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발

새로운 '류'로 승부하라_ 조훈현

정정진 2016. 4. 27. 09:32


창호를 제자로 받아들였을 때 내게는 이 아이가 세계적인 기사가 되리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내 눈에 창호는 오히려 계륵처럼 느껴졌다. 분명 바둑은 강했지만 천재성은 보이지 않았다. 외모도 둔하고 말도 어눌하고, 심지어 금방 두었던 바둑을 복기하는 것조차도 서툴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기이한 느낌이 있었다. 그 알 수 없는 느낌에 이끌려 창호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데리고 살아보니 창호는 나와 완전히 다른 '류'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빠르고 날렵하고 다소 공격적인 바둑을 추구하는 나에 비해 창호의 바둑은 느리지만 두텁고 묵직했다. 이는 그의 성실하고 온화한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우리 집에 있는 6년 동안 큰소리 한 번 내지도 않고 말썽 한 번 부리지도 않고 묵묵히 바둑에만 정진한 아이답게, 그의 바둑은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마치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가듯이 그렇게 발전을 했다.


한번은 창호의 대국을 복기하고 있는데, 녀석이 둘 수 있는 좋은 수가 있는데도 그걸 두지 않고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왜 그 수를 두지 않았는지 물어보았다.


"그쪽은 강하지만 역전당할 위험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택한 길로 가면 100번 중에 100번을 반집이라도 이길 수 있어요."


비슷한 바둑이 계속 반복되었다. 하루는 복기 중에 창호가 너무 답답한 수만 놓고 있는 것 같아 한마디 했다.


"그 길도 나쁘지는 않아. 하지만 이 길이 더 간명하지 않을까?"


창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판단을 접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 보통 스승과 제자라면 닮아갈 법도 한데, 창호와 나는 뼛속부터 달랐다. 나는 날쎄다. 그는 느리다. 나는 공격한다. 그는 피한다. 나는 도박을 한다. 하지만 창호는 안전한 길을 택한다.


바로 이러한 '다름'이 나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1988년 28기 최고위전, 이창호가 고수들을 차례로 평정하고 내 앞에 앉았다. 사상 최초의 사제 대결이었다. 이 대결에서 나는 타이틀을 방어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창호에게 1패를 당했다. 공식 대국에서 창호에게 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첫 패배가 불과 반집 차였다. 반집. 이건 바둑판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바둑판 위에는 1집, 2집, 3집만 있지 0.5집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반집 차이로 지고 이기는 이유는 덤 때문이다. 바둑 경기에서는 먼저 돌을 놓는 흑이 유리하다고 보아서 백에게 6집 반의 덤을 준다. 이것을 계산하여 어느 한쪽이 0.5집 차이로 이기는 걸 반집승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를 처음으로 이긴 대국이 반집승이었기 때문에 창호가 어쩌다 운이 좋아서 이긴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설마 열 네 살 소년이 반집까지 계산해서 대국을 운영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창호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그게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100번 중의 100번을 반집이라도 이길 수 있다는 창호의 바둑에 나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머지않아 그 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89년 국수전 도전기에서 창호와 또 만났다. 이번에도 내가 3대 1로 이겼지만 창호에게 빼앗긴 한 판은 역시 또 반집 차였다. 그후 1990년 처음으로 창호에게 타이틀을 빼앗긴 최고위전에서도, 2대 2로 팽팽한 승부를 펼쳤으나 마지막 5국에서 역시 창호에게 반집 차로 졌다.


이후로도 창호와 정상에서 수많은 대국을 치렀는데 결정적인 순간마다 반집패가 재연되었다. 나와 창호의 통산전적은 188승 119패로 창호가 앞선다. 이 가운데 나의 반집승이 다섯 번인데 비해 창호의 반집승은 스무 번이나 된다. 반집승은 창호가 발견한 나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창호는 스승과 다른 길을 묵묵히 걸어감으로써 스스로 스승을 능가하는 법을 깨우친 것이다.


창호는 나를 이기기 위해 나를 연구했다. 나의 기보를 낱낱이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 빈틈이 어디인지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것이다. 이창호가 나타나기 전까지 나의 바둑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창호가 두터운 행마와 슈퍼컴퓨터 같은 계산력으로 나의 허점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내가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딱 반집의 허점을 창호는 놓치지 않았다.


이것은 실력의 차이가 아니다. 승부의 세계에서 이기는 자가 강한 자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바둑에는 실력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이것은 새로운 '류'의 충돌이다. 나의 류와 이창호의 류는 너무나 달랐다. 아니, 이창호의 류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류였다. 바둑이라는 진리를 깨우치는 데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창호와 나는 전혀 다른 경로로 그 길을 올라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기사들은 물론 나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나의 허점을 창호만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창호의 허점도 있다. 그걸 훗날 이세돌이 나타나 파고들었다. 바둑의 역사는 이런 식으로 진보한다. 나와 전혀 다른 '류'를 가진 이창호가 나를 이겼고, 또 이창호와 전혀 다른 '류'를 가진 이세돌이 이창호를 이겼다. 누군가 이세돌을 이기려면 또 다른 새로운 '류'를 가진 자가 등장해야 한다. 박정환과 김지석이 이세돌과의 격차를 서서히 좁혀가고 있는 것은 새로운 류의 등장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조짐일 것이다.


새로운 '류'란 이기는 '류'다. 그것은 상대방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분석하여 그 허점을 파고들면서 탄생한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창의적인 '류'라고도 말할 수 있다.


나는 세상이 돌아가는 법에서도 이러한 '류'의 법칙을 늘 목격한다. 지도자는 늘 새로운 정치철학을 갖고 등장하는 새 인물에 의해 권력을 내려놓는다. 기업인들은 변화와 혁신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도태된다. 회사가 직원에게 요구하는 재주와 덕목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에는 성실과 충성을 요구했다면, 한동안은 영어 실력과 스펙을 요구했고, 지금은 또 달라져서 원만한 성품과 창의성을 요구한다. 미래에는 또 어떤 인재상을 원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가정에서도 그렇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아버지 상, 어머니 상이 있다. 부부의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새로운 류가 등장하여 관계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시대에 맞춰 부응해야 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권위를 내려놓아야 하고, 아이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어머니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어떤 류를 갖고 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누구나 갖고 있는 낡은 류는 아닌가. 아무에게도 없는 새롭고 창의적인 류인가. 남과 다른 류를 가지는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다. 과연 다가오는 새로운 '류'는 무엇일까? 그 '류'는 이미 지금 시작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잘 읽고 준비하는 사람이 미래를 주도할 것이다.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 조훈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