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종교
왜 걷는 것이 중요한가_ 도법스님
정정진
2009. 3. 13. 20:30
걸은 만큼 가벼워진다.
짐승들은 달리고,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지렁이는 기고, 인간은 걸었다.
하지만 이제 인간들만이 걷지 않는다. 걷기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어버렸다.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잘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을 온존하게 하는
몸짓이다. 자신을 버려 자신을 돌아봄이다. 걸음에서 자신을 찾는 것이다. 걸음의
시작에서 끝까지 모든 동작을 면밀하게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따라가 보면 안다.
'걸을 때는 걷는 것을 알라'는 가르침이 몸속으로 스며든다. 걸음에 온전히 나를
맡기면 걸음 자체가 인생이요 세상이다. 그렇게 걸음 자체에 나를 맡기면 비로소
자신이 보인다.
걷는 것은 또 다른 비움이다.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음이니,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다. 걸음은 나를 다른 곳으로 실어가는 것이다. 나를 어느 한 곳에 가둬
놓지 않음이다. 자유다. 또 걷다 보면 가진 것이 짐이 되고, 가진 짐이 무거워진다.
많이 지고 갈 수 없으니 자연 가진 것을 풀어놓아야 한다. 이는 비움도 되고, 나눔도
되고, 베풂도 되고, 또 자유도 되는 것이다.
함께 걸으면 느낌을 나눌 수 있다. 내 생각이 상대에게 흘러 들어간다. 말하지 않아도
말하는 것이다. 말없이도 상대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불가에서 '도반'이라는 말이 있다.
'함께 같은 길을 가는 반려자'로 풀이할 수 있다. '같이 걷는 이'가 '불가의 친구'이니
이는 사뭇 심오하다. 길에 길이 있음이다.
걸으면 무수한 생각이 돋아났다가 사라진다. 사라짐과 나타남, 이를 반복하면 생각이
절로 명료해진다. 누군가에 복수를 하러 가는 길이라면 걸어서 가야 한다. 생각이
생각을 밀어내고 걷어낸다. 걷는 동안 미움과 분노를 덜어낼 수 있다. 차를 타고 달려
가면 위험하다. 미움과 분노를 고스란히 실어 나르니 마음이 줄곧 곤두서 있을 것이다.
걷는 자는 평온해지고 탄 자는 여전히 불온하다.
걸음에 모든 것을 맡기고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내면의 소리가 들려온다. 이른바 양심의
소리다. 양심의 소리는 자기를 선명하게 비춘다. 내 안의 모든 욕망이 불려 나온다.
악취 나고 볼썽사나운 욕심덩어리들. 이윽고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우리는 양심의 소리를 망각하고 살아간다. 우리를 위해, 나만을 위해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다. 양심이 생기면 슬며시 버린다. 그래도 양심이 나타나 마음을 흔들면 세태에
기대거나 세상을 탓한다.
걸음도 그렇다. 내 건강이나 이익만을 위해 걷는다면 내면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주위의 풍경이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주변을 살피지 못한다. 내 안의 다른
울림, 내 안의 다른 음성(양심의 소리), 그것은 신의 소리다. 양심은 마음속에 있음이
분명하다. 신이 내린 신성인 것이다.
- 도법스님의 '사람의 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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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걷는 것에 소홀하다. 자동차를 타거나 다른 수단에 의지하며 자신과의 만남을
덜 가지려 한다. 확실히 걷고 나면 어떤 번뇌들이 소멸되거나 가벼워짐을 느끼며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생각이 저절로 정리가 되고 결단이 내려지기도 한다.
어디를 걷기 위해 떠나기보다는 출근길이나 동네, 자주 다니는 곳에서 혼자 조용히 가볍게
걸으면 그 자체가 운동이 되고 수행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