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성찰

인간의 풍요보다도 학(鶴)과의 공존을 선택하는 사회_ 나카타니 이와오

정정진 2011. 1. 28. 22:17

 

인간의 풍요보다도 학(鶴)과의 공존을 선택하는 사회

 

 

이것을 부연하면, 만약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전통을 지키고 싶다든가, 혹은 자연환경을 지키고 싶다면, 그런 운동이 '이익'을 산출하는 장치를 만들어내라는 것이 자본주의의 논리다. 그러나 부탄이 주창하는 GNH의 사상에서는 그런 발상이 없다.

 

문화는 그 자체로서 중요한 것이며, 사람들의 행복감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소중한 것이라는 것이 부탄의 생각이다. 또 자연과 조화가 이루어진 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이므로, 자연을 파괴하여 소득을 증가시킬 경우에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설사 경제적으로 풍요해진다고 해도 그것으로 부탄의 전통사회가 파괴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 것이고, 다른 많은 나라처럼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즉 인간중심주의에 기초를 두고) 자연을 파괴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 부탄의 국가정책인 것이다.

 

실제로 부탄의 헌법에서는 삼림면적이 국토 전체의 6할 이하로 내려가서는 안 된다는 것, 자연환경의 유지나 야생동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업활동, 공업활동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런 규정이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는 것은 근대국가로서 필요불가결한 하부구조인 포장도로나 송전시설의 건설일지라도 풍요한 자연을 파괴하게 되는 것이라면 추진하지 않는다는 데도 나타나고 있다.

 

부탄에서는 한 가지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전기가 없는 어느 마을에 전기를 도입하겠다는 ODA 안건이 제기되었다. 다른 나라라면 당장 달려들 이야기다. 그러나 그 마을은 옛날부터 학이 날아와서 둥지를 틀고 있었다. 만약 전기를 들여오기 위해 고압전선을 설치하게 되면 날아온 학이 그 고압전선에 충돌해서 학이 둥지를 틀기 위해 이 마을에 올 수 없게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그러면 학이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마을에 전기를 들여오는 계획을 철회하도록 요청했다는 것이다. 전기가 있는 문화적 생활보다는 학과의 조화적인 생활을 선택한 것이 되는데, 그쪽이 GNH가 높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부탄은 결코 근대과학이나 근대문명을 부정한 종교적인 반동국가는 아니다. 이미 설명한 것처럼 부탄은 수력발전소를 건설하여 그곳에서 생산된 전기를 인도에 팔고 있고, 고산에 생식하는 귀중한 약초를 수출하기도 해서 얻은 외화로 '필요에 따라' 국내 하부구조를 정비하고 있다. 그러나 부탄 사람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를 파괴할 우려가 있는 사회하부구조는 선진국으로부터 무료로 제공하는 것일지라도 거부할 정도의 명확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부탄에서는 자연환경의 보호가 경제에 우선하는 과제인 것이다.

 

따라서 부탄에서는 국토 전역에 송전선이나 전화선을 깔 수 없는 것이고, 원시림을 깎아내서 산업도로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도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 대신 부탄은 적극적으로 태양광발전을 도입했고, 통신망에 대해서도 위성통신이나 휴대전화를 활용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선진적인 부분도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하부구조시설을 건설할 때도 부탄에서는 티벳불교를 중심으로 한 문화전통, 농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므로, 건설이나 공사에 부탄인을 고용하는 것을 극력 피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현금 수입을 위해서 이농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사회구조가 변하고 만다는 생각에서 그런 '3D노동'은 인도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이처럼 부탄에서는 시장원리나 경제효율성 보다도 사회나 전통, 또는 자연환경을 유지하는 것을 우선하는 정책이 실시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부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여기서 놀라운 것은 이런 시책이 반드시 국왕이나 정부에 의해 하향식으로 추진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탄에는 자동차도로가 없는 지역이 아직 있는데, 그런 지역은 결코 정부가 돌보지 않아서 그런 상황이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동차도로가 생겨 생태계가 파괴되면 전통농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된다든가,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학이 서식하는 귀중한 자연이 사라지는 것을 주민들이 두려워해서 자발적으로 건설을 취소시켰다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은 원칙적으로 낮에는 민속의상을 입도록 되어 있다. 흡연은 전국적으로  금지되고, 불교는 두텁게 보호되고 있다. 경제우선이라면 국민에게 계속 새로운 양복을 사도록 해야 할 것이고, 종교에 대해서도 세속화하는 편이 경제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부탄이라는 나라에서는 경제적 풍요를 추구하기 전에 자기들의 문화적 전통을 지키는 것이 '국시'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념이 훌륭해도 당자인 국민이 억지로 국왕의 방침에 따를 뿐이고, 그들만의 방식의 행복을 실감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행복도나 만족감을 수치화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여기에 주목할 만한 통계가 있다.

 

영국 레이체스터대학이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여러 가지 지표를 사용하여 전 세계 사람들의 '행복감'(주관적인 충족도)을 나라별로 조사한 결과, 복지가 충실한 북유럽국가들과 나란히 부탄은 세계 전체에서 8위, 아시아에서는 톱에 오른 결과가 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내 자신이 부탄을 방문해서 거리에서 사람들을 인터뷰해보았더니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탄이 문화전통의 보호를 중시하고 있다고 하지만, 매스미디어도 있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선진국의 정보를 나름대로 얻고 있다. 다소 불편하고, 다른 나라보다 물질적으로 풍요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구미나 일본의 물질문명을 따라하기 보다는 전통적인 부탄사회의 생활을 지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사회적 컨센서스가 이루어진 데에는 국왕 자신이 국민에게 GNH의 정신을 설득하고 다니는 등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국왕이 나서서 군주제를 폐지하고 입헌제도로 이행한 데에도 나타난 것처럼, 어디까지나 '국민의 총의'라는 형식으로 독자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탄의 정책을 지지하고 평가하는 사람은 세계적으로도 많이 있다.

 

부탄은 인구가 60만 명이 조금 넘고, 면적은 4만7천킬로제곱미터인데 그것도 거의 전부가 고산이라고 하는 문자 그대로 소국에 지나지 않는데, 그 존재감은 현실의 영토나 경제력보다 훨씬 크다. 이 점에서 쿠바가 자국의 의료제도를 적극적으로 세계에 알리고, 특히 중남미의 환자를 무료로 치료하는 것 등으로 세계에 커다란 존재감을 주고 있다는 것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부탄이나 쿠바는 독자의 존재감을 호소하여 국제사회에서 지지자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유연한 국가방위를 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런 나라를 침략한다든가 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반발을 초래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주위의 대국으로서도 행동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들의 국가전략의 '건전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가 파괴하는 '사회의 유대'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이렇게 쿠바나 부탄 사람들의 생활상에 직접 접촉해 보았기 때문에 나는 시장메커니즘에 맡기면 세상이 좋아진다는 단순한 개혁사상에 커다란 의문을 안게 되었다. 고이즈미 내각의 '개혁이 없으면 성장이 없다'는 슬로건에도 그냥 동의할 수 없게 되고 만 것이다.

 

분명히 자본주의는 인류에게 부와 번영을 가져다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자본주의의 진보와 동시에 사람들 사이의 유대나 문화전통, 그리고 우리들의 생존 그 자체를 지탱하는 자연환경도 파괴하고 있다. 그리고 글로벌자본주의의 시대에 들어와 그런 경향에는 더욱 박차가 가해지고 있다.

 

인터넷으로 분명히 '지구는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지구적인 규모로 정보의 교환이 가능해졌다는 것뿐이고, 인간들 사이의 유대는 오히려 희박해진 것이 아닐까.

 

인터넷의 발달로 직접 대면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필요가 없어져서 지역공동체가 가진 의미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무국경시대가 되어 국경을 사람이나 물자가 자유롭게 넘어 다닐 수 있게 된 결과 국가의 존재감도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확실히 이런 세계화의 진전은 어느 의미에서 인간에게 '자유'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인간과 인간의 연대, 사회의 유대를 상실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격차사회의 확대로 한줌의 부유한 사람과 근로빈곤층에게는 문자 그대로 '사는 세계'가 다른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일용파견 노동 같은 일을 하면서 인터넷 방이나 비디오방에서 밤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 한편, 가볍게 수백 만 엔이나 하는 손목시계나 보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 양자의 세계가 겹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 실정이다.

 

이 같은 현대 자본주의의 실태를 볼 때 '과연 자본주의 = 진보'라고 간단히 믿어도 좋은 것일까.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폭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괴물을 잘 길들이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사회를 파괴하고, 인간이라고 하는 사회적동물이 사는 장소를 빼앗아간다. 이 사실을 우리는 새삼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통렬하게 자본주의 비판을 한 폴라니

 

자본주의비판이라고 하면 '자본론'을 쓴 칼 마르크스를 연상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확실히 마르크스는 고전파경제학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자본주의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고 지적한 사상가이지만, 내가 여기서 소개하고 싶은 것은 칼 마르크스가 아닌 또 한 사람의 '칼' 이다. 이 칼은 경제인류학의 창시자 중의 한 사람인 칼 폴라니다.

 

폴라니는 1886년 비엔나에서 태어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1933년 파시즘을 피하기 위해서 영국으로 건너갔고, 제2차 대전 후에는 미국의 컬럼비아대학으로 초빙된 경력을 가진 사람인데, 그는 제 2차 대전 중에 [대전환]이라는 주목할 만한 저서를 냈다

 

이 저서에서 폴라니가 되풀이 강조한 것은 '자본주의란 개인을 고립화시켜 사회를 분단시키는 악마의 멧돌'이라는 것이다. '악마의 멧돌'이라고 하면 대단히 센세이셔널한 표현같지만, 폴라니는 결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 이 말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우리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시장경제, 또는 화폐경제라는 것은 본래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극히 최근에야 등장한 '특이한 시스템'이고,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측면을  파괴한다는 것이 폴라니의 지적이다.

 

이렇게 말하면 '근대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이전부터 화폐는 있었고, 시장에서 교역도 하지 않았는가'하는 반론이 즉각 제기될 것이다. 확실히 그런 반론은 틀린 것이 아니다. 폴라니도 화폐나 교역이 유사 이랴 행해져 온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폴라니는 역사적인 사실을 인용하면서, 화폐나 교역이란 것이 필요해진 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경제권이 접하는 '주연부'에서 일어난 것이고, 예를 들어 농촌 같은 곳의 일상생활에서는 농민들이 화폐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확실히 그것은 그의 이야기대로다.

 

현대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지산지소(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의 생활을 하고 있던 중세의 사람들에게는 화폐 같은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세금이나 지대는 농산물이나 노동력으로 납부하고 있었고, 생활에 필요한 물자는 자기가 만들거나 서로 융통하면 충분했다. 정말 화폐가 필요했던 것은 예를 들면 먼 중근동이나 아시아에서 온 진귀한 물품을 때때로 찾아오는 행상인으로부터 살 때뿐이었으므로, '교역'이나 '화폐'는 일상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경제학에서는 '가격은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일상적인 시장거래 속에서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도록 결정된다'고 설명하지만, 원래 시장 그 자체가 근대 이전에는 특이한 현상이었고, 일상적으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들은 고대 이집트나 바빌로니아 또는 수나 당같은 고대에도 현대식의 화려한 시장이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것은 현대의 상식을 과거에 소급해서 적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경제인류학자인 폴라니의 지적이다.

 

그러고 보면 모두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어 에도시대의 농민들을 생각해 보아도 그들은 거의 화폐와는 관계가 없는 생활을 했을 것이 틀림없다. 현대 일본에서조차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거의 현금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례가 있는데, 근대자본주의가 성립하기 이전의 농촌에서는 현금으로 물건을 팔거나 살 필요가 거의 없었다.

 

확실히 에도시대, 오사카 같은 곳에서는 코메카이쇼라는 것이 있어서 쌀의 선물거래 같은 것을 했는데, 그런 상업 활동은 전체에서 보면 극히 제한된 것이었다. 상업 활동이 행해지는 도회가 있던 한편에서는 화폐나 교역과는 무연한 농촌사회도 있었다는 것이 에도시대의 일본이고, 지방의 농민까지 현금을 사용하게 된 것은 메이지 이후, 다시 말해서 폴라니가 말한 것처럼, 근대자본주의가 성립된 다음이다.

 

일본의 경우는 메이지시대가 되어 세금제도가 개정되었다. 그 결과 그때까지 물품으로 납부했던 지대를 세금으로서 화폐로 국가에 납부하게 되었으므로 농촌에서도 화폐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 이전의 농촌에서는 화폐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화폐를 매개로 하는 교역도 없었던 것이다.

 

* 나카타니 이와오 : 2008년 말 일본논단에서 꽤 큰 소동이 벌어졌다.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외치며 신자유주의 개혁노선의 전도사를 자처한, 그리고 일본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의 기틀을 마련해주었던 주인공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이제까지 내 주장은 잘못됐다"며 '전향'을 선언한 것이다. 주인공은 나카타니 이와오(中谷嚴) 미쓰비시UFJ리서치 & 컨설팅 이사장(66). 미국 하버드대 유학파 출신 경제학자인 그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 시절 총리자문기관인 경제전략회의에 핵심 멤버로 참여했고, 그가 내놓은 제안들은 고이즈미(小泉) 정권에 인계돼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일본에 들어오도록 했다.이 책은 지난해 말 일본에서 출간된 그의 참회록을 번역한 것이다. 나카타니는 자신이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신봉자가 된 계기를 27세 때(1969년) 떠난 미국 유학의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밝혔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목도한 자유의 풍요에 압도당했다는 것이다. 그가 공부하던 시절 미국에서는 케인스주의가 서서히 퇴조하고 큰 정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던 시기였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세례를 듬뿍 받고 돌아와 대학 강단에 서게 된 그는 당연히 근대경제학, 특히 시장경제 메커니즘의 위대성을 열렬히 강의했고 정부에도 참여했다.

 

그가 참회와 전향을 선언한 것은 자신이 신봉한 미국식 경제의 붕괴, 그리고 자신이 추진했던 개혁의 결과로 일본 사회에 만연한 양극화 때문이었다. "개혁은 필요하지만 그 개혁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하면 의미가 없고, 사람을 고립시키는 개혁은 개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미국을 들여다봐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자유경쟁, 자기책임의 나라이므로 세계 제일의 풍요한 국가가 되었다"고 믿어왔지만 그 자유경쟁, 자기책임이 "압도적 다수는 패배자가 되어 비참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처절한 참회를 거쳐 그가 내놓은 대안은 고용의 안정, 정부의 개입, 지방분권, 환경보호 등 신자유주의 교리와 정면 배치되는 것들이다. 지금이야말로 '악마의 맷돌'로서의 시장사회를 해체하고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괴물에 족쇄를 채울 때라는 것이다.
세계 경제위기 발생 이후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나카타니와 비슷한 이력을 가진, 미국 유학파 출신의 주류 경제학자·정책가들로부터의 자성과 참회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는 한국의 심각한 상황에 언제까지 눈을 감고 있을 것인가.

 

_ 나카타니 이와오 <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