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송두리째 바꾼 26세 스승과의 만남_ 이소이 요시미쓰
어느 날, 컴퓨터로 메일을 확인하는데 관심 가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한 공부 모임에서 보낸 안내문이었다. 그 모임에는 1년 넘게 참가하지 않았지만, 주제가 독특해서 호기심이 일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과소지역을 찾아다닌 청년과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연다는 것이었다.
그 모임에서 만난 청년이 당시 26세의 도모히로 유이치 군이다. 세미나에는 열네댓 명 정도가 참석했다. 도모히로 군은 대학생 때 찾아갔던 니기타 현의 과소지역과 야프 섬에서 지낸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이후 그는 다시 반년여 동안 후지야마 현을 시작으로 오키나와부터 홋카이도까지 전국 80여 곳의 과소지역을 찾아다녔는데, 그 때의 일도 들려주었다.
야프 섬에는 돌로 된 돈이 있는데, 그 돈에는 가족 중 누군가가 결혼했을 때 돼지 몇 마리와 교환했다는 등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또 섬의 아이들은 친구와 놀다 헤어질 때 "내일 만나자"는 한마디만 할 뿐 굳이 약속 장소와 시간을 따로 정하지 않는단다. 다음 날 자연스럽게 일정한 곳에 모여 바다에 뛰어들며 신나게 논다는 것이다.
야프 섬에서 생활하기 전 그는 돈은 많을수록 좋고, 속도는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돈이 없고 서두르지 않아도 얼마든지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성장과 상승만을 최선으로 여기는 가치관이 아닌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니가타의 과소지역에서는 "토끼는 카레가 좋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단다. 카레라이스에는 토끼고기가 잘 어울린다는 의미다.
자연과의 교류를 경험하면서 그는 대도시의 젊은이와는 백팔십도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질문 시간에 한 참가자가 이렇게 물었다.
"그런 활동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죠?"
그는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그렇다. 굳이 의미를 부여해서 하는 활동이 아니다. 그저 매 순간 만나는 사람을 소중히 여겨 진심으로 대하고, 그가 소개해주는 곳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며 농사일을 돕고, 물고기를 잡거나 나무하는 일따위를 거들다가 다른 마을로 간다. 사람들의 일을 도우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낀다. 그게 전부다. 그렇게 반년 남짓 생활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토록 사람을 깊이 신뢰할 수 있다는 자체가 감동이었다. 또, 여행 중에 그는 다음 목적지를 검색하거나 미리 정하지 않고 그저 눈 앞에 있는 사람과의 인연을 따라 여행했다고 한다.
그의 삶의 방식은 나와 완전히 달랐다. 나는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명함 한 장 주고받는 데도 이것이 일에 도움이 될까 판단하며 살았다. 회사에 뭔가 유익한 정보를 줄 사람인지 아닌지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문득, 그런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돌이켜보면, 나는 좀 더 편하게 일하기 위해 언제나 내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하고 이해시키려고만 했다. 도모히로 군은 나와는 정반대였다. 그는 자신을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 상대를 평가하는 대신 상대의 잠재력을 어떻게 끌어낼지에 관심을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그를 도울 수 있을지 생각했다. 인간관계의 벽과 조직의 벽만 탓하며 힘들어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무언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조급함과 욕심 때문에 충돌이 생겼던 것은 아닐까? 전혀 다른 가치관, 전혀 다른 삶의 방향이 있다는 것을 그때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나의 몸과 마음에 쌓여 있던 독소를 제거해줄 사람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그를 '스승'으로 부르기로 했다. 모임이 끝난 후 도모히로 군과 근처 술집을 찾았다. 내가 먼저 그에게 나의 꿈을 말했다.
'길모퉁이마다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싶어! 그곳에서 서로 배움을 나누는 작은 모임을 열고 싶어! 동네도서관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조용히 내 말을 듣고 나서 그는 좋은 아이디어라며 꼭 같이 해보자고 격려해주었다. 난생처음 나의 말에 귀 기울여준 사람을 만난 것 같았다. 이후 그와 함께 반년 동안 일본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그의 비서가 되어 그가 만나는 사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네도서관과 동네주쿠의 구상을 조금씩 다져나갔다.
고치 현의 가쓰라하마에서 열린 청년 모임에서 나는 큰 용기를 얻었다. 50여 명의 사람이 가쓰라하마의 호텔에서 사흘 동안 다양한 체험을 하며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는 모임이었다. 함께 들판을 뛰어다니고, 야생감자를 캐고,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명확한 목표나 결론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솔직한 대화를 통해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청년들과 솔직하게 꿈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았다.
당시 나는 52세로,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나이였지만 용기 내어 많은 사람 앞에서 동네도서관에 대한 꿈을 이야기했다. 그 자리에 있던 청년들 모두 한마음으로 격려하고 응원해주었다.
가족이나 옛 직장 동료에게 내 꿈을 말했을 때 하나같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아무도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그런 사업을 해봤자 절대 돈이 되지 않는다며 의미 없는 일에 헛수고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 반응에 자신감을 잃었던 내게 용기를 주고 등을 밀어주는 진짜 동료가 생긴 것이었다.
또한, 먼저 전체상을 구상하고 거창한 목표를 세운 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도 도모히로 군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의 삶은 눈앞의 사람과 많은 것을 나누는 가운데 새로운 무언가가 생겨나고, 그것으로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드는 식이다. 작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과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리하지 않는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같은 '제삼의 장소'를 체인으로 하여 회원제로 회비를 받아 수익을 올리고, 전국적으로 확대하자는 구상을 했다. 기획서를 수도 없이 고쳐 썼고, 미션이니 로고니 하는 것들에 온 신경을 썼다. 사업성을 생각하면 투자액이 방대해지는데 돈도 없고 조직도 없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도모히로 군을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로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배움을 나눌 기회를 얻고 싶었다. 거기에는 번듯한 장소가 없어도 된다. 책은 각자 갖고 오면 된다. 결국, 문제는 자금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나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혼자'가 되고 나서 오히려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만남과 의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도모히로 군은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스승이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_ 이소이 요시미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