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성찰

토건국가의 주체_ 홍성태

정정진 2009. 8. 29. 19:08

토건국가의 주체

 

토건국가는 토건재정의 확대를 통해 토건경제의 강화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여러 주체들의 집요한 노력이 작용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보아서 이 주체들은 정계, 관계, 재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필요한 대규모 개발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국가의 운영을 실제로 좌우하는 세 주체의 연결은 필수적이다. 이것을 보통 '정, 관, 재 연합'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민주화에 따라 정, 관, 재연합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합리성의 형식을 갖추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로써 언론과 학계의 지원이 더욱 강화되었다. 그 결과 정, 관, 재연합은 '정,관,재,언,학 연합'의 5각 구조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연합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토건연합은 무엇보다도 '돈줄연합'이다. 불필요한 대규모 개발사업에 사용되는 막대한 혈세는 흔히

'눈먼 돈'으로 불린다. 그중에서 직접 부패에 사용되는 돈은 많은 경우 20%에 이르며, 그렇지 않은 돈도 사실상 혈세를 낭비하는 것이다.

정, 관, 재, 언, 학 연합은 뇌물, 월급, 광고비, 연구비를 지급하거나 서로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혈세를 나눠 가진다. 여기서 직접적 부패에 해당하는 뇌물만이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직접적 '범죄'에 해당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일 뿐이다. 불필요한 대규모 개발사업을 위해 엉터리 기사를 보도하거나 연구를 수행하는 것도 사실은 부패만큼이나, 아니 사실 그런

보도나 연구야말로 부패를 가능하게 하는 합법적 수단이라는 점에서 불법적 부패보다 더 나쁘고 잘못된 것이다.

 

토건연합은 '공익'을 내걸고 불필요한 개발사업을 추진해서 국토를 파괴하고 혈세를 탕진해서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흔히 '마피아'에

비유되곤 한다. 은밀히 활동하는 거대한 조직범죄 세력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토건 마피아'는 분야별로 전문화되어 있기도 하다.

예컨대 간척 마피아, 발전 마피아, 도로 마피아, 댐 마피아 등이 그것이다. '댐 마피아'는 댐 건설을 지배한다. 댐 건설은 토건국가가 작동하는 대단히 유효한 방식이다. 홍수와 가뭄에 대한 국민의 두려움을 적극 자극해서 댐 건설을 정당화하기 쉽기 때문이다. 댐은 많은 기능을 수행하고 여러 의미를 가지지만, 댐 마피아에게 댐은 그저 거대한 '먹이'일 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댐 마피아는 댐 건설을 강행하기 위해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댐 마피아가 존속하는 한 시대가 변한다고 해서 댐 건설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한탄강댐 건설계획은 아주 좋은 예이다. 2005년 6월에 감사원은 이 계획이 경제성이나 환경성은 말할 것도 없고 절차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았으므로 원점에서 재검토하도록 했다. 2006년 8월에 국무조정실은 새로 연구를 하는 방식을 취해서 상당히 축소된 계획을 제시했다.

그리고 2006년 10월에 건교부는 처음의 잘못된 계획과 사실상 같은 계획을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그 내용은 쉽게 말해서 1조 900억 원의

혈세를 들여서 한탄강 상류에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를 쌓는다는 것이다. 한탄강댐 건설계획은 막대한 혈세의 탕진과 국토의 파괴를 추진

하는 전형적인 토건국가 사업이다.

 

댐 건설이 엄청난 자연파괴와 문화파괴의 문제를 낳는다는 사실을 '댐 마피아'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반면에 댐 마피아는 댐 건설을 계속 추진하기 위해 여러 사이비 논리를 사회적으로 널리 유포시킨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물 부족론'과 '댐 만능론'이다. 요컨대

한국은 '물 부족국가'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역시 댐 건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물 부족국가라는 주장은 건교부조차 철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짓말'이며, 댐의 본질적 문제는 이미 세계댐위원회도 명확히 지적한 사실이다.

한국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댐 건설계획이 아니라 댐 해체계획이다. 이러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잘못을 강행하는 강력한 주체인 댐 마피아를 없애야 한다.

 

토건연합은 거짓으로 진실을 은폐하고, 혈세를 탕진해서 '사익'을 추구한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에서 추방당하고, 소중한 국토가 만신창이로 파괴한다. 이런 문제적 상황이 민주화 이후에도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민주개혁세력이 토건국가의 문제에 대해, 그 주체의 개혁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하다는 사실이다. 환경문제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조차 토건국가라는 개념을 그저 '수사'로 받아들이고 있다. '토건 마피아'의 문제를 밝히고 개혁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 하청을 받아서 연구하는 학자들도 아주 많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에는 '갈등조정'이 중요한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갈등'이 아니라 '저항'이다. 토건 마피아는 갈등의 주체가 아니라 저항의 대상일 뿐이다.

 

우리는 '생태적 복지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토건국가를 개혁하는 것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기반을 다지

는 것이다. 건교부를 폐지하고, 각종 개발공사들을 통폐합하는 것은 그 구체적 과제이다. 이를 위해 문제를 일으키는 거대한 주체들에

대한 연구가 크게 활성화되어야 한다. 개발독재의 전위대로 설립된 각종 개발공사들과 건교부와 산자부 등의 개발부서들을 그대로 두고생태적 복지사회를 향한 진정한 선진화는커녕 정치적 민주화의 진척도 이루어지기 어렵다. 추상적인 이념이나 정권 중심의 민주화가 아니라 삶의 질 중심의 민주화를 원한다면, 개발독재의 구조적 유산인 토건국가의 문제에 대해, 그 핵심적 실체로서 정부조직과 재정구조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쏟아야 한다.

 

토건국가에 시달리면서 토건국가에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군부독재에 시달리면서 군부독재에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과 같다. 사익을 위해 막대한 혈세를 탕진해서 국토를 파괴하는 토건연합의 문제를 널리 알리고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만성적 불안에 시달리면서 명백한 파국을 향해 치달리게 될 것이다.

 

* 홍성태 :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 홍성태 <대한민국 위험사회> 중에서 -