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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창녀의 아름다운 독백_ 송기원
정정진
2009. 3. 8. 17:28
시인 송기원은 이 시대의 많은 풀뿌리 인생에 마주친 경험을 털어 놓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민중 가운에서도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 예를 들어 등짐장수, 넝마주이
하급 선원, 창녀들, 이른바 진보적인 사회과학에서도 잘 언급되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
인데요. 시인은 깊은 애정과 공감으로 이들과의 사귐을 얘기하고, 이들의 삶의 내부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많은 작품들이 대개 그런 작품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
인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늙은 창녀에 관한 시 [살붙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여자는
열 여덟 살 때 사창가로 들어와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그곳을 떠나지 못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자기에게 밥을 먹여 준 이곳이 정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찾아오는 손님들도 모
두 남 같지 않은 느낌이 되었다고 합니다.
나이가 마흔이 넘응께
이런 징헌 디도 정이 들어라우.
열여덟살짜리 처녀가
남자가 뭔지도 몰르고 들어와
오매, 이십년이 넘었구만이라우.
꼭 돈 땜시 그란달 것도 없이
손님들이 모다 남 같지 않어서
안즉까장 여기를 못 떠나라우.
썩은 몸뚱아리도 좋다고
탐허는 손님들이
인자는 참말로 살붙이 같어라우.
여러분은 이런 작품에서 어떤 느낌을 받는지요? 처음 이 시를 읽고 저는 어떤 충격적
인 느낌, 지극히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느낌이라 할까요. 사람살이의 깊이와 위대함에
맞닥뜨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시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가장 큰 고통과 수모를
겪은 인생이 그러한 고통의 경험을 통해서 가장 큰 사랑으로 삶을 포옹하는 모습입니
다. 대체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삶이란 너
무나 깊고 신비스러운 것임을 말해 준다고 하겠지요.
아마 여러분도 좋아하는 시인일 것으로 믿는데, 천상병 선생의 시에 이런 것이 있지요.
추석이 되었는데, 시인은 객지에서 떠돌면서 워낙 가난하기 때문에 고향이나 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갈 여비 마련이 없어 탄식합니다. 그러면서 문득, 저승가는 데에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죽지도 못하는가 하고 시인은 생각하게 되고, 그런 생각의 끝에 "아, 인생
이란 얼마나 깊은 것인가" 하는 탄성이 나옵니다. 저는 이런 심리적 움직임의 경과를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대목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
은 그것이 여하한 합리적인 언어로도 포착할 수 없는 온전한 진실을 떠올리기 때문이
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감동은 결국 진실의 힘에서 비롯하는 것이고, 진실에 이르게 하
는 수단은 시인의 순정한 마음이라고 생각됩니다. 천상병 선생의 시에서 우리가 느끼
는 것은 무엇보다 철저한 무욕과 무소유의 마음이 드러내는 순정한 삶의 진실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반드시 같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살붙이]와 같은 작품의 내면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그런 순정한 시인의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
는 것은 마흔이 넘은 창녀의 이야기가 감동적인 것은 이것을 대하는 시인의 마음이 진
실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시인은 어떤 상투적인 공식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지 않
기에 이런 이야기를 발견하는지도 모릅니다.
- 김종철의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