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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후 얻은 진정한 사랑_ 스티브 김

정정진 2016. 10. 22. 11:03


일과 가정의 행복을 동시에!


간혹 사람들은 내가 어려움 속에서 성공만 경험한 것으로 오해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도 큰 실패를 경험하였다. 미국으로 이민 가기 직전 한국에서 선을 봐 만났던 전 아내와 이혼을 한 것이다. 두 자녀와 헤어지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피할 수 없었던 이혼은 큰 상처를 남겼다.


실패 후 얻은 진정한 사랑


첫 결혼에 실패한 후에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 로빈은 한국에서 유학을 와 자리를 잡은 재미교포 변호사였다. 그녀는 한국에서 서울여상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방송통신대학 법학과와 외대 영어과를 마쳤다. 그리고 미국에 유학을 와 법과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변호사 자격증을 얻었다. 그 후 L.A. 의 로펌에서 일하다 캘리포니아 소재 은행 변호사로 스카우트되는 등 성공한 커리어 우먼의 삶을 살고 있었다.


로빈이 은행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 마침 자일랜의 소속 변호사가 그만두는 바람에 변호사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는 이왕이면 한국인 변호사를 채용하고 싶었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믿을 만했고, 또 이왕이면 한국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국인 친구로부터 로빈을 소개받았다. 사실 나는 그 친구에게 주변에 교포 변호사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해놨던 터였다. 친구는 좋은 변호사가 있으면 연락해주겠다고 하더니 예상외로 빨리 연락이 왔다. 우연히 지인 아들의 돌잔치에 갔다가 마침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그녀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로빈을 만났다. 로빈이 자일랜으로 인터뷰 하러 온 날은 토요일이었다. 나는 반바지 차림으로 직원들과 점심으로 피자를 먹으며 회의 중이었다.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이 반바지에 피자를 먹는 모습에 그녀는 다소 당황하는 듯했다. 로빈은 너무 어려 보였다. 첫 인상만 보자면 일을 제대로 해낼까 싶었다. 그러나 면접에서 임원진의 다소 까다로운 질문에도 야무지게 대답하는 걸 보니 채용해도 될 듯싶었다.


로빈은 회사의 각종 법률적인 문제와 계약서들을 담당하는 직원으로 채용됐다. 사실 채용하면서도 나는 여러모로 걱정스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 직원이 일을 잘해줘야 굳이 한국인을 채용한 내 체면이 서는 까닭이다. 또한 홀로 미국에서 고군분투하는 로빈이 일을 잘해줘 우리 회사에서 좋은 기회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로빈이 입사한 뒤 6개월 정도 지날 때까지도 우리는 직장 동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로빈은 사장인 나를 어려워했고, 나는 나대로 싱글인 로빈에게 말을 붙이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문득 시계를 보니 9시가 다 되어 있었다. 이제는 일어나야겠다 싶어 사무실을 나왔다. 복도를 걸어가는데 로빈 방에 불이 켜져 있지 않은가. 미국인들은 평일에는 무척 열심히 일하지만 금요일만 되면 정시에 퇴근한다. 금요일 저녁부터는 철저하게 개인생활을 즐기는 게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금요일 밤 9시까지 불 켜진 방이 있으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노크하고 들어갔더니 로빈이 그때까지도 일을 하고 있었다.


"아니 금요일 밤까지 일하면 데이트는 도대체 언제 해요?"


그게 내가 로빈에게 처음으로 해본 개인적인 말이었다.

로빈은 그날이 금요일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늦은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고 말한 뒤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비로소 로빈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자라 왔는지 제대로 듣게 됐다.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상고를 갈 수 밖에 없었고, 커리어 우먼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미국에 유학을 왔다며 3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싱글로 살고 있지만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여러모로 동질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그날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 '여자가 이렇게 편하게 느껴질 수 있구나'하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이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장 갔다 돌아오는데 비행기 시간을 잘못 계산하였다. 오후 2시 반 비행기라 생각하고 공항에 갔는데 오전 10시 반 비행기였다. 비행기는 이미 4시간 전에 떠나버렸고 그날은 더 이상 비행기가 없었다. 졸지에 귀국일이 하루 늦춰져 버렸다. 다음 날 오전 10시 반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그날 호텔에 돌아가서 로빈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는 회사 이야기와 일, 출장 이야기 등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날 밤새 통화하면서 내일 비행기로 돌아가자마자 바로 그녀에게 청혼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1997년 말경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가정의 소중한 의미


나는 로빈과의 결혼으로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 이전에 나는 인생에서 오직 일과 성공밖에 알지 못했다. 하지만 로빈과 결혼한 후 행복한 가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게 결혼 문제를 의논하는 젊은이들에게 첫째,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선택하라 조언하곤 한다. 내가 두 번의 결혼생활을 통해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일에만 매달리면서 개인적인 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인생의 깊이를 모르는 행동이라고 말해준다.


결혼과 가정은 인생의 행복을 찾는 데에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함께 있어서 마음이 편안한 배우자, 대화가 잘 통하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첫 번째 결혼 때 그런 중요한 기준을 알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 모두 힘들었다. 가정에서 안식을 찾지 못하면서 나는 일을 가정으로부터의 도피처로 삼고 일에만 매달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혀서 시간을 끌지 않고 해결했다면, 행복하게 되었든가 헤어지더라도 서로에게 상처가 덜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결단력 있게 갈등을 풀기보다는 회사와 일 속으로 도망가는 편을 택했다.


내가 아픈 과거의 첫 결혼의 실패이야기를 꺼내 놓는 이유는 젊은 사람들이 나 같은 시행착오나 실패를 반복하지 말라는 뜻에서다. 비록 내게는 아픈 기억이고 상처이지만 그 경험이 누군가에게 교훈이 되고 예방주사가 된다면 그 또한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 개인적으로 가족이나 가정의 문제 때문에 일에만 매달리면서 '인생의 행복은 별거 없어. 이렇게 살다 가지, 뭐'라는 마음으로 자포자기하며 일에만 매달리고 있지 않은가. 일은 개인적인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다. 그런 방식은 결국에는 개인을 위해서도 일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고 영혼이 피폐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성공을 할 수 있다. 일과 가정의 행복은 병행될 수 있고, 병행되어야 마땅하다.


꿈, 희망, 미래_ 스티브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