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무탄트 기행, 히말라야를 걷다_ 허태수
나는 지난 2월 아흐레 동안 '무탄트' 메신저의 심정으로 히말라야 랑탕코스를 트레킹했다. 물론 독단으로 히말라야를 걸어보려는 생각은 못했다. 언젠가는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고, 여럿이 어울려 가기에는 여건이 맞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지방의 50년된 건설회사를 경영하는 우리 교회의 정세환 장로가 임직원들의 팀 스피릿을 위해 히말라야를 걷는다고 하기에 따라나섰던 거다. 그러자 오래전 읽었던 '무탄트 메시지'가 생각 났다.
하나님이 최초로 창조한 사람들이라 불리는 호주 원주민인 '참사람' 부족이 있었다. 그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모든 생명체가 형제이며 누이라고 믿는 이들이다. 문명의 돌개바람과 함께 몰려와 어머니 대지를 파헤치고, 강을 더럽히고, 나무를 쓰러뜨리는 문명인들을 보면서 원주민들은 '돌연변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 돌연변이가 그들의 언어로 '무탄트'다. 돌연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기본 구조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존재를 가리킨다. 백인들과 타협하지 않은 마지막 원주민 집단으로 알려진 참사람 부족은, 걸어서 호주대륙을 횡단하기도로도 유명하다.
이 책의 저자인 말로 모건은, 이 참사람 부족이 엄선한 무탄트 메신저로서 이들과 함께 넉 달간의 사막도보 횡단여행에 참가하게 된다. 그후 모건은 책을 통해 세상의 문명인들에게 참사람 부족이 전하는 메시지를 기록한다. 과학문명만을 사회진화로 추구하는 세계와 사람들에 대한 일침이 가득하다. 그중에 하나를 걸러보면 단연 '무엇이 문명인가?'이다. '참사람 부족'에게 문명이란 '적게 일하고 많이 쉬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과학문명 세계의 사람들은 '많이 일하고 조금밖에 쉬지 못'한다. 그들의 눈에 비친 과학문명의 사람들이 도레 '비문명인'이라는 것이다. 문명인인 척하는 비문명인인 우리를 일컫는 그들의 말이 바로 '무탄트'이다.
따라나서보니 정 장로님의 <주식회사 대양>은 이번만이 아니라 거의 해마다 '사람'을 위한 '스피릿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재정적인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조직적 차원의 독려와 강화만이 아니었다. 기업의 이름을 걸고 그 조직원이 참여하는 행위이니 전혀 그런 결과와 목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터이다. 사실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기업인들은 이윤추구라는 외길을 향해 100미터 달리기선수들처럼 달리기만 했다. 그때 기업이 즐겨 쓰던 용어가 관리였다. 경영이 곧 관리와 동의어가 되었던 셈이다.
인사관리, 물품관리, 품질관리, 고객관리... '관리'가 기업의 관건이었다. 그러나 '기업'을 한자로 써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 '企業'의 '기'는 '사람'밑에 '멈춤'을 써 받치지 않았는가? 풀어보면, 사람이 제 갈 길을 찾기 위해서 발뒤꿈치를 들어 멀리 앞을 내다보고 있는 형상이다. 앞일을 생각하고 꾀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기업을 한자 뜻대로 한다면, 그저 바쁘게 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수시로 멈춰 서서 자기의 갈 길을 선택하고 판단하는 사람, 남보다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게 기업이다. 그런 사람을 만드는 일이 기업하는 사람의 책무이며, 그걸 잘하는 사람이 유능한 기업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의 정세환 장로는 유능한 기업인이다. 기업의 목표를 수익성만이 아니라 환희의 감탄부호인 성취감을 샘솟는 물줄기처럼 쏟아내려는 인간정신에 두고 있으니 말이다. '목구멍에서 생기는 것이 경제요, 가슴에서 생기는 것이 문화다'라는 말을 그는 알고 있다. 이제 그렇게 아름다운 이들과 함께 했던 열흘간의 '신 무탄트' 기행문을 쓰려고 한다.
내 생각에 답한다_ 허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