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성찰

간디의 사상이 갖는 세계사적 의의_ 김종철

정정진 2009. 4. 1. 11:01

민중의 자치와 평화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도 간디의 사상과 실천이 갖는 세계사적 의의는 실로 엄청난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루빨리 서양문명을 따라잡는 것이 시대의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했던 후쿠자와의 경우가, 따져보면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전세계의 소위 엘리트들의 일반화된 사고양태라면, 이미 20세기 초에 서양문명의 본질적 모순과 한계를

명확히 간파하고, 그 문명이 절대로 인류사회에 보편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꿰뚫어봄으로써, 서구 산업주의

문명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활방식을 제시했던 간디의 경우는 매우 예외적인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간디의 이러한

예외성은 지금 날이 갈수록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일부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공존공생이라는

견지에서 볼 때, 간디가 제시한 길은 부국강병의 논리가 활개를 침으로써 대다수 민중은 늘 소외와 억압과 빈곤을

강요당해온 현대사 전체의 상황에서 진실로 인류사회의 활로를 열어주는 가장 창조적인 발상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간디의 <힌두 스와라지>(1909)는 그가 아직 남아프리카에서 활동중이던 때에 쓴 소책자이지만, 이 책은 생애 마지막

까지 간디가 견지하였던 문명관과 사회경제사상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기념할 만한 문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간디 자신 이 책의 중요성을 되풀이하여 언급하고 있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1921년에 간디는 "그것은 1909년에

씌어졌지만, 지금 나는 그 책에서 아무것도 취소하고 싶지 않다. 그 책자는 '근대'문명에 대한 심각한 공격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나는 인도가 "근대문명"을 배격한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오직 이득만을 얻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라고 말하고, 또 1945년에는 어떤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힌두 스와라지>에서 내가 기술했던 것을 지금도 완전히 지지합니다. 그 후의 내 경험은 1909년에 내가 썼던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비록 내가 그것을 믿는 유일한 사람으로 남는다 하더라도 나는 유감이 없습니다..

나는 만약 인도가, 그리고 세계가, 진정한 자유에 도달하려면, 조만간 우리들이 마을, 즉 궁전이 아니라 오두막으로 가서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들은 마을생활의 단순소박성에서만 진리와 비폭력의 비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요지는 각자가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디에게 '자유인도'의 핵심은 자기들의 삶의 운영방식을 결정할 힘을 갖고 있는 마을자치(스와라지)였다. <힌두스와리지>를

통하여 간디가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는 것은 농촌마을 중심의 자치, 자급, 자립적 민주주의야말로 인도뿐만 아니라

인류사회의 보편적인 생활방식으로서 영구적으로 지속가능하고, 만인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간디의 시각에서 볼 때, 서구식 산업문명의 근간에는 강자에 의한 약자의 지배라는 구조를 합법화하는 인간불평등

사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논리가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것은 널리 인류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고, 장기적인 지속이 가능하지도 않는, 자원약탈과 낭비를 내재적인 원리로 하는 경제체제 위에 구축되어 있는

문명이었다. 예를 들어, 독립 후의 인도가 무엇보다 산업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네루는 자본주의의 악이 사회주의적인

방식으로 극복될 수 있으리라고 보았지만, 간디는 "산업화 자체에 악이 내재하고 있고, 따라서 그것은 결코 '사회화'를

통해서 근절시킬 수 없는 것" 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간디의 사상은 식민주의에 대한 투쟁 가운데서 정립되었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식민주의에 대한 이해가

갖는 독특함과 예리함이다. 예를 들어, 레닌을 위시한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흔히 제국주의 혹은 식민주의의 본질을 자본주의의

문제로 파악해왔다고 한다면, 간디는 한걸음 더 나아가 식민주의를 서구 산업문명 그 자체, 즉 '근대성'의 불가결한 구성요건

으로써 이해했던 것이다. 식민주의는 흔히 피식민지 주민들에게 '근대적'인 가치와 제도와 문물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갖고 있지만, 부분적으로 이것이 어느 정도 사실인 측면이 없지 않은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식민주의에 의한

시혜는 어디까지나 좀더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 침략과 약탈을 위해 포장된 명분일 뿐이지, 결코 식민주의 그 자체에 내재한

논리일 수 없는 것이다. 식민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것은 상업적 이익을 위한 팽창, 지배하려는 권력의지와 '영광'에 대한 탐욕이다.

 

이러한 식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서구 근대문명은, 간디의 시각에서 보면, 철저히 폭력에 근거한 문명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진정한 문명이 아니었다. 간디에게 참다운 문명이란 윤리적, 종교적, 영성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의 삶에 이르게 하는 '행동양식'이었다. 야만이란 그러한 행동양식의 결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계몽사상 혹은 좀더

정확히는 산업혁명을 통해 정립된 서구 근대문명의 주된 행동양식은 사회적 강자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약자들의 운명이 철저히

유린되는 것을 합법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은 인간의 물질적 욕망과 정치적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연을 마음대로 소유, 착취해도 된다고 보는, 자연과 인간을 철저히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보는 인식론적 혁명을 동반했다.

 

이것은 서구세계의 전통과도 근본적으로 단절되는 경험이었고, 그 결과 철저히 세속화되어 가는 서구 근대문명의 세계에서

정치의 주된 목적이 이제부터는 오로지 경제적 번영을 위한 욕망 충족에 있다는 생각이 뿌리깊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종교는 한갓 미신으로 치부되거나, 아니면 그 사회적, 심리학적 쓸모 때문에 평가될 뿐이었다. 또한, 산업주의 문명은 노동의

개념도 변화시켰다. 노동은 더이상 인간이 자기를 실현하는 창조적인 수단이 아니라, 단순히 이윤과 자본, 권력을 생산하는 능력으로

간주되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육체노동은 교육받지 못한 하층민에게 적합한 것으로 비쳐지기 시작하고, 또 기술의 혁명적

발달과 더불어, 종래 어디까지나 주체인 인간을 돕는 도구였던 기계는 이제부터는 그 자체의 내적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자율적인

존재가 됨으로써 인간이 도리어 기계의 하인이 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 김종철의 <땅의 옹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