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 유아독존" 에 담긴 두 가지 뜻
'방향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끝없이 황량하기만 한 사막이지만 어디에선가 한 줄기 지하수가 흐르고 있는 까닭에, 그 사막은 살아있는 아름다운 것' 이라는 말이 있다.
어둠이 짙게 깔린 혼미 속의 역사라고 하지만, 인간의 혼을 일깨우는 우렁찬 소리이자 눈부신 빛이 있었기에 역사를 인간의 역사이게 했음을 알아야 하리라.
" 이 세계는 한 줄기 빛,
한 덩어리 생명,
연기성을 떠나서 세계도 진리도 존재할 수 없는 것.
진정한 창조주는 본래의 빛인 연기성일 뿐이라.
세계의 실상,
생명의 실상,
인간의 실상,
그대 자신의 실상이여.
불생불멸이요,
환희의 법열이요,
대자유자재요,
청정하여 미혹이 없도다.
이와 같은 창조적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대 자신, 우주 자체라네."
2600여년 전 부처님께서 정각을 성취하신 후 당당하게 사자후 하신 진리의 선언이다.
이것은 불교의 핵심적 생명이자 인류사의 혼을 밝히는 인간의 근원적 정신인 것이다. 부처님의 선언이 살아 있을 때 불교는 역사속에 빛이었고 또한 시대를 일깨우는 선각자일 수 있었다. 부처님께서 사자후하신 선언의 내용이 소중하게 받아들여질 때 인간 정신에 입각한 역사가 전개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때가 왔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혼미의 꿈속을 헤매이는 인류의 정신을 일깨우는 아픈 채찍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불교의 존재 가치를 외면하려는 조짐은 단호히 척결되어야 할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연기의 논리로 해석해야 합니다. 연기적으로 해석하면 "온 우주가 그대로 나 자신이요, 자신이 그대로 우주 자체이므로 이 세상 그 무엇도 나 아닌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태양에 의지해서 내가 존재하듯이 흙, 물, 바람, 산소 등에 의지하여 내가 존재하므로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나 또는 나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분리되고 독립된 것은 본디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곧 '무아'를 뜻합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큰 의미가 그 속에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존재의 존귀함'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은 존재의 본질이 영원하고 무한하고 완성적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밖에 없는 무한함과 완전함이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존재의 존귀함은 바로 연기성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연기의 존재이고 법의 존재입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것 자체로 유일한 가치를 지닙니다.
여기에서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연기의 존재라면 연기를 벗어났을 때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연기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연기가 진리인데 어떻게 연기를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또 "무상게에서, 12연기를 소멸하고 벗어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을 것입니다.
무상게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연기를 멸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존재의 실상, 곧, 연기법에 대한 미혹과 집착을 여읜다는 것이지, 연기법을 여읜다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라고 하는 것도 연기의 인격자입니다. 연기법의 인격화인 것입니다. 그래서 연기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미혹과 집착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보살행에서 독보적임"을 뜻합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은, 선근 공덕을 짓는 보살행으로 보면 "내가 최고이며 독보적인 존재이다"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미혹과 고통에서 헤매는 중생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그 삶이 이 세상의 어떤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천상천하 무여불, 곧 하늘 위에도 하늘 아래에도 부처님 같은 존재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많은 불교인들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을 그저 자아의 영원함, 완전함, 무한함을 강조하는 것쯤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한국 불교가 불교의 본뜻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불교를 두 눈으로 온전히 보지 못하고 외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또 눈은 있는데 발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발이 없으니 실천이 따라 주지 않습니다. 두 눈과 두 발이 함께 갖추어져야 온전히 알고 또 온전히 실천할 수 있을 터인데, 더러는 눈은 있으되 발을 무시하거나 더러는 눈은 무시하면서 발만 강조합니다.
한국 불교는 이렇게 변질되고 왜곡되어 병이 깊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 과연 불교는 있는가 하고 스스로 묻습니다. 오늘, 이 땅에 과연 불교가 살아 있는가 하고 뼈아프게 자문하게 됩니다. 이 모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살피지 않은 데에서 연유합니다.
"천상 천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고 한 부처님의 선언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의 존귀함과 더불어, 미혹과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중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그 삶의 내용이 독보적임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