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속에 핀 연꽃처럼_ 퇴우정념
당신은 이곳에서 새롭게 보고 새롭게 안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지견이라 합니다. 지견을 얻은 당신은 산문을 나설 때 많은 다짐을 할 것입니다. '그래, 이제부터 이렇게 생각해야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행동해야지' 하고 굳게 다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삶의 현장에 뛰어들면 생각만큼 쉽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또 다시 부질없는 욕심을 부리고, 불쑥 불쑥 화를 내고, 난관에 부딪치면 어쩔 줄 몰라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곳에서 보고 안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당신이 이곳에서 얻은 지견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보고 안 것이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을까요? 당신이 이곳에서 얻은 지견은 삶에 매우 유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기 어려울까요? 아직은 그 지견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영가현각대사(665~713)가 지은 <증도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욕망 속에서 선정을 실천하는 지견의 힘이라서
불꽃 속에서 핀 연꽃처럼 끝내 시들지 않으리라
욕망의 세계 한가운데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기란 본래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고, 흐르는 강물과 같음을 분명히 보고 분명히 아는 반야지견의 힘이 강력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일을 겪는 부산한 삶의 현장에서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란 본래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생각과 감정의 바탕이 맑고 깨끗한 거울과 같고, 투명한 보배구슬과 같고, 텅 빈 허공과 같음 분명히 보고 분명히 아는 반야지견의 힘이 강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번뇌는 한겨울의 눈과 같습니다. 그 눈은 오랜 세월 쌓인 것입니다. 게다가 그늘진 곳에 쌓여 볕을 본 적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얼음처럼 단단하게 굳어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이곳에서 얻은 지견은 봄볕과 같고, 봄바람과 같습니다. 하지만 봄이 왔다고 겨울 내내 쌓인 눈이 단박에 녹는 것은 아닙니다. 그 따스함으로 한참은 공을 들여야만 합니다. 성급하게 마음먹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녹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녹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육조단경>에서 "천년의 어둠도 등불 하나면 단박에 사라진다"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음 속에서 보낸 세월이 아무리 오래더라도 깨달음의 등불 하나면 한순간에 밝아질 수 있습니다. <주자어류>에서 "따뜻한 기운이 발생하면 쇠와 돌도 뚫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동안의 탐욕의 습관, 분노의 습관이 아무리 단단하더라도 맑고 깨끗한 마음자리를 주시하다보면 절로 온화한 기운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 기운이 능히 탐욕과 분노를 없앤다는 것을 믿고, 그 기운의 힘을 키워가야 합니다.
설령 당신이 이곳에서 깜짝 놀랄 만큼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해도 아직은 아닙니다. 지견은 번뇌를 자르는 칼입니다. 칼의 유용성은 전장에 서봐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번쩍번쩍 빛이 나고 장식이 멋들어지다 해도 적을 베지 못하는 칼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견도 마찬가지입니다. 꽤 그럴싸하게 생각되고 유창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해도 정작 삶의 현장에서 번뇌를 베어내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삶의 현장은 당신의 지견을 시험해볼 좋은 기회입니다. 번뇌를 제대로 잘라내지 못하고 장애에 부딪혀 꺾인다면, 칼을 불구덩이에 담금질하고 숫돌에 연마하듯 당신의 지견을 더욱 단단하고 날카롭게 벼려야 합니다. 수없이 부딪쳐보고 수없이 다시 연마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지견이 어떤 번뇌도 단박에 자를 수 있는 금강검, 끝내 시들지 않는 불꽃 속의 연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고난과 장애 속에서 지견의 힘을 키웁시다.
출가학교_ 퇴우정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