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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가 꿈꾸는 세상_ 이태형

정정진 2011. 4. 6. 15:30

한비야가 꿈꾸는 세상

 

글_ 이태형 님 | <국민일보>부장, 사진_ 최연창 기자

 

2004년 1월 이란에서 한비야를 처음 만났다. 당시 월드비전 긴급 구호 팀장이던 그녀는 지진으로 5만여 명이 숨진 이란 밤시에 왔다.

'바람의 딸'로 각인된 오지 여행가에서 NGO의 긴급 구호 팀장으로 '보직'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짧은 만남이지만 인상은 강렬했다. 활기가 넘치고 말은 빨랐다. 지진 피해를 당한 이란 인들을 향한 간절한 눈빛도 보았다.

 

이후 대부분의 한국인이 한비야란 이름에 친숙함을 느낄 정도로 그녀는 유명인이 되었다.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됐다. 2009년에는 52세라는 나이에 미국 보스턴에 있는 터프츠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늦깎이 유학을 가기 전 그녀는 월드비전을 사직했다. 물론 월드비전 측은 '공부 마치고 다시 돌아오면 된다.' 라며 끝까지 잡았다. 당시 그녀가 한 말은 강렬했다.

 

"나는 지금 환승역에 서 있어요. 환승역에서는 지금까지 타던 차에서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열차를 탈 수 있으니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인생의 환승역에서 머뭇거리는가. 환승역에서 서성이다 끝내 새로운 열차를 타지 못한 사람들에게 한비야의 끝없는 도전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1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그녀는 지난해 6월 귀국했다. 돌아오자마자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다. 평생 간직한 꿈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해 문경새재 조령산까지 끝냈다. 전체 24구간 가운데 10구간을 마쳤다.

 

그녀는 지난해 마지막 날 중국으로 떠나 베이징에서 중국어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올 6월 말까지 공부한 뒤 다시 한국으로 와서 백두대간의 나머지 구간을 종주할 생각이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 그녀를 만났다. 지진으로 페허가 된 이란 밤시에서 보았을 때와 별다를 바 없었다. 여전히 활기찼다. 크게 늙지도 않았다. 나이를 물었다. 1958년생이라고 했다. '저보다 네 살 연상이십니다.' '어머, 그럼 마흔아홉 살? 아직 핏덩이네요.호호호.'

 

지천명이 내일모레인 나를 핏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축구 경기로 치면 후반전에 들어와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단다. 후반전 남은 시간도 엄청 많고, 이후 연장전, 승부차기까지 남았다며 웃었다.

 

열정과 꿈, 환희, 도전, 약동, 가슴 뛰는 삶....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감정이다. '한비야다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한비야는 자신만의 시간표를 갖고 살았다. 다른 사람이 쳐다보는 '표준 시간'에 좌우되지 않았다. 지금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시간과 여건을 생각하지 않고 뛰어든다. 세계 여행을 가고 싶어서 잘나가던 회사에 사직서를 던지고 바로 떠났던 것처럼,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박수 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실화(實話)의 삶을 살았다. 자신만의 생생한 이야기로 충만한 삶 말이다.

 

'모든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내가 마음에 들어요. 보스턴에서 공부할 때 밤을 새워 공부하는 내가 좋았어요. 홀로 백두대간을 걷는 내가 멋졌어요. 아마 중국에서도 열심히 중국어를 배우는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겁니다. 한비야는 한비야 마음에 들어야 해요.'

 

자신에게는 '한비야 스탠더드'가 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스스로 정한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 스탠더드를 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지난 30년간 그녀는 이틀에 한 번씩만 잤다고 한다. '정말로?'란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하룻밤을 새운다 하더라도 고작 6시간 덜 자는 거잖아요. 밤새 책 읽고 글을 썼어요.' 기가 질린다.

 

그녀는 여러 가지 생각하지 않는다. 간절히 원한 '그 일'에 최선을 다한다.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는 백두대간만 생각한다. 종주를 위해서 좋다는 모든 것을 한다. 관절을 위해 연골 주사도 맞았다. 초콜릿을 싫어하지만 종주 기간에는 먹었다. 열량을 보충하기 위해서. 잠도 날마다 잤다. 오직 종주를 위해서.

 

그녀에 따르면 용기는 자신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을 감행하는 것이다. 용기가 나지 않는 이유는 간절히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보니 묻게 된다. 우리 모두 지금 어떤 꿈이 있는가, 자신의 꿈인가, 또한 그것이 다른 사람의 꿈과 연결되는가.

 

"궁극적인 꿈은 무엇입니까?"

 

"시원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모두가 꿈꾸며 그 꿈을 이뤄 나가는 세상 말이에요. 각자의 어깨에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날개로 훨훨 날아가는 세상을 정말 만들고 싶습니다."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세 가지가 무엇인지 물었다. 바로 답이 왔다.

 

"믿음과 소망, 사랑이겠지요. 물론 그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꿰니까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음, 뜨겁게 산 사람, 스스로와 타인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몽땅 쓰고 간 사람요."

 

 

_ 좋은생각 2011년 2월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