 함께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리더 개인의 감정과 감성에 국가정책이 크게 좌우되는 국가사회주의 시스템의 발동이었다. 대령에서 정계로 투신해 2차대전 때까지 노동부 장관과 부통령을 지낸 그는 전쟁 중에 드러내놓고 이탈리아와 독일을 지지했다. 국가적으로 중립을 선언한 아르헨티나에선 이단아였다. 이 일로 공직에서 쫓겨났지만 그는 노동계급을 선동하면서 바로 집권했다. 동시에 이전에 지지했던 대로 파시즘과 나치즘을 잉태시킨 국가사회주의적 노선을 하나씩 밟기 시작했다. 대통령 부부가 대중과 직접 감성적으로 '소통'하면서 관료, 언론, 학계, 연구기관 등 중간지대의 전문가 그룹이 사회적으로 설 자리가 없어져버린 것도 페론주의 아르헨티나의 주요한 특징이다.
시장경제는 자연스럽게 무너져갔고, 최근까지도 개방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인 것도 이런 전통에서였다. 늘어난 것은 미래를 내다보지 않은 무분별, 무차별적인 복지였다. 생활보조금 등 각종 보조금과 정부지급 연금은 계속 늘어나 지금은 정부 예산의 20%가량을 차지할 정도다. 국가부도상황을 수차례 되풀이하면서 정부 재정이 거덜난 배경이다.
이번에 물러나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와 바로 전임자인 그녀의 남편 네스토르 카르치네르 집권기에 이 나라 경제는 특히 더 피폐해졌다. 2003년부터 2015년까지 12년간 계속된 좌파 부부 대통령 시기의 정책들은 경제지표들을 놀라울 정도로 악화시켰다. 페론이 시동 건 포퓰리즘의 궤적들이 한층 깊고 짙어진 것이다.
2007년 사별한 남편을 뒤이은 현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집권 직후 정부가 지급하는 연금과 봉급을 두 배로 올려버렸다. 정부에서 연금이나 봉급을 받는 국민이 40%에 달한다. 저소득층엔 매월 일정액이 지급됐다. 모든 학생들에게 최신 모델의 넷북을 무상 지급한 것은 '디지털 격차를 줄이자'는 구호에 따른 것이었다. 그 결과 2015년 재정적자는 GDP의 6%를 웃돌 전망이다. 최근 복지 확대로 한국도 재정 적자가 계속 커지면서 2016년엔 37조 원으로 최고에 달하지만 그래도 GDP 대비 2.3% 수준이다. 인기영합 정책이 전방위로 이어지면서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5%로 떨어졌다. 2015년에도 0.4%에 머무르고 있다.
전 세계가 디플레를 걱정하는 와중에도 아르헨티나는 살인적인 인플레로 고통받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2007년 페르난데스 집권 후 한 두 해를 빼고 물가상승률이 매년 25%를 웃돌았다. 2008년엔 상업부 차관이 국립통계원에 물가 통계를 조작하도록 지시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IMF는 매년 10% 안팎의 수치를 내놓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공식 인플레이션 통계를 전혀 신뢰하지 않아 민간 기관의 인플레이션 집계를 인용할 정도다. 하지만 정부는 국제 통계표준에 맞추지 않으면 국제기구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IMF의 경고를 무시한 채 민간 컨설팅기관의 실질물가 발표에 고액의 벌금 부과로 재갈을 물리기도 했다. 마이너스 성장을 한 2014년 물가상승률은 최소 30%, 최대 38.5%에 달한다는 게 민간 전문기관들의 분석이다. 2015년에도 25%는 된다고 한다.
'환율, 개방 경제, 보조금 철폐' 공약 이행 만만찮을 듯
치솟는 물가는 과도한 공공지출 외에 억지로 틀어막은 환율정책 탓도 컸다. 2011년 재선된 페르난데스는 강력한 외환규제로 달러 환율의 상승을 억지로 눌렀다. 당장 이듬해인 2012년부터 달러화 구매가 힘들 지경이 됐고, 달러로 해외송금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수입업체와 다국적 기업들의 불만도 극에 달했다.
2014년 후반 외채협상이 실패하면서 사실상 국가디폴트에 처했을 때 달러 대 패소의 공식 환율은 1 대 8 정도였지만 암시장에서는 1 대 16으로 치솟았다. 지금(2015년 11월 말)도 공식으로는 달러당 9.7페소 수준이지만 암시장에서는 15페소에 거래된다. 물가상승을 막겠다며 인위적으로 페소화 가치를 높게 유지한 결과가 달러의 고갈과 만성화된 경제 위기였다. YS정부 말기 외환위기 직전 과도하게 고평가됐던 원,달러 환율을 연상시킨다. 새 대통령 마크리의 공약에는 환율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도 분명히 들어 있다.
개방 경제와 반대로 간 것은 환율 정책만이 아니었다. 고관세로 강력한 수입규제들이 더해진 것도, 아르헨티나 최대 석유가스회사인 YPF의 국유화도 페르난데스 재집권 이후 단행된 조치였다. 스페인계 렙솔의 자회사인 YEP이 국유화되자 S&P는 2012년 4월 24일 아르헨티나의 국가신용 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즉각 내렸고, 급속한 달러 이탈로 외채 지급불능 사태에 처하게 됐다.
수입만 저지한 게 아니라 수출억제 정책도 병행했다. 내수공급 부족과 인플레이션을 막겠다며 정부는 농산물에 수출세 44% 부과안까지 발표했다가 농민들의 파업과 상원의 법안부결로 철회한 적도 있다. 자유시장과 개방 경제를 거부하며 복지 확대로 달려온 결과는 쓰디썼다. 재정은 고갈됐고, 국가부도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번 선거의 의미는 명확하다. 아르헨티나 국민이 대책없는 막연한 복지보다 결국 성장과 일자리를 택했다는 사실이다. "(향후 10년간) 일자리 200만 개 창출로 경제를 회생시키겠다"며 '바꾸자'를 외친 마크리의 공약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한때 남미 최대의 부국으로 1930~1940년대만 해도 세계 4~5위 경제대국이던 아르헨티나가 70년 시행착오 끝에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회라기엔 위기의 골이 너무 깊다. 음영 짙은 페로니즘의 잔재를 어떻게 극복해낼지가 마크리 정부에 주어진 힘겨운 과제다. 페소화 가치를 시장에 맡겨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고 수출 경쟁력도 키우겠다는 것은 그 시작일 뿐이다. 재정 적자에서 벗어나자면 정부 지출의 과감한 삭감이 필요하지만 보조금에 중독된 서민 중산층이 과연 협력할지도 변수다. 국유화를 되돌리고, 수출입세를 다시 인하하고, 통관규제 완화등 반개방 정책도 하나하나 철폐할 때 외국 자본의 투자도 살아날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경제를 되살릴 길도 없다. 막대한 자원대국이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할 정도로 국내 산업은 빈약하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교통과 전기, 가스등 에너지에까지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마크리의 공약대로 이런 것도 하나씩 정상화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아직 의회는 장악하지 못했다. 주변 환경도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남미 12개국 중 파라과이와 콜롬비아를 제외한 9개국에 좌파정권이 남아 주변의 '좌파 벨트'가 그대로다. '금수저'를 물고 난 건설 재벌의 아들로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과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공부한 이 기업인 출신이 과연 아르헨티나를 70년 적폐에서 구해낼까. 명문 프로축구팀 보카주니어스 구단주답게 신아르헨티나를 경영해낼 것인가. 2015년 12월 3일 발행
시대의 질문에 답하다_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