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성찰

농촌의 실상을 보아야 합니다_ 신영복

정정진 2010. 5. 15. 20:03

 

꽃잎 흩날리며 돌아올 날 기다립니다_ 잡초에 묻힌 초등학교

 

 

최근 5년 동안에 폐교된 학교가 무려 1200개교가 넘고 올해도 다시 300~400개교가

 

문을 닫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농촌의 초등학교는 마을의 꽃이고 미래였습니다.

 

꽃이 없어지고 미래가 사라진 이 황량한 교정에서 어느 한 사람의 추억에 잠기는 것은

 

감상입니다. 당신의 말처럼 시선을 들어 농촌을 보아야 합니다. 2억 평의 농경지가

 

묵고 있는 농촌 그리고 해마다 수십만 명씩 떠나간 농촌의 실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땅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을

 

찾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세계화의 시대, 정보화의 시대, 하이테크의 시대라는 용어를 거부하는 당신의 고집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세계화'의 도도한 물결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세계무역기구는 운양호의 함포보다도 더 강력한 무기가 장착된 도전임에

 

틀림없습니다. 안방의 밥상 위에까지 발을 올려놓는 거대한 공룡의 내습입니다.

 

100년 전의 개항기와 흡사하다고 하지만 지금의 경제구조는 당시에 비해 훨씬 허약한

 

체질로 바뀌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국내의 모순을 세계화를 통하여 해소하려고 하는 중심부의 그들과는 반대로

 

세계경제의 중하층에 편입되어 있는 우리의 경제적 위상은 그러한 모순을

 

내부의 희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물이 낮은 데로 흘러가듯이 당연히 가장 약한 곳으로 그 중압이 전가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간의 이농과 탈농은 오로지 이러한 중압을 벗어나려는 기약없는

 

몸부림일 뿐 푸른 희망을 가슴에 안고 떠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제 농업은 단 하나의 잣대인 시장경제인 원리에 의하여 그 운명이 재단될 것이라는

 

당신의 전망은 차라리 절망입니다. 농촌은 떠나야 할 땅이고 농업은 버려야 할

 

산업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어린이가 없는 농촌, 농촌이 없는 도시,

 

농업이 없는 나라, 농민이 없는 민족으로 21세기를 살아가야 될지도 모릅니다.

 

잡초에 묻힌 교정을 나도 또한 떠나오면서 나는 도시로 떠나간 이 학교의 아이들이

 

지금쯤 어느 골목에서 얼마나 큰 짐을 지고 걸어가고 있는지 마음이 어둡습니다.

 

다만 철창에 머리 기대고 [사나이 가는 길]을 노래 부르고 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어디 엔들 바람 불지 않으랴

 

어느 땐들 눈물 흘리지 않으랴

 

 

당신의 노랫소리는 차가운 겨울바람이었습니다. 자연과의 싸움에서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지혜와 끈기를 보여온 농민이 이제 '보이지 않는 손'의 도전 앞에서는

 

마치 상대를 보지 못하고 싸우는 병사처럼 막연하기 그지 없습니다.

 

잡초에 묻힌 학교는 우리 농촌의 자화상이며 농촌은 우리 시대의 실상인지도 모릅니다.

 

- 신영복의 <나무야 나무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