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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의 하이에나, 프리건_ MBC 'W' 제작팀

정정진 2012. 4. 17. 20:15

맨해튼의 하이에나, 프리건

 

뉴욕 맨해튼 도심의 대형 쓰레기 트럭, 한 무리의 사람들이 능숙한 솜씨로 호텔에서 버린 쓰레기를 뒤지고 있다.수명이 다해 버린 쓰레기지만 이 중에는 아직 쓸 만한 물건들이 많아 보인다. 불법은 아니지만 대낮의 도심 한복판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은 환영받을 일은 아니었는지, 급기야 호텔의 매니저가 나와 그들을 쫓아낸다. 도시의 한복판에서 하이에나처럼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 과연 이들은 누구인가.

 

밤 9시, 맨해튼의 한 슈퍼마켓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길가의 쓰레기를 뒤지고 있다. 이들은 비닐봉지를 열고 쓰레기 속에서 무언가를 건져 내기 시작했다. 아직도 싱싱해 보이는 당근, 브로콜리, 바나나, 음료수 등 다양한 식품들이 쓰레기봉투에서 건져졌다. 하지만 행인들은 이들에게 불쾌하고 의아한 눈길을 보낸다. 오늘날 길거리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것은 노숙자 또는 걸인이나 하는 불결한 행위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 이러한 행동은 다소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미국처럼 사람들이 청결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들이 쓰레기를 뒤지는 것은 걸인이기 때문도, 돈이 없어서도 아니다. 버려진 쓰레기를 뒤져 먹을거리를 수거하는 사람들, 이들은 바로 '프리건'이다. '프리건(Freegan)'은 '프리(Free)와 베건(Vegan)'의 합성어로, 프리는 말 그대로 자유로운, 베건은 채식주의자를 뜻한다.

 

환경주의자들의 항변

 

프리건의 첫 번째 원칙은 가능하면 돈을 지출하지 않고 필요로 하는 물건을 얻는 것이다. 음식 쓰레기 수거는 이런 원칙에 잘 부합하는 행위다. 이런 의미에서 프리건은 일종의 환경주의자다. 이들은 자원 낭비를 막고 재활용하는 것이 환경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는다. W가 만난 또 다른 프리건 매슈 역시 같은 생각이다.

 

"우리의 취지는 자본주의가 너무 낭비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나오는 쓰레기만 가지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쓰레기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쓰레기가 아니죠. 우리는 돈없이도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선 전체 음식의 4.5%가 소비되지 않은 채 버려지고, 이로 인한 손실은 연간 1000억 달러에 이른다. 이 음식 쓰레기들은 주로 슈퍼마켓, 음식점 등에서 버리는데, 대부분 유효 기간이 지났지만 개중에는 아직 먹을 수 있는 멀쩡한 음식도 많다. 프리건들은 제품에 표시된 유효 기간이 식품 안전 날짜가 아니라, 단지 슈퍼마켓의 선반에 진열된 기간을 의미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프리건에게 쓰레기 뒤지기는 환경 운동 차원 이외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소비 중심의 자본주의가 타락한 제도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검약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프리건 운동은 세상을 오로지 소비 수단으로 인식하며 악용하는 자본주의 산업경제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출발한다.

 

우리는 이미 먹고살기에 충분한 것들을 가지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허파라고 불리는 센트럴 파크. 프리건들이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채집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수만 년 전 인류가 자연에서 채집한 것을 통해 생존한 것처럼 프리건들이 이를 다시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자연에서 필요한 것을 스스로 얻는 것이 프리건의 두 번째 원칙이다. 채집은 쓰레기를 줍는 방식보다 덜 극단적인 방법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거부감도 별로 없다. 그래서 이 모임에는 프리건뿐 아니라 자연식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도 참여한다.

 

"농경 사회가 시작되면서부터 인간은 자연과 분리됐죠.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자연이라는 것이 단지 지구 온난화나 동식물 멸종 위기등만이 발생하는 부정적인 공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풍요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임을 알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재생이 불가능한 식물들을 보호하도록 동기 부여를 해 주어야 해요. 특히 어린이에게 이런 교육을 시키는 것에 주력하고 있죠."

 

스티브는 몇 년 전부터 프리건 활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채집 가이드를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시장이 아닌 자연 속에서도 충분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려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음식은 슈퍼마켓에 가면 항상 구입할 수 있지만 자연 그대로의 맛을 느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프리건들은 다른 사람이 가져다 놓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직접 찾아 먹는 법을 배운다.

 

그동안 가게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소비하는 데 익숙하던 사람들은 도시 한복판 공원에 이토록 싱싱한 먹을거리가 많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스티브를 따라 나선 예비 프리건들은 이러한 식용 식물들이 우리 주위에서 자라고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음식이라는 사실 그리고 음식을 반드시 슈퍼마켓에서 구입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길 바라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박하지만 가장 특별한 잔치

 

뉴욕 브루클린의 한 아파트. 이날은 프리건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식사를 하는 프리건의 잔칫날이다. 물론 음식 재료는 쓰레기 더미에서 수거한 것들이다. 프리건 잔치에서 만난 교사 자넷은 2년 전부터 프리건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사할 때나 학교 기숙사 등에서 퇴사할 때 멀쩡한 물건들을 너무 많이 버리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중에는 포장도 뜯지 않은 새것도 많았다고 한다.

 

"내가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는 공짜로 음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과 쓰레기와 과잉 소비로부터 환경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UN에서 근무한다는 마이클 헤겔먼. 그는 지는 1월 쓰레기 투어에 처음 참여한 이후 프리건이 되었다고 한다.

이날 파티에서는 프리건에 대해 취재하러 온 <뉴욕 타임스> 기자 스티브도 만날 수 있었다. 그도 처음 프리건에 대해 들었을 때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으나, 미국의 과잉 소비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그들의 주장에 곧 흥미를 느껴 취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회적인 관심을 받기 위해 시작한 프리건의 수는 어느새 미국에서만 1만 4000명으로 늘어났다. 프리건이 이처럼 늘어난 것은 그들의 활동이 단지 음식 쓰레기 수거에만 국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리건은 재활용 캠페인을 통해 쓰레기 생산이 일상화되어 버린 소비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 반기를 들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기본적인 생활 조건도 못 갖추고 살아가는데, 재활용 가능한 수많은 재화들이 쓰레기로 내버려지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매년 800만 명의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 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음식을 내버리죠. 문제는 소비자 개인이 아니라 내다 버리는 문화를 통해서 이윤을 추구하는 대기업의 경제 시스템에 있습니다."

 

브루클린의 한 대형 쇼핑센터. 프리건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다. 프리건의 세 번째 원칙은 참여를 통한 개선이다. 다시 말해서, 대형 슈퍼마켓이 인체에 유해한 독성 물질이 포함된 제품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알리기 위해 나선 것이다. 샤워 커튼, 장난감, 포장 재료등등 많은 제품에 사용한 유해한 물질이 그걸 생산한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이번 시위의 목적은 책임 추궁과 더불어 소비자에게 이런 사실을 알림으로써 유해 물질이 함유된 제품의 판매 중지를 요구하고 불매운동을 벌이도록 하는 것이다. 한 시민은 이들의 시위로 전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진정한 자유와 나눔, 사회 참여를 위하여

 

프리건들이 공식 사이트(http://www.freegan.info.) 에서 밝히고 있는 전략과 의무는 실로 기발하다. 태양열을 이용할 것, 일을 적게 할 것, 자주 샤워하지 말 것, 자전거 타기와 히치하이크를 생활화할 것, 술은 집에서 담가 먹을 것, 컵과 손수건은 항상 갖고 다닐 것, 버려진 집을 이용해서 살 것 등등. 이 사이트에선 프리건들의 철학 외에도 프리건 관련 행사 일정, 가까운 곳에 있는 프리건 찾기 등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현대 사회의 경제 시스템이 도를 넘어섰다고 생각하는 프리건들. 이들의 움직임은 이제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이는 이윤 추구만이 사회의 절대 진리로 작용하고,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사람들의 소비를 부추기는 데만 급급한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 회의를 느끼는 현대인이 늘어났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소 극단적일지 몰라도, 쓰레기를 뒤지고 자연에서 나물을 뜯어 먹는 실천을 통해 그들 스스로가 진정한 자유와 나눔, 사회 참여라는 건강한 정신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이 세계는 한 걸음 진보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P.S 비하인드 : 우리는 과잉 소비에 반대한다

 

과잉 소비에 대한 반대 운동은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은 프리건족 이외에도 다양한 운동과 키워드를 만들어 냈다. 소득이 충분하더라도 저가 소매점에서 좋은 물건을 찾기 위해 공을 들이는 사람들을 일컫는 '프라브족'. 여기서 프라브란 부가 가치에 대한 자랑스렁룬 각성자들(Proud Realisers of Added Value)이라는 의미이다.

 

또 프리건이 상품 소비를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입장이라면 충동구매를 자제하고 최대한 절제하자는 입장을 가진 사람을 신검소족(New Austerity)'이라고 한다. 욕구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만 소비하는 사람으로, 자신이 쓰던 브랜드 제품을 런던 한복판에서 불태워 화제가 된 영국의 닐 부어맨이 대표적 인물이다.

 

미지막으로 욘족(YAWNS)'은 젊고 부유하지만 평범하게 사는 사람(Young and Wealthy but Normal) 으로, 30~40대에 수십억 달러의 부를 축적했으나 사치와 낭비가 아니라 자선사업에 수입의 대부분을 쓰는 신세대 엘리트 부자를 가리킨다.

 

- MBC <W> 제작팀 <세계를 보는 새로운 창 'W'>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