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국 봉쇄와 사드_ 이재봉
올 여름은 유난히 후텁지근했다. 식을 줄 모르는 찜통더위와 열대야에 사드배치 논란이 뜨겁게 겹친 탓이다. 말썽 많은 사드, 왜 필요하고 누구를 위한 것이며 어떻게 해결할지 차분하게 짚어보자.
1. 사드가 무엇인가?
사드는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의 약자인데, '마지막 단계에서 높은 곳의 지역을 방어'한다는 뜻일 지니고 있다. 상대방의 공격 미사일이 높이 치솟아 멀리 날아온 뒤 포물선을 그리며 내려올 때 지상으로부터 약 100km 안팎의 높은 공중에서 쏘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대충 얘기하자면, 자동차는 시속 100km로 달리고, 여객기는 그 열배인 1000km로 날아가며, 전투기는 그 두 배인 2000km로 날아간다. 미사일은 아무리 굼벵이라도 그 세 배인 6000km로 날아가고 이 가운데 극초음속 미사일은 그 두 배인 12000km로 날아갈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사드는 1분에 100~200km의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100km 정도 높은 곳에서 격추시키겠다는 방어망이다. 기상천외한 발상과 최첨단 군사과학기술이 결합된 것이랄 수 있다.
2. 사드가 정말 필요한가?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기 위해 사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남북 사이에 전쟁이 터지더라도 북한이 100km 이상 높이 올라가 1000km이상 멀리 날아가는 중거리 미사일을 쏠 필요가 있을지 궁금하다.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전라남도 남쪽 끝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면 300~500km 단거리 미사일로도 경상도, 전라도를 포함한 남한 전역을 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 인구의 거의 절반이 살고 있는 서울과 경기도 그리고 강원도 지역은 단거리 미사일도 필요 없이 50~60km 날아가는 장거리 대포만으로 불바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드는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남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도 어렵고 그럴 목적도 아니라는 뜻이다.
만에 하나 사드가 북한 핵미사일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게 될지라도 북한이 남한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거나 항복할까. 오히려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미사일 등 사드를 무력화할 수 있는 새로운 핵미사일을 개발하지 않겠는가. 결국 국민의 안전보장보다는 불안을, 그리고 남북 사이의 평화보다는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3. 사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부는 남한 국민과 주한미군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사드가 분명히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2010년대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은 '아시아로의 회귀' 또는 '아시아 재균형'이다. 중국이 1970년대 말부터 개혁,개방을 시작해 2010년대까지 30년 이상 매년 10% 안팎의 고도성장을 하면서 미국에 맞설 수 있는 '세력 균형'을 이루려 하자, 미국이 아시아로 '되돌아와' 중국을 '다시' 제압하여 '세력 재균형'을 이루겠다는 내용이다. 서서히 쇠퇴하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이 급속하게 떠오르며 패권을 넘보려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정책이란 말이다.
실제로 중국은 해양 전력을 본격적으로 증강시키며 대만해협을 포함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개입을 무력화하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중국과 가까운 바다에서는 미국 함대의 접근을 막고, 조금 더 먼 바다에서는 미국 함대의 작전을 방해하겠다는 것으로, '개입반대 및 지역거부' 전략이다. 2013년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고, 2014년부터 남중국해 난사군도 주변에 인공 섬을 건설했던 배경이다.
그러자 미국은 중국의 도전을 물리치고 패권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전략지침'과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만들었다. 아시아 동맹국들과 합동작전을 수행하고, 잠수함을 통한 해저 능력을 유지하며, 새로운 스텔스 폭격기를 개발하고, 미사일방어 능력을 개선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에 따라 일본, 남한, 필리핀, 호주 등과는 군사동맹을 강화하며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등과는 군사협력을 강화해왔다. 경제적으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해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이 중화경제권에 흡수되는 것을 막고, 군사적으로는 전체 군사력의 60%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배치하기로 했다. 결국 일본의 무력 증강 및 해외파병을 위한 헌법개정을 부추기고, 한일 간의 협력을 유도하며, 남한에 사드를 배치해 주한미군을 강화하려는 것도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일환인 것이다.
4. 사드배치 결정과 발표를 서두른 이유는 무엇인가?
사드를 남한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는 정부의 7월 8일 발표는 불의의 습격 같았다. 그렇게 빨리 결정하고 쉽게 발표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결정을 미루고, 중국의 반발을 고려해 은밀하게 결정하더라도 시간을 끌며 마지막 순간에 발표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기야 그 무렵엔 내 예상 밖의 일들이 나라 안팎에서 터졌다. 4월 총선의 결과,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돌풍,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등.
크게 세 가지 이유나 배경을 떠올릴 수 있다. 첫째, 미국의 압력이다. 미국과 남한 사이의, 특히 군사와 외교 분야의 수직적 관계에서는 미국의 압력을 뿌리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울 것이다. 60~70만 병력에 대한 군사작전권까지 2~3만 주한미군에게 맡겨놓은 상황에서, 미국이 강요하면 거부할 수 있겠는가. 남한 정부는 2016년 초까지도, 미국의 사드배치 요청도 없었고 미국과 협의한 적도 없다고 발표했지만, 미국정부는 늦어도 2014년 5월부터 남한에 사드를 배치한 뒤 남한이 구매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부지 조사를 하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중국에 대한 견제와 봉쇄를 강화해온 미국이 남한을 강하게 압박했을 테고, 박근혜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2015년 12월에도 미국의 압력에 따라 일본과의 굴욕적 위안부 협상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말이다.
둘째, 시진핑에 대한 박근혜의 불만과 오기가 작동했으리라 생각한다. 2015년 9월 박근혜는 중국의 항일승전 7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 중국과 남한의 관계를 진전시키며 시진핑과의 우의를 다짐으로써 북한을 고립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북한은 2016년 1월 수소폭탄 개발로 보이는 핵실험을 실시하고, 2월엔 장거리 미사일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남한 쪽의 피해가 훨씬 큰 개성공단 폐쇄까지 결정하며 북한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3월엔 유엔 안보리에서 초강력 대북제재를 결의하는 데 앞장섰고, 5~6월엔 대통령과 외교부장관이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까지 날아가 북한을 고립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북한 붕괴를 외교 목표로 삼은 듯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중국이 대북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자, 박근혜가 시진핑에 대해 배신감을 맛보며 불만과 분노를 품고 오기를 부린 게 사드배치 결정과 발표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중국이나 시진핑에 관해 모르는 게 아니라 외교나 국제관계의 본질에 무지한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분명히 반대한다. 미국이 일본과 남한을 아무리 감싸고 지지해도 두 나라의 핵무기 개발을 용인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구나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빌미로 중국 주위에 군사력을 증강시키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을 전혀 지지할 수 없다. 이와 아울러 중국이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 경제제재를 가할 수는 있어도 북한 붕괴까지 방치하거나 추구할 수는 없다. 북한 붕괴는 중국 안보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북한체제가 마음에 들거나 북한 지도자들이 좋아서가 아니라 중국 자국의 안보를 위해 북한이 붕괴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는 뜻이다. 남한의 존재가 태평양 건너 10000km나 떨어진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과, 북한의 존재가 압록강과 두만강을 끼고 1500km나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라도 할 수 있겠는가.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이와 입술처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이런 터에 중국이 북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경제제재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불만과 오기를 표출한다면 그야말로 국제관계에 대한 무지와 억지다.
또한 북중 관계가 아무리 가까워도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북한의 자주성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나 압력은 미국이 남한에 행사해온 영향력이나 압력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 군사와 외교 분야에서 북한의 자주성 및 남한의 종속성과 관련해, 미국 내에서조차 "북한은 존경할 만한 적이요 남한은 경멸할 만한 동맹이다", "남한은 미국의 51번째 주"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가. 이런 터에 미국에 대한 남한의 의존성이나 종속성을 기준으로 삼아서 중국더러 북한에 영향력이나 압력을 행사해주길 기대하는 것은 북한이나 북중 관계에 대한 무지의 소치다. 특히 미국 때문에 시작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중국더러 막으라고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은 염치도 없고 정당성도 없다.
셋째, 박근혜 정부의 비리와 실정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사드배치 결정 발표를 서둘렀을 수도 있다. 마침 7월 초엔 관치금융의 폐해를 드러낸 청와대 서별관회의와 세월호 관련 KBS 보도에 대한 청와대의 압력 등을 놓고 청문회를 실시해야 한다는 야당과 언론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었다. 진경준 검사장의 비리에 대한 특검 실시 주장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사드배치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온갖 비리와 실정을 말끔하게 묻어버렸다. 게다가 북한과 관련된 안보문제는 과장하거나 조작하더라도 진보층의 분열과 보수층의 결집을 이끌 수 있는 특효약이다.
5. 사드가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 아닌가?
맞다. '지역방어'나 '미사일방어'라는 용어에 나타나듯 상대방의 미사일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문제가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사드의 일부분인 레이더 때문이다. 레이더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인체에 얼마나 해로운지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안보를 위해 꼭 필요하다면 인체에 해롭더라도 경비를 좀더 들여 사람이 살지 않는 적절한 곳을 찾아 배치하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레이더의 탐지 거리에 있다.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가까이는 1000km, 멀리는 2000km까지 탐지할 수 있다고 한다. 성주에서 서해 건너 또는 백두산 너머의 중국 동북부 미사일기지까지는 대부분 1000km 이내이고, 두만강과 동해 건너 러시아 극동지역은 1000km 남짓이다. 방어를 빌미로 레이더를 통해 중국이나 러시아의 군사지역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까지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다.
둘째, 미사일방어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선제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은 적대적으로 대치하면서도 상대방을 핵미사일로 공격할 수 없었다. 상대방 역시 핵미사일로 보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서다. 서로가 상대방을 확실하게 파멸시킬 수 있다는 '상호확증파괴' 상태 또는 '공포의 균형'을 통해 선제공격을 억제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두 나라는 1972년 탄도탄 요격미사일 제한 조약(ABM)을 맺었다. 상대방의 핵미사일(탄도탄)을 격추시키는 미사일(요격미사일)의 개발 및 배치를 제한하자는 내용이었다. 상대방의 보복을 피할 수 있는 방어용 미사일을 개발하게 되면 끊임없는 군비 증강을 부르기도 하고 선제공격의 유혹에 빠지기도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ABM조약을 미국이 2002년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요격미사일을 개발하면서 미사일방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나아가 미국은 2002년 <핵 태세 검토>라는 비밀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중국, 러시아, 북한, 이라크, 이란, 리비아, 시리아 등 7개 나라에 대해서는 "핵무기 사용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이른바 선제공격론이다. 따라서 사드는 순수한 방어용이 아니라 보복의 두려움 없이 선제공격을 하거나 상대방의 공격을 막으며 보복공격을 하기 위한 방어체제인 것이다.
6. 그래도 사드를 남한에 배치했을 때를 상정해본다면?
적어도 세 가지 심각한 폐해를 예상할 수 있다. 첫째, 중국이 무역이나 관광 분야에서 제재를 가할 수 있다. 중국은 2004년부터 미국을 제치고 남한의 제1무역 상대국이 되었다. 2009년부터는 중국과의 무역량이 미국과의 무역량보다 두 배 이상 많아졌다. 구체적으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최근 3년간 한중 교역액은 연평균 2306억 달러로, 한미 교역액 1110억 달러나 한일 교역액 841억 달러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3년간 연평균 무역흑자는 중국으로부터 550억 달러, 미국으로부터 238억 달러, 일본으로부터 -224억 달러를 기록했으니 그 비중의 차이는 더 크다. 더 중요한 것은 최근 3년간 우리나라 연평균 무역흑자 605억 달러의 무려 91%가 중국에서 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관광분야에서도 비슷하다. 서울이나 제주 등에서 마주치는 외국인 관광객의 거의 절반이 중국인들 아닌가.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5년 외국인 관광객 1323만 명 가운데 598만 명이 중국에서 왔다. 45%가 넘는다. 이렇게 중국을 통해 먹고사는 마당에 사드 때문에 제재나 보복을 당한다면 어떻게 될지 짐작해보기 바란다.
둘째, 만에 하나 미국과 중국 사이에 무력충돌이 빚어진다면 남한이 애꿎게 불바다가 될 수 있다. 두 나라가 머지않아 세계 패권을 놓고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요즘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남중국해나 동중국해 근처에서 무력충돌을 빚을 가능성은 적지 않다. 그럴 경우 중국이 가장 먼저 미사일로 공격하게 될 대상 가운데 하나는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사드가 배치된 곳 아니겠는가.
셋째, 설사 두 강대국 사이의 갈등과 분쟁에 따른 불똥이 직접 남한으로 튀지 않더라도 남한과 중국의 관계 및 남한과 러시아의 관계가 악화할 게 뻔하다. 이미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듯 미국-일본-남한이 한편이 되고, 중국-러시아-북한이 다른 편이 되어 한반도를 중심으로 새로운 냉전체제가 들어설 수도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더 멀어지게 될 것이란 말이다.
7. 궁극적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위협을 없애려면?
방안은 간단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요구한 사드배치의 대안은 의외로 쉽게 마련할 수 있다. 사드배치처럼 큰돈이 들어가지도 않고, 중국이나 러시아까지 적으로 만들 일도 없다. 북한이 도발하도록 자극하거나 부추기는 대신, 지속적으로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고 발사할 필요가 없도록 이끄는 것이다.
여기서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첫째, 미국은 늦어도 1958년 초부터 남한에 수많은 핵무기를 배치했다. 1991년 철수했다고 발표했지만 핵무기를 실은 미국 잠수함은 한반도 주변 해역을 여전히 자유롭게 들락거린다. 육상 핵무기는 없어도 해상 핵무기는 많은 셈이랄까. 그리고 남한에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다. 핵우산이란 남한이 만약 다른 나라로부터 핵무기로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핵무기로 보복해준다는 것이다. 요컨대 남한은 보복용 핵무기를 무수하게 갖고 있다. 이와 달리 소련이나 중국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북한에 핵무기를 배치한 적도 없고 핵우산을 제공한 적도 없다.
둘째, 미국은 남한과 군사동맹을 맺고 남한에 병력을 주둔시키며 해마다 몇 차례씩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그러나 중국이나 러시아는 북한과 군사동맹을 맺지 않고 북한에 병력을 주둔시키지 않으며 단 한 번도 소규모라도 합동 군사훈련을 벌이지 않는다. 여기서 북한에 위협적인 미국과 남한의 군사훈련은 말 그대로 언제나 '훈련'이나 '연례행사'로 간주되고, 미국과 남한에 위협적인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는 항상 '도발'로 치부된다.
셋째, 냉전이 끝나자 소련과 중국은 남한과 국교를 정상화했지만, 미국과 일본은 지금까지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를 거부해오고 있다.
넷째, 남한은 북한보다 짧아도 20년 이상 적어도 다섯 배 많게 군사비를 써왔다. 남한은 국내총생산의 3% 안팎을 국방비로 쓰지만, 북한은 15% 정도나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워낙 폐쇄적이라 이런 통계자료가 공개되지 않아 군비가 GDP의 20%를 넘을 것이란 주장도 제기되는데, 아무튼 전시가 아닌 평시에 GDP의 10% 이상을 군비로 쓴다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그럼에도 북한의 GDP가 남한의 40분의 1 수준이기 때문에 남한의 국방비는 북한보다 5~10배 많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북한은 서로 침략하지 말자는 불가침조약이나 전쟁을 완전히 끝내자는 종전, 평화협정을 맺자고 줄기차게 요구해왔지만, 미국과 남한은 휴전, 정전협정을 고수해야 한다며 한사코 거부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먼저 또는 일방적으로 핵실험을 포기하고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할까. 미국과 남한이 합동 군사훈련을 중지하면 북한은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하겠다고 제안해도, 이마저 미국과 남한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잖은가.
바로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일환으로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주한미군 유지 및 강화의 명분을 갖기 위해서는 북한이라는 '불량국가' 나 '악마'가 필요하다. 거꾸로 말하면 북미 관계나 남북관계가 나빠져야 주한미군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강화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중국을 쉽게 봉쇄하며 포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북미관계나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한반도에 불가침조약이나 종전,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주한미군의 존재이유나 명분이 약해지거나 사라지며, 그러면 미국의 중국 견제 및 봉쇄에 구멍이 뚫리게 된다. 미국과 남한이 북한의 평화협정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합동 군사훈련을 강화하며 북한을 자극하고 도발하도록 부추기는 배경이다.
결론 삼아 정리하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위협을 궁극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북한이 그럴 명분이나 필요성을 갖지 않도록 이끌면 된다. 가장 바람직하고 이루기 쉬운 방안 가운데 하나가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하루아침에 핵무기를 폐기하고 주한미군이 당장 철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할 만큼 어렵다. 따라서 북한은 자신의 안보를 위해 당분간 핵무기를 보유하되 더이상 개발하지 않고, 미국 역시 자신의 국익과 남한의 안보를 위해 당분간 주한미군을 유지하되 더이상 군비 증강과 훈련 강화를 하지 않기로 하면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되지 않겠는가. 나아가 5년이든 10년이든 서로 간에 신뢰가 쌓이고 교류와 협력이 증진되면 북한의 핵무기 완전 폐기와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협상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마저도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란 점이다. 중국에 대한 견제와 봉쇄를 강화해야 하는 터에 한반도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훨씬 가까운 중국 쪽으로 기울어지리라 예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절실하게 필요한 게 남한의 정치력과 외교력이다. 미국을 추종하며 분단 고착을 통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권보다, 미국을 설득하며 자주성을 갖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추구할 수 있는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남한 국민의 현명한 선택이 최상의 해답이다.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녹색평론, 150호<2016년 9~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